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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을의 역사 02화

을의 역사

1화 동학농민혁명

by 한시을

1화 '백성'에서 '주권자'로: 동학농민혁명의 정치적 의미와 민중주권 개념의 등장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시작된 놀라운 실험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乃天)" - 동학 창시자 최제우


여러분, 잠깐만요. 130년 전 이야기인데 왜 지금도 가슴이 뛸까요?


1894년 전라도 고부. 전봉준이라는 무명의 농민이 죽창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조선 500년 역사에서 농민봉기는 수없이 있었는데, 왜 하필 이 봉기만 '혁명'이라고 부를까요? 단순히 탐관오리를 몰아내는 것과 뭐가 다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이들은 처음으로 '백성'이 아닌 '주권자'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외계인이 당시 조선을 관찰했다면 분명 고개를 갸우뚱했을 겁니다. "어? 이 나라 농민들이 갑자기 정치적 요구를 하네?" 그렇습니다. 동학농민들은 단순히 "세금을 깎아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들은 정치제도 자체를 바꾸려 했습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혁명적 발상


동학의 핵심 사상인 '인내천(人乃天)'을 다시 생각해보죠. 우리는 보통 이걸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해석하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그게 다일까요?


당시 조선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습니다. 양반은 하늘이고 백성은 땅이었죠. 그런데 최제우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을 때, 이건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었어요. 이는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습니다.


[당시의 목소리] "녹두장군이 말하되, '우리도 사람이거늘 어찌 개돼지만 못하리요. 조정에서 탐관오리를 벌하지 않으니 우리가 스스로 벌하겠나이다.'" -『동학사』 중에서


전봉준의 이 말을 주목해보세요. "우리도 사람"이라는 표현. 이는 단순한 항변이 아닙니다. 자신들도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선언이었어요.


혁명적 정치 실험: 집강소의 등장


여기서 정말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동학농민군은 기존 관청을 점령한 후 뭘 했을까요? 단순히 관리들을 내쫓고 끝? 아니요. 이들은 집강소(執綱所)라는 새로운 자치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집강소가 뭐냐고요? 이건 말이죠, 농민들이 직접 만든 자치정부였어요. 세금을 걷고, 재판을 하고, 치안을 담당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들이 내놓은 '폐정개혁안 12개조'예요.


폐정개혁안의 핵심 내용:

탐관오리 처벌

무명잡세 폐지

노비문서 소각

문벌 타파

과부 재혼 허용


이게 단순한 민원이라고 보이나요? 천만에요. 이건 조선의 신분제와 정치구조 전체를 뒤흔드는 혁명적 요구였습니다.


서구 민주주의보다 앞선 조선의 '민중주권' 실험


그런데 여기서 잠깐. 1894년이면 서구에서도 민주주의가 채 정착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얻은 게 1918년이고, 프랑스에서 여성 참정권이 인정된 게 1944년이거든요.


그런데 조선의 농민들이 1894년에 이미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집강소에서는 농민들이 직접 대표를 뽑고, 중요한 일을 함께 결정했습니다. 이건 당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일이었어요.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역사의 진보는 직선적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변방에서, 예기치 못한 곳에서 혁신이 일어나죠. 동학농민혁명이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왜 실패했을까? 그리고 그 의미는?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결국 실패했어요. 조선 정부와 일본군의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었죠. 전봉준은 체포되어 처형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혁명은 그냥 실패한 봉기에 불과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사 최초의 민중주권 실험이었고, 그 DNA는 계속해서 이어져왔습니다.


3·1운동에서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고 했을 때, 4·19혁명에서 학생들이 "학생은 앞장서고 시민은 뒤따르라"고 외쳤을 때, 그리고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이 "이게 나라냐"고 물었을 때, 그 모든 순간에 동학의 정신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을의 첫 번째 외침: "우리도 사람이다"


동학농민혁명은 한국사에서 '을'이 처음으로 '갑'에게 대든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외침은 단순했지만 강력했어요. "우리도 사람이다."


이 한 마디가 얼마나 혁명적인지 아시나요? 수백 년간 "백성은 물과 같아서 그릇에 따라 모양이 정해진다"고 배워온 사람들이, 스스로 "주권자"라고 선언한 거예요. 이건 마치 종업원이 갑자기 "나도 이 회사의 주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어요.


물론 그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신은 죽지 않았어요. 1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불의에 맞설 때, 권력에 저항할 때, 그 근저에는 동학의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현재와의 연결: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혁명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떨까요? 우리는 정말 '주권자'가 되었을까요?


형식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투표권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을'의 감각을 느끼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말이죠.


그 이유는 뭘까요? 어쩌면 동학농민들이 꿈꾸었던 진정한 민중주권이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얻었지만, 실질적 주권은 여전히 쟁취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는 거죠.


[다음 회 예고] 제1장 2화: "3·1운동과 주권 회복의 꿈: 식민권력에 맞선 직접행동의 정치학" - 동학의 민중주권 정신이 어떻게 전국적 저항운동으로 발전했는지, 그리고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꺾이지 않은 주권 의지를 탐구합니다.


[용어 해설]


집강소(執綱所): 동학농민군이 설치한 자치기구. 농민들이 직접 행정·사법·치안 업무를 담당했다.


폐정개혁안: 동학농민군이 제시한 12개 조항의 개혁안. 신분제 타파와 정치개혁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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