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서영 Nov 17. 2022

열어젖혀야 보이는 풍경



 마음 한쪽과 유리 안쪽, 어느 쪽을 먼저 베껴 쓸까요 저쪽에선 전나무가 키 크고 이쪽에선 

 작은 칼날로 만들어진 날개가 퍼덕입니다

 그것을 가리켜 책이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전을 찾아 읽어요 고전의 문은 무겁고 투명하고 단숨에 펄럭거리며 넘어가는 페이지는 회전문을 닮았습니다 문은 제 몸을 밀어 왔던 손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고요 저 안쪽에서는 희뿌연 눈발이 날리고 있고요

       

 이리저리 뭉개진 얼굴들이 떠돌아다녀요 입을 옴짝달싹해요 삶 속에서 이야기가 희박해져 간다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려는 버릇이야말로 환상적인 고삐라고, 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끌려다녔다고 

 주인 모를 손아귀에, 주인 모를 슬픔에     


 이젠 자기의 살을 뚫고 미끼로 던지라고 

 화두로 삼아 달라고 말합니다      


 모든 시간은 피로 만들어진 문입니다     


 열어젖히면 눈앞이 붉어요

이전 06화 벌집의 시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