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영 Nov 17. 2022

아무도 없는 학교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로

다시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흘러가는 꿈

뜨거운 물거품이 되어 끓어올라요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 새겨듣고 있으면     


고막부터 시작해 심장에까지 이르는 오솔길이 뚫려요

땀 흘리는 맹인 하나 자꾸 손부채질을 하며 걸어요     


어둡고 습한 곳을 산책하는 사람의 숨결이

꿈의 수증기와 뒤섞여요 꿈의 허공을 데워내요

     

따뜻한 허공을 담벼락 삼아 담쟁이처럼 얽힌 안개덤불을

맨손으로 뜯어내요 알몸 위에 내두른 채

     

맹인을 따라가요 나는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처럼 끝까지 가요     


오솔길이 끝나 새로운 곳 트일 때까지

한없이 검은 바다 펼쳐질 때까지

     

벌써 검은 바다의 뉘 부르는 소리가

보리밭처럼 우거져 온 샛길을 맴도네     


뜨거운 허공 속을 떠도네 

지금 눈먼 사람이 보고 있는 것도 광막한 바다라 믿는다

      

어둠에 푹 잠긴 해변과 후렴처럼 오가는 파도

       

이제 그 해변에 아무도 없는 학교가 세워지고     


학교 앞뜰에 주인 없는 팔뚝이 철봉에 매달리고

학교 뒤뜰에 주인 없는 발 자전거 페달을 밟고 지나가      


하지만 세상 곳곳을 뒤져도 

주인 없는 눈을 찾을 수가 없다며 맹인이 웃는다

      

맹인은 검은 바다를 보고 있고

나는 어두컴컴하게 물결치는 것이

발목을 뜨겁게 휘감는 것이 꿈인 걸 안다     


긴 잠에서 깨어나 눈물을 그려 보려는데

뒤통수에서 모래알갱이가 긁혀져 나온다     


피부가 자꾸 해변이 되려고 한다

이전 04화 사랑하는 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