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이혜리, 그리고..

나만 제자리

by 민시

결혼 한 달 앞두고 이혜리 그녀가 먼저 신혼집으로 이사 왔다. 저녁마다 퇴근길에 카페를 찾아왔다.

“퇴근길에 커피 한 잔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밝은 에너지는 곧 언니 동생이 되었다. 혜리의 머리카락은 윤이 나고 쌍꺼풀 수술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듯, 속눈썹이 길어 연장도 필요 없어 보였다. 젊어서인지, 관리를 해서인지, 피부는 어쩜 그렇게 탄탄한지.

“피부과 다녀?” 넌지시 물었다.

“아니요~? 엄마가 동안이에요~! 유전이죠. 그거 하나는 정말 감사해요~!” 혜리는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에게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네~ 오모니임~ 미뇽 오빠가용? 진차용? 맞아용~! 네에~! 호호...”

‘미뇽? 민용? 민영? 민형? 민..혁..은 아니겠지, 설마.’

큰 소리로 늑대처럼 포효할 뻔했다. 무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왜 한숨만 나올까. 결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까? 혜리를 보니 죽었다 깨어나도 나는 결혼을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마시던 컵을 입으로 가져가 얼음을 담았다. 입안에 얼음은 사탕인 양 굴리다 씹어대고, 나머지는 싱크대에 내쳤다. 물을 틀어 컵을 씻으면서도 녹아내리는 얼음을 보니 누군가 생각났다. 인연도 결혼도, 모두 시기를 잘 타야 한다는 생각, 더불어 애교까지 장착해야 차디찬 누군가도 녹일 수 있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언니, 예비 시어머님 호출, 지금 빨리 가야 해요. 컵케이크 있으면 몇 개만 포장해 줘요!”

급한 듯 발걸음을 재촉하는 혜리의 뒷모습은 그저 현실이었다.


유독 혜리 앞에서는 결혼에 관심이 없는 척했다. 나는 무슨 자존심일까? 혜리는 내게 청첩장을 건네지 않았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아무리 서슴없이 친해졌어도,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카페를 찾을 때마다 유독 반짝이는 액세서리는 예비 신부다웠다. 혜리도 반짝였다.

“언니, 나 이제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와서 봐요~!”

“참, 축하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고마워요, 언니. 스위스로 가요~! 가고 싶은 곳도 서로 마음이 맞아서 준비하기 편했어요~!”

“나 아는 누구도 신혼여행으로 스위스 가고 싶다고 했었는데.”

“누구? 다녀왔대요?” 혜리는 궁금해하며 더 자세하게 듣고 싶어 했다. 스위스를. 대답 대신 입을 오므리고 눈을 감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혜리는 눈치가 빨랐다.


한 달쯤 흘렀을까, 혜리가 카페로 찾아왔다.

“와, 언니.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결혼식에 신혼여행, 다녀와서는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친구들도 만나서 선물 돌리고. 오늘은 반차 쓰고 일찍 왔어요.”

“신혼여행은 꿈나라였겠는데~?” 아이스커피를 건네고 웃으며 말했다. 혜리는 커피잔을 들고 빨대를 입으로 가져갔다. 손에 끼워진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얼음을 삼킨 듯 머리가 띵, 가슴은 철렁.

“결혼반지야?”

“웅! 맞아요~! 오빠가 골라줬어요~!” 혜리는 손을 뻗으며 더 가까이 보여줬다. 하필, 내가 골랐던 반지처럼 보였다. 마음은 깨졌지만, 혜리 앞에서 분위기는 깨트리기 싫었다.

“예쁘네~ 역시 반지는 반짝거려야 해~!”

혜리는 환하게 웃어 보였고 그 모습조차 반짝거렸다.

반짝, 반짝, 반짝. 혜리의 카페 방문은 뜸해졌다. 신혼을 즐기고 있겠거니. 신축이 들어서는 만큼 드문드문 못 보던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가 신혼부부로 보였다. 나 빼고 다들 반짝거렸다. 개의치 않으려 했다.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모두가 달달했다. 시선을 돌리고 돌려도 유독 젊은 부부만 눈에 띄었다.

며칠 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옆 동네 카페 사장님이셨다. 받을까, 말까. 연락하던 사이는 아니지만 그날따라 고민하던 순간이 미적거리듯 굼떴다.

“네~ 사장님~ 잘 지내시죠~?”

“어~~ 사장님~~ 오랜만이에요~~! 우리 딸 결혼해요~~!”

그제야 꾸물거리던 마음이 이해되며 옅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머~ 축하드려요~”

자랑하고 싶은 사장님의 마음은 우리 엄마를 떠올렸다.

“고마워요~~ 청첩장 보낼게요~~!” 사장님은 따님보다 신난 게 틀림없었다. 행복해 보이셨다. 그런데 나를 몇 번이나 봤다고..


전화를 끊고 메시지가 왔다.

“하.....” 이번엔 깊은 한숨이 발가락까지 닿는 줄 알았다. 하필, 옆 동네 카페 사장님의 따님 이름도 나와 비슷했다. 이혜미, 혜미씨.. 무슨 이런 우연이 다 있고, 이런 인연이 다 있을까. 결혼식, 가야 할까?


결혼식까지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그녀의 결혼식은 오후 세 시, 나는 내게 주문을 걸어보았다.

‘그녀의 결혼식 당일, 나는 무조건 바쁘다. 아니, 아프다..’

구질구질, 꼬질꼬질, 지질지질. 그래, 지질하면 좀 어때, 나는 지질해도 된다. 너무 구차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