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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모 비아토르 Apr 06. 2022

우리들의 겨울방학 이야기

5. 너희들도 숨 쉴 구멍이 필요하지

나는 계획과 규칙에 맞춰 일상이 돌아가는 것을 좋아한다. 겨울방학을 일주일 남겨놓고 일이 벌어졌다. 1월 25일에 큰 아이가 코로나 확진이 되면서 일상에 지각변동이 찾아왔다. 큰아이는 14일 동안 안방과 안방에 딸린 화장실에서 생활했다. 서로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같이 성경을 읽을 수도, 문제를 풀고 답을 확인하기도 힘들었다. 물건 접촉도 같이 하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각자 방에서 알아서 읽었다. 그 나머지는 다 멈춤이 되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나의 아쉬움과 섭섭함과 달리 굉장히 신나 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좋다고까지 했다. 그게 아이들의 진짜 속마음인가 보다. 나 역시 코로나 격리라는 상황에서 굳이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최소한의 일상생활을 하며 ‘내려놓을 건 내려놓자.’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아이들은 각자 자기 방에서 놀고먹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 불안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적응이 되었다. 아이들은 각자 놀고 나 역시 그 시간에 식탁에 앉아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아이들은 집에 있는 어떤 물건을 활용해서든지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놀이에 최적화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지루하고 심심할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 삶의 창의성과 상상력은 부모가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그 상황에서 발현될 수 있음을 알았다. 코로나 격리가 아니었으면 발견하지 못할 깨달음이었다. 문득 내가 너무 아이들을 통제하고 규칙을 강요하진 않았나? 돌아보게 되었다. 사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것만 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아이들의 반응을 보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매일 해야 할 일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진지하게 물었던 적이 있었나? 그저 내 기준으로 최소한의 해야 할 일이라고 정해놓고 하라고 일방적으로 시킨 것뿐이었다.     


쌍방향의 소통 없는 일방적인 강요였다. 그렇게 코로나 격리 덕분에 자유로운 시간은 2월 13일까지 20일 동안 계속되었다. 내 마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계속 불안했을까? 전혀 아니다. 점차 마음이 불안에서 옮겨갔다.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아도 편안했다. 큰아이에게는 지금 다니는 영어학원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야. 그런데 학원은 네가 공부하는 것에 조금 더 도움을 주지. 학원에 앉아 있다고 해서 네가 공부를 하는 건 아니야. 네가 생각할 때 엄마가 가라고 해서 그냥 학원을 가는 거라면 한번 생각해봐. 엄마는 네 생각을 존중할게.” 큰아이는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생각이 깊다. 보통은 “학원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마.”라고 하면 바로 “안 다녀.”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요즘 드는 생각은 아이들에게도 자기만의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기대와 기준으로 아이들의 숨구멍을 막고 있었던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최소한 기준은 아이들에게는 최소한이 아니다. 그 기준은 아이와 함께 협의해서 정해야 한다 . 정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아이에게 답이 있다. 내가 답을 정해놓고 주입하려는 시도는 그만하자.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아이에게 투사하지 말자. 때로는 못난 엄마 만나 고생하는 두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투름을 아이에게 시인한다.    

  

우리에게는 매일 반복해서 말하는 암호 같은 구호가 있다. 이 구호는 기분이 좋을 때, 외출할 때, 기분이 나쁠 때, 잠자기 직전 등 하루에 최소 세 번은 말한다. 두 아이들은 나에게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내 엄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한다. 나는 두 아이들에게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한다. 이 암호는 엄마인 나와 아이들의 관계가 꼬여있거나 팽팽한 긴장감을 줄 때 특효약이다. 우리에게 숨 가쁘고 숨이 턱턱 막히는 관계에서 힘을 빼고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숨을 고르게 해 준다.      


큰아이가 2학년 때인가? 잔소리는 늘어가고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문득 잔소리를 줄일 수 없다면 좋은 말을 더 늘리는 노력을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었다. 어느 책에서 보고 작은 아이가 돌 되기 전부터 가끔씩 했던 멘트를 기억해냈다. 그 말이 “사랑해. 고마워. 축복해. 엄마 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마워.”이다. 요즘은 거기에 더 살을 붙인다. “아이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     


아이에게 숨 쉴 구멍을 주자는 글을 쓰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아이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을 때, 친구관계가 원활하지 않을 때 불쑥 두려움과 불안이 올라온다. 그러한 마음을 다잡고 중심을 잡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매일 새벽 나만의 고요한 시간에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마음을 다잡는다. 더 좋은 아이들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면 두 자녀에게 좋은 엄마가 될지에 대해 하나님께 무릎을 끊는다.      


내 생각대로 아이들은 커주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자기다움을 확립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자기만의 숨 쉴 구멍을 터득하고 만들어서 험한 세상에서 살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나는 뒤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기도하고,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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