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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Apr 03. 2022

우리들의 겨울방학 이야기

2. 삼시 세 끼를 챙긴다는 건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깨우지 않아도 알아서 제각각 일어난다. 밤 9시 30분에 잠을 잔다. 하절기엔 6시 30분에서 7시에 일어난다. 동절기인 요즘은 해가 늦게 떠서 그런지 큰 아이는 7시 30분, 둘째 아이는 8시에 눈을 뜬다.


아침에 일어나면 첫인사가 “엄마, 오늘 아침밥은 뭐야?”이다. 한마디로 눈만 뜨면 밥 타령이다. 때론 그런 큰아이에게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뭐 특별한 게 있니? 먹는 밥이 거기서 거기지.” 그럼에도 큰아이는 집요하게 자기가 원하는 걸 요구하고 만들어 달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엄마에게 의존해서 요구하는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이게 뭐라고 못 해줄까?’라는 생각이 든다. 때가 되면 내 곁을 떠날 아이라 생각 드니 불가능한 건 못하겠지만 해줄 수 있는 건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아침을 연다. 멸치로 육수를 내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를 만든다. 계란말이, 멸치볶음, 새우볶음, 메추리알 장조림으로 상을 차린다. 큰아이는 음식을 참 맛있게 먹는다. 둘째는 밥을 잘 먹지 않아서 걱정이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식사 습관이 많이 좋아져서 이전보다 밥을 잘 먹는다. 아무래도 두 형제가 경쟁이 생겨 큰아이가 잘 먹는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큰아이는 밥을 먹으며 음식평가를 쾌나 많이 한다. 어떨 때는 “이 집 김치찌개 정말 맛있네.”라고 한다. 그러나 때론 혹평을 늘어놓는다. “이 집 음식이 너무 싱거워.”라고 한다. 기가 막혀 웃을 때도 있고 주는 대로 먹으라며 버럭 화를 낼 때도 있다.     


아이들 배꼽시계는 정확하게 울린다. 아침밥을 먹고 집에서 숙제를 하고 놀면서 간식 저장고 수납장에서 과자를 먹는다. 점심때가 되면 제일 먼저 큰 아이가 묻는다. “엄마, 오늘 점심은 뭐야?”이다. 때론 내가 방심한 틈을 타서 “엄마, 오늘 라면 끓여줘?”하며 훅 들어온다. 우리 집은 일주일에 한 번 라면을 먹도록 되어 있다. 큰 아이는 끊인 라면을 한 그릇 다 먹고 밥을 한 공기 다 말아먹는다. 남은 국물이 아까운지 바닥이 보일 정도로 깨끗이 청소를 한다.      


음식 하나로 우리는 소통을 한다. “음식이 맛있니. 없니.”를 얘기하고 다음에는 어떤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큰 아이의 불만은 “엄마, 우리 집은 왜 음식을 잘 안 시켜먹어? 다른 집은 외식도 자주 하고, 시켜먹는데...”이다. 이에 “집 밥이 몸에 더 좋아. 그리고 엄마가 직장생활을 안 해서 돈을 아껴야 해. 밖에 음식을 사 먹으면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반응은 반반이다. 수긍을 하는 듯 하지만 마땅치 않은 표정을 보인다. 덧붙여서 말한다. “엄마가 회사 가면 집밥 구경은 하기 힘들 거야. 오히려 사 먹을 일이 더 많을지도 모르니 지금 이 순간을 즐겨.” 사실 맞는 말이다.      


언제까지 내가 집에 들어앉아 매끼마다 식사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회사에 복직하면 당분간 주말부부를 해야 하고, 불가피하게 사 먹어야 할 일이 생길 것이다. 솔직히 집밥을 손수 만드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는 건 매끼마다 해줄 수 없는 그날이 언젠가 올 것을 알기에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한 것처럼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기에 지금 밥하는 시간이 소중한 것이다. 남편 역시 저녁을 먹을 때 한 번씩 상기시켜준다. “이렇게 당신이 챙겨주는 저녁상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으려나. 지금 차려줄 때 맛있게 먹을게요. 나 오늘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었어요. 여봉이 해준 게 제일 맛있어요.” 빈말이라도 그렇게 말을 해주면 내 양어깨가 하늘을 향해 치솟는다. 그래서 더 힘을 내서 밑반찬과 메인 음식은 뭘 할지 골머리를 앓는다.     


삼시 세 끼를 챙긴다는 건 수고이다. 장을 보고, 식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드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완전식품을 사 먹는 것보다 시간 역시 많이 소요된다. 한번 주방에 서서 음식을 하면 최소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오늘도 주방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그것은 수고 끝에 가족들이 맛있게 먹어주고 그들의 건강을 챙겨줄 수 있는 손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는 막중한 책임감과 보람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새로운 간식거리를 도전한다. 내 뒤에서 큰 아이는 감시자라도 된 듯 가스렌즈 위에서는 무엇이 끊고 있는지, 밑반찬을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때때로 다가와 음식 맛을 보겠다고 입을 내민다. 요즘은 방학이라 ‘흔한 남매’ 책을 가지고 와서 음식 레시피를 펼친다. “엄마, 이거 해줄 수 있어? 집에 여기 있는 재료 있어?” 대부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면 종류이다. 볶음 전, 볶음면, 옥수수 버터구이, 감자전 등이다. 집에 있는 재료를 확인하고 없는 건 재료는 사서라도 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이 직접 맛을 보고 이후 더 해달라고 할지 한 번으로 끝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어떤 맛인지 스스로 느끼며 입맛에 맞는지 찾아가는 과정을 도와주고 싶다. 사람도 나와 맞고 안 맞고를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처럼 말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나와 맞는 음식취향을 찾고 새로운 음식을 도전해보는 것도 삶을 탐색하는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음식이 음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탐색하고 확장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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