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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Nov 17. 2022

교환일기

 


 네가 문양이 된다면 그 속에 기꺼이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치 새장처럼 몸 위로 철컥거리며 잠기는 일들은 꼭 무거운 것만은 아니다 낯선 질감과 색채를 가진 외투를 입은 것처럼, 내가 아닌 나를 걸쳐 입고 미지의 땅을 조금씩 밝혀 나가는 것처럼     

 동공, 이라고 쓰면 단숨에 길이 펼쳐진다

 물론 아름다운 산책로에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야지     


 발을 내딛자 전면에 녹음이 우거지고,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는 사람처럼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복기하려는 사람처럼 천천히 걷고 있다 나를 닮은 하루는 몸을 비스듬히 맞댄 채 곁에서 걷는 속도를 기꺼이 맞추고 있다     


 나는 죽는 것이 무서워 시를 씁니다     

 노을이 퍼지던 교정을 걷다가 들었던 네 말은  

 어느덧 세계 한 바퀴를 빙 돌아와 내 앞에 선다       


 인간의 일들은 기꺼이 지저귀는 새가 된다

 투명한 목덜미를 가진 사슴이 된다   

 사슴은 기꺼이 회전문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무궁무진하게 열리고 닫히기를 반복하던 산책로 

 출입이 자유로운 숲을 거니는 것처럼 

 침묵을 닮은 품을 믿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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