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화창한 봄 날씨.
6시 50분 알람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분주하게 씻고 화장을 하고 원에서 먹을 아이들 아침 도시락을 챙긴다. 7시 20분 잠도 채 깨지 않은 두 아이들을 이끌고 주차장을 향한다. 둘째 아이는 주차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며 짜증을 낸다. 그 시간 나는 달래고 타이를 시간조차 없이 시분초를 다투며 울고 있는 아이를 질질 끌고 간다. 무시하고 걸어가면 울면서 악을 쓰고 나를 향해 달려온다. 아침부터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너덜너덜해진다. 7시 45분 두 아이들을 짐짝처럼 원에 던지고 나는 출근길을 나선다. 내 뒤통수로 둘째 아이의 울음소리가 쩌렁쩌렁 울리지만 그 소리를 외면한 채 운전대를 잡는다.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하며 내 속은 곪아가야 하나? 한숨을 쉰다. 누구를 위한 일인가? 가족? 진짜 가족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일까? 가족을 핑계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 아닐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남 탓, 상황 탓, 자기 합리화를 했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한 가지는 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 때론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속에 순도 100% 하고 싶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도 뒤엉켜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에도 언제나 스트레스와 갈등은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 다 좋고, 무엇이 다 싫다 라고 재단하듯이 가를 수 없고 비빔밥처럼 늘 섞여있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많았었다. 마음은 늘 한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나서 분산되어 있었다. 그 조각의 퍼즐을 맞추기 위해서 나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왜냐고? 누구도 조각난 내 마음을 볼 수 없었고, 조각난 퍼즐을 맞추어 줄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나만 알고 나만 행동해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 믿었다.
운전대를 잡은 지 10분쯤 지나자 도시를 벗어나 시골길이 펼쳐졌다. 창문을 활짝 열고 한 손을 밖으로 내밀면 시원한 바람이 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며 내게 손짓한다. “안녕, 미영아, 오늘도 시작이구나.” 그때나 지금이나 자연이 내게 말을 걸면 나는 위로를 선물로 받는다. 오늘도 KBS 클래식 FM은 광고의 잡음 없이 온전히 악기의 울림으로 내 차 안을 채워준다. 지금 이 순간만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8시 20분 주차장 도착, 신분증을 목에 걸고 부리나케 내 사무실로 향한다. 오늘도 나는 꼴찌로 사무실에 도착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로 시작한다.
그렇게 한숨을 돌리고 의자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믹스커피 한잔을 하며 오늘 하루 프로그램과 상담일정을 체크한다. 회사에 가면 ‘또 다른 나’라는 옷을 갈아입는다. 회사가 원하고 내담자가 원하는 나로 탈바꿈한다.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했고, 일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갔고 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 믿었다. 그것으로 인해 내 아이들이 겪을 분리불안과 애정결핍에 대한 죄책감은 커져갔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것에 나 자신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려고 했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옳고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고 믿었다.
오전 프로그램을 마치고 회사생활 중 나의 즐거움인 점심식사를 하고 회사 주위를 한 바퀴 돌면 다시 오후 업무를 준비한다. 잠시 숨을 고르며 유치원, 어린이집에 있을 아이들에 대한 생각을 하며 불평한 감정을 곱씹었다. 혹시나 아픈 아이를 원에 두는 날이면 죄책감과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기도 한다. 또 담장을 거닐며 몇 번이나 다짐을 한다. 난 휴직하면 카페에 앉아 멍 때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마음껏 걷고 싶은 만큼 걸어보고 싶다고 말이다.
오후 프로그램을 마치고 서류업무를 정리하면 오늘도 하루가 가는구나 싶은데.. 그 사이에 인간관계에서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부딪히는 갈등을 온몸으로 상대하다 보면 내 몸은 파김치가 되어있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해 모든 에너지를 집과 회사에 쏟아붓고 고달프고 지친 그 길을 걸었다.
때론 왜 이렇게 사람들 눈치를 보는지, 어떻게 하면 갈등 속에서 상대방에게 기분 나쁘지 않게 정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지 골몰하며 사는 내가 싫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이란 게 원래 그런 거지.’ 하며 스스로에게 채찍질하며 늘 미소와 따뜻함을 얼굴에 머금고 살았다. 타인의 눈은 나를 좋게 봤을지 모르겠다. 사실 내 속은 울고 있었고 차가운 남극 얼음판과도 같았다. 허울뿐인 나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