갈 사람은 가고, 올 사람은 오고

안녕

by 민시

“띠링”

아침부터 수아가 찾아왔다. 그새 시간은 1년도 넘었다. 그동안 수아와의 인연은 다했다고 생각했다. 1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으니까. 불편함도 없었다. 잊고 살았다는 게 맞겠다. 먹고사는 게 바빴고, 서운한 마음조차 없었다. 미안한 마음도 없었다.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도 더더욱 없었다. 어떠한 원망도 작은 미움도 없었다.

“오랜만이야.” 수아는 내 눈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인사했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음악을 켜는 것조차 깜빡했다. 잠깐의 정적은 귀찮게 느껴졌다.

“나 커피 안 줄 거야?” 수아가 말했다.

“참, 뭐 마실 거야?”

“아이스로 두 잔 줘. 가져갈 거야.”

원두 그라인더 소리가 고마웠다. 수아는 카페 안을 구석구석 눈에 담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건넸다.

“나 지금 부산 가.” 수아는 체념한 듯 말했다.

“그래?” 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수아의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의 계획이라면 부산이 없어야 했다. 1년 넘게 고민했을 수아에게도 지옥 같은 시간은 있었을 거란 생각이 스쳤다. 잘 있으란 인사를 뒤로하고 수아는 문을 나섰다. 발걸음 소리는 일정한 박자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잠시 고요했던 시간, 카페 안은 채광이 밝혔다. 엄마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오며 카페 안은 더욱 환해졌다. 커피를 건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커튼을 쳤다. 엄마들의 수다는 배경음악일 뿐, 관심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벽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사장님~”

얼마나 졸았을까. 엄마들의 테이블엔 이미 다 마신 얼음 잔만 놓여있었고, 여전히 수다 꽃은 시들지 않았다. 테이크아웃 주문을 받고 음료를 만들며 건넸다. 떠나는 손님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팝송을 틀었다. 유독 오전은 길게 느껴졌고, 날은 유독 환했다.


엄마들이 나간 자리를 치우고 밖으로 향했다. 2차선 도로를 향해 걸으며 기지개를 켰다. 해는 눈이 부시고 맞은편 아파트의 창은 모두 빛났다.

“어? 학교 안 갔어?”

정훈이었다. 아직 학교 끝날 시간도 아닌데. 편의점 앞에서 핸드폰 게임을 하는 녀석, 말을 건네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예의 없는 베이비. 애나 어른이나 콩고물 얻어먹을 때만.’

뒤를 돌자마자 정민시 그녀가 정문을 통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웃으며 내 앞에 다가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였다.

“사장님~ 저 지금 카페 가려고 했는데~”

“아~ 같이 가요~! 마실 나왔던 거예요~”


그녀와 카페로 향했다. 그녀는 내게 줄 거라며 케이크 상자를 건넸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예요~ 나눠 먹으려고 몇 판 구웠어요~”

“어머~ 진짜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카페로 들어오자마자 고마운 마음에 커피를 건넸다. 손님은 없었고, 정민시 그녀와의 대화는 의외로 잘 통했다.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이대로 그녀와 인연이길 바랐다. 그녀는 맞은편 소파에 앉으라는 듯 손짓을 보였다. 나는 말이 많아졌다. 그녀가 웃으며 물었다.

“요새 카페는 잘 되신다면서요~ 장사도 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카페에 있다 보면 별의별 일 다 있어요~ 유모차 끌고 오는 엄마들은 서로 시기하거나 허세도 부려요~ 어떤 엄마가 기저귀 가방 알아보고 있다고 하니까~ 본인은 쇼핑몰에서 삼만 원도 안 하는 가방을 사놓고, 정작 본인 취향인 만마리나 독을 기저귀 가방으로 추천하는 엄마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웃긴 건 그다음이에요. 기저귀 가방을 샀다고 자랑하는데~ 알고 보니 그보다 더한 고메드를 들고 왔더라고요~? 참 재밌어요~”

그녀는 끄덕이며 웃기만 했다.


출력만이 살길인 양, 음메엥. 엉덩이가 뜨거울 때까지 그녀와 수다 떨었다. 나 홀로 일방통행 같지만. 나도 참, 대화 상대가 절실하게 필요했었나 보다.

“참, 가끔 진상 엄마들도 오거든요? 말만 많아요~! 한 번 앉으면 무슨 아지트라도 되는 듯이 몇 시간이고 앉아있는데~ 아주 질렸어요! 술도 팔라고 간섭하더라고요? 말 많은 사람들은 싫어요. 서비스를 내어줬더니 더 달래요, 글쎄~! 양심들이 없어요~!”

“호의가 권리인 줄 알면 안 되는데.. 친절을 베풀면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본성도 드러나고, 바닥도 드러나고...” 그녀는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상체를 뒤로 물렸다. 그때였다. 그녀가 몇 마디 던진 말이 두고두고 찝찝해졌다.

“단순히 아는 게 많아서 나오는 말 아니고서야. 입력은 안 되고, 오롯이 남 이야기로 출력만 하는 말 많은 사람들은 저도 싫더라고요. 거리 두기가 답이죠.” 그 말을 뒤로하고 그녀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며 카페를 나섰다. 내가 말이 많았을까? 며칠을 곱씹듯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방문은 그날 이후로 없었다. 나는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나 들으란 말은 아니었겠지? 쳇, 지가 뭔데..’


어느 날부턴가, 못 보던 손님이 몇 번 찾아왔다. 이제 곧 결혼하며 맞은편 신축 아파트로 이사 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녀는 젊고 밝고, 예뻤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눈길이 가더니, 사회성이 좋다고 해야 할까. 통통 튀는 매력에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같은 여자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녀에게 시선이 머물고, 그녀의 결혼 이야기에 머물며 금세 친해졌다.

“사장님은 결혼 생각 없으세요?”

“저는 결혼하려다 예비 시어머님이 반대해서 쫑났어요~ 제가 성에 안 차셨나 봐요.” 내 말에 그녀는 입술을 오므렸다. 다 지난 일이라고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밝은 에너지가 사랑스러워 시댁에서 예뻐하시겠다고 말까지 전했다.

“네~ 저는 복 받았네요~ 시어머님이 저 보자마자 반겨주셔서 결혼 결심도 더 빨랐거든요~ 곧 결혼식인데~ 양가 어머님들 주선으로 결혼까지, 1년도 안 걸리는 거예요~ 신기해요~!” 그녀의 말에 수아가 떠올랐다. 수아도 소개받고 결혼식까지 1년도 안 걸렸으니 말이다. 인연은 정말 따로 있는 걸까? 우드 보관함에 그녀가 놓고 간 쿠폰을 봤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갔다. 이름이 비슷해서였을까? 나는 이혜선, 그녀는 이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