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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Nov 17. 2022

소진되는 벽



천장과 숨, 오로지 시한이 없는 것들만 끌어와서 말하는 방식

타버리고 남은 자리에서 점쳐볼 수 있는 미래와 내 몫의 창문


창문이 마주하는 바다, 밀물과 썰물에 따라 술렁이는 빛과 
해변에서 정성껏 쓸어 모은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는데요
입술을 벌려가며 떠먹여주고 싶었는데요

존, 조나단, 포터, 이제 코가 오뚝한 의사들이 내 앞을 오가며
트럼프 카드를 뒤집듯 인생의 주기를 바꿔야만 한다고 충고합니다
대화가 끝나면 내 몫의 차트가 채워질 것입니다
나는 습관적으로 내 몫의 허공을 노려봅니다
저 끝에 항상 아름다운 십자가가 비어 있습니다

구원과 창문, 서로 얼마나 가깝고 또 멀리 있는 말들인가요
바깥에는 반짝이는 모래해변과 백한 마리의 붉은 군조
이곳에 저 새떼들이 오가는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흔들의자에 앉아서 나이브한 음악을 감상할 때면
밑창 없는 옛날만이 뚝뚝 허물어져갈 뿐
그때마다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가계도
내 숨 안에 걸어둔 링들이 찰랑거립니다

천국과 숲, 친구들은 내 시간을 아름다운 문양을 보듯 사랑해주었습니다
알몸으로 달려가야 할 숲이 구원이라면

저 끝에 피투성이 천사가 쥐고 있는 편지가 계시일까요
느릿한 멜로디 위로 자꾸만 던져지는 메시지
제 삶을 망가진 화단을 보듯 들여다보는 사람은
때때로 덜그럭거리는 링이 무겁습니다

비밀들, 미처 점화되지 못하고 부서져버린
이야기들의 경도
아주 큰 것과 작은 것의 침식속도
가루입자가 되어 몸 안을 떠돌아다닐 때마다

판독을 거부하는 유리의 방식으로
내 생명은 노출되어져 왔습니다


나는 창문의 눈으로 세계를 감지합니다



공통점, 『마음 레코드의 기능상 요건』 게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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