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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Apr 04. 2022

우리들의 겨울방학 이야기

3. 전미영 도서관을 열어보자

“독서할 때 당신은 항상 가장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 
      시드니 스미스      


나는 책을 좋아한다. 책은 내게 그저 편안한 친구이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인지 어려서부터 두 아이들에게 늘 책을 가까이하도록 했다. 큰아이가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2~3살부터 나는 자기 전 15분 정도 그림동화를 읽어주었다. 큰아이는 글 읽는 속도가 느렸다. 학교를 입학하고 나서도 글을 쓰고 읽는 걸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큰아이는 엄마가 책 읽어주는 시간을 늘 기다리고 좋아했다. 큰아이는 벌써 12살이 되었는데도 자기 전에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한다. 작은아이 역시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한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은 휴직 이후였다. 일을 할 때는 자기 전 딱 15분을 정해놓고 읽어주었다. 한 사람 앞에 한 권이고, 총 두 권의 그림동화를 읽어주었다. 15분의 그림동화책 읽기는 어느덧 매일의 일상에 고정되었고, 하루도 빠지면 안 될 잠자기 전 의식이 되었다. 아이들은 점점 그림동화에 더 목말라했고 주말에 시간을 더 내서 책을 읽어주었다.      


2018년 1월 이사를 오면서 제일 먼저 도서관 탐방을 했다. 그 당시 아직 4살인 작은아이는 사서 선생님께 몇 차례 뛰지 말라는 경고를 받으며 점차 도서관 풍경에 적응해갔다. 이제는 1층 어린이도서관에 들어가면 두 아이들은 제각각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편안한 자세로 자기만의 독서 시간을 갖는다. 때때로 작은아이는 혼자서 들기도 버거운 10권이 넘는 책을 가져와서 내 앞에 내려놓고 1시간이든 2시간이든 읽어달라고 한다. 나는 그 많은 책들 속에 또 어떤 즐겁고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첫 페이지를 펼친다.   

   

두 아이들은 엄마인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 목소리에 강약이 없으면 지적을 한다. “엄마, 연기하듯이 읽어야지.”라고 말한다.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림동화에 나오는 인물에 맞춰 목소리에 색을 입힌다. 이전에 동화구연을 배운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나만의 스타일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 때였을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책 읽는 시간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어느 유튜브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내건 도서관을 열고 자녀들이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아직 두 자녀들은 스스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나부터 아이들에게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전미영 도서관’을 열었고, 그 도서관이 열리면 최소 1시간에서 최대 2시간 연속해서 그림동화를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도서관에서 빌린 책, 집에 있는 책을 각각 15권 넘게 들고 온다. 25~30권을 다 읽고 나면 내 목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다. 솔직히 아이들은 그림동화를 읽을 때 글씨를 보기보다 내 목소리를 들으며 그림 전개에 집중한다. 어차피 글씨를 알아가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이 아니기에 그저 편하게 책과 소통할 수 있는 바람에서 계속하게 되었다.      


이번 겨울방학에도 두 아이들과 매일 전미영 도서관을 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 하루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우고 의논을 한다. 그중에 전미영 도서관은 빠지지 않는다. 대체로 저녁을 먹고 난 이후에 도서관이 열린다. 때론 2시간이 버거우면 아이들과 타협을 한다. 오늘은 1시간만 읽자고... 거실에 셋이 앉아 엄마의 목소리와 그림동화에 집중한다. 한 권의 책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책을 집어 든다. 두 아이들은 공평하게 해야 한다며 서로의 책을 순서대로 번갈아가며 엄마 손에 쥐어준다. 아이들은 왜 전미영 도서관을 좋아할까? 생각을 해본다. 나는 책을 읽으며 글씨를 제대로 보는지 확인을 하지 않는다. 읽고 나서 엄마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궁금증인 주인공이 누군지, 느낀 점이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하지 않는다. 질문은 간단하다. “어땠어?”가 끝이다.     

최근에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아 오늘은 도서관을 못 열겠다고 하면 큰 아이가 한 권 정도 들고 와서 나와 작은아이를 앉혀놓고 그림동화를 읽어준다. 큰아이가 읽어주는 그림동화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이 새롭다.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기분이 이런 거였구나.’     


아이들 덕분에 그림동화와 친해지게 되었고, 그림동화를 통해 책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림동화는 글은 적지만 글과 그림을 통해 강력하게 전달되는 삶의 메시지가 있다. 때로는 기쁨, 슬픔, 행복, 아픔 등이 온전히 마음에 전달된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시간은 의무가 아니다. 나 역시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   

    

아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책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반복적인 일상에서 아이들과 대화할 소재를 찾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책은 풍성한 대화할 소재를 만들어준다. “엄마, 앤서니 브라운 아저씨는 원숭이를 좋아하나 봐. 그림에 원숭이가 많아. 또 숨은 그림 찾기가 있어서 재밌어. 엄마 같이 찾아보자.” 우리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숨어 있는 그림을 찾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가는 앤서니 브라운, 요시타케 신스케, 미야니시 타츠야, 백희나, 김영진 등을 좋아한다.   

     

전미영 도서관 외에 매일 아이들이 원하는 한 권의 책을 가져와서 한 바닥씩 돌아가며 읽는다. 최근에 앤서니 브라운의 ‘기분을 말해봐’를 거의 매일 들고 왔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기분을 묻는다. 거기에 더불어 기분 온도를 말하면 서로의 기분이 안 좋을 때는 조심하고 거리두기를 하게 된다.      


아이들이 힘들고 고달플 때 책을 통해 위로를 얻고 책에서 친구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책에서 정보만 얻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할 이유와 희망을 얻고 또 그 누군가에게 책에서 느낀 좋은 것들을 나누며 사는 두 아이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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