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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영 Nov 17. 2022

사랑하는 언니



이마가 뜨거운 언니는 창문을 믿네

창문에 이마를 기댄 채 웃네     


나는 유리의 투명함을 구성하는 광기를 본다

언니는 언제나 허공에 대고 부르면

내 이마에 성호를 긋는 칼날, 그래서 때로는

     

둥글게 맺히는 핏방울이 자매의 사랑을 표한다     


사랑하는 언니, 내 잠의 귀퉁이를 힘껏 짓누르는 팔뚝이 있어

두드러지는 혈관을 깨물면 달다, 비리다

입안 가득 채워 꿀떡거리며 삼켜도  

   

도무지 멎질 않는 이것을 꿈이라고 부를까?     


자꾸 삼켜내면 삼켜낼수록 목이 뜨거워

뜨거운 가시들이 속으로 흘러내려가     


이제 불꽃으로 엮어진 덤불이 두 눈을 짓누르고

나는 꿈 때문에 눈이 멀 것만 같아     


흐릿해진 전방을 간신히 헤쳐 나가며 걸을 때

    

사랑하는 언니     


이 앞이 비석처럼 서 있는 무수한 말들과

빛과 나무가 우거진 공동묘지라는 것을     


알고 있어?     


그리운 이름을 새겨 넣기 위해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돌을 찾는 행보는 교묘해   

  

지면의 진동을 견뎌 내는 뱀과 닮았네     


동생은 언젠가 언니라는 껍질을 몸에서 벗겨 낼 것이다

동생은 언젠가 창문에 이마를 식힐 것이며

    ' 

때로는 유리창 너머 끔찍한 혼종을 보며     


칼자루를 쥐었다 놓길 반복할 것이다     


사랑하는 언니     


물로 만들어진 수갑을 나눠 찬 나의 자매여

뱀의 송곳니를 가진 채 평생을 헤매던 자매여

     

찢겨나간 살갗은 마침내 창문을 닮게 되지

훔쳐보는 사람과 보여 주려는 사람을 구분하지     


마침내 두 사람이 유리를 사이에 둔 채

뜨거운 이마와 이마를 맞대었을 때     


사랑하는 언니

제발 돌아오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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