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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Nov 17. 2022

검은 구전과 흘러넘치는 바다


      

생각이라는 면류관을 쓴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형제, 가파른 언덕에서 함께 내려오고 있다 

긴 배회가 발을 달구고 뱃속에 잠긴 돌이 뜨겁고 무거워  

둘은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뱃속의 돌을 꺼내어 놓을 해변은 도통 나타나질 않는다   

  

지금껏 살아왔던 오막살이의 벽이 

힘껏 부풀어 오르는 바람에

방바닥이 피부처럼 얇아져 버린 바람에

둘은 틈만 나면 구덩이를 찾아 들어가 쪽잠을 자곤 했다

      

검디검은 벙커는 부모가 한평생 되뇌던 기도 같았지      


엄마아빠 같은 세계가 형제의 피부에 눈처럼 내려와 앉고

둘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처럼 끝까지 가기로 한다 

힘껏 열어젖혀야 흘러나오는 것들만 믿기로 한다 

      

가령 이야기와 피, 한 방울의 정수가 되어 맺혀 있는 노래와 

이마를 시큰하게 파고드는 생각의 통증 같은 것

     

부모가 한평생 되뇌던 기도의 스토리텔링은

어느덧 형제의 생애와 나란한 방향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은 다만, 묵은 통로 밖으로 나서려는 사람들로서 

    

처음이라는 것을 가져 보려는 사람들로서

     

기꺼이

투명한 미로와 닮아 있는 운명 앞에 서기로 한다  


뒤돌아보지 마     


아무리 불태우고 불태워도 우뚝 서 있는 그림자

그것이 우리의 집이라는 환영이라면

        

걸어가다 잠시 멈춰 서는 이야기가 있다면 

 

두 갈래로 찢긴 혀가 되어 간다면       


왼쪽이 연약하면 왼쪽으로

오른쪽이 연약하면 오른쪽으로


허물어지는 검은 파도 앞에서   


복종 없이 버티려고 하는 비석이 된다면

     

우린 도대체 누가 세워둔 자장가야

어떤 망치가 깨부수려는 묘석이야      


형, 어째서 네 몸은 이토록 미지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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