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만들어낸다. 지금 이 순간 인생의 작은 조각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먼지일까?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작은 사건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창조 과정이 된다. 지금 이 겨울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의미를 들여다보자.
겨울방학이 다 똑같은 겨울방학이 아니다. 그것을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와 해석은 달라진다. 여러모로 2022년 겨울방학은 속을 들여다보면 별다를 바 없지만 내겐 특별한 방학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겨울방학이다. 무엇이든지 끝이 있고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 상황이 달리 보이는가 보다.
2017년 11월 말에 육아휴직을 했다. 2018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함께 겨울방학을 보냈다. 매년 다가오는 겨울방학은 일상이었다. 나에게 이번 겨울방학은 남다르다. 2022년 9월 1일에 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한다. 더 이상의 연장은 없다. 9월에 복직을 안 하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최대한 연장해서 육아휴직을 다 끌어 쓴 결과이다. 이 겨울의 끝을 부여잡는 것은 아이들과의 24시간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주야장천 많이 있을 때는 겨울방학에 대한 남다른 의미가 없었다. 또 오는 방학이려니 생각했다. 이제는 ‘두 아이들과 온종일 부대끼며 보내는 겨울을 보낼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아쉬움과 섭섭함이 찾아온다. 사람 마음이 웃긴다. 겨울방학이라는 사실은 동일한데, 그 방학이 의미하는 바가 새롭게 보인다. 시간과 상황의 변화는 겨울방학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했다.
지나간 겨울방학의 시간을 돌아본다. 지금 내 앞에 겨울방학을 바라보게 된다. 아이들은 아주 어린 모습에서 어린이로 성장해 있었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지만 뛰어 놀기 좋아하고 건강하고 밝은 두 명의 남자 어린이가 있었다. 킥보드 타다가 내리막길에서 스릴을 즐겨보겠다는 도전으로 이마가 찢어져 심장이 쿵 내려앉았던 순간, 겨울 산에 올라 눈 뭉치를 가슴에 품고 걸었던 모습, 천 원으로 붕어빵을 3개 사서 셋이서 나눠 먹었던 순간, 추운 겨울 하루 종일 집에서 부대끼며 두 녀석은 싸우고 나는 소리를 지르던 모습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겨울방학은 코로나로 인해 할 것 없이 보내는데도 의미가 남다르다. 그냥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주기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엄마가 곁에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인생에 뭐 별게 있을까? 그저 아이들과 맛있게 반찬 만들어 같이 먹고 떠들고 웃으며 일상을 보내는 게 아닐까?
다시는 오지는 않을 2022년 겨울방학. 그리고 너희들과 24시간의 일상을 부대끼며 울고 웃고 찡그리고 짜증 내며 감정의 한솥밥을 먹던 이 순간이 내겐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까? 나만 쳐다봐주고 안아주고 나를 의지하는 아이들이 있어 감사하다. 두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 때로는 내가 귀찮다고 아이들을 밀어내기도 한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안정이 돼.”라는 아이의 말에서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아이들 곁임을 상기시켜줘서 고마웠다. 나도 너희들이 곁에 있어서 안정이 된다.
인생의 작은 조각이라고 할 수 있는 겨울방학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43살의 나와 9살, 12살 두 남자아이가 사소하고 지루한 일상을 함께 나누고 느끼며 바라보며 서로 소통하는 시간이 아닐까? 할 수만 있다면 사진을 찍듯 순간의 찰나에 흔적인 감정과 생각을 가슴에 새기고 싶다. 이 작은 조각이 두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김춘수의 ‘꽃’에서 ‘눈짓’을 ‘존재’로 바꾸어 표현하면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