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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사랑이 늦어서 미안해

by 규린



강민호는 여름을 처음 본 순간, 이유도 모른 채 시선을 빼앗겼다.
입학식 날, 운동장 한쪽에서 친구들과 웃으며 장난치는 윤여름.
햇살 아래 그녀의 밝은 미소가 이상하리만큼 눈에 들어왔다.

민호는 원래 춤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춤은커녕 리듬 타는 것도 서툴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름이 속한 댄스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이번 주 금요일이 신입 부원 오디션이래."


"와, 작년엔 경쟁률 엄청났잖아?"


"당연하지. 윤여름이랑 같은 팀 될 수 있는 기회인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민호는 결심했다.
그저 가볍게 호감을 가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녀가 춤추는 모습을 더 자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의 시선이 자신에게도 머물기를 바랐다.




"너, 진짜 댄스부 오디션 볼 거야?"

민호의 절친, 태훈이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야, 너 춤 못 추잖아."


"그러니까 연습해야지."


"미쳤네… 혹시 윤여름 때문에 그러는 거냐?"


"……"



민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훈은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그냥 다른 방법을 찾아. 굳이 춤까지 출 필요는 없잖아?"


"아니, 난 댄스부 들어가고 싶어."


"그럼 최소한 기본기라도 배워야 할 거 아냐!"



그 말에 민호는 곧장 유튜브를 켜고 '초보자 댄스 기본기'를 검색했다.
낮에는 수업 듣고, 밤에는 혼자 연습했다.
동작은 어색했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 오디션 당일이 되었다.




"이제 마지막 참가자, 강민호."

여름은 심사위원석에서 참가자 명단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강민호…? 누구더라?"



낯선 이름이었다.
다른 부원들도 웅성거렸다.

"쟤, 춤추는 애 맞아?"
"아닌데? 처음 보는데?"



그때, 민호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꿋꿋하게 음악을 신청했다.

"선곡은 Love Shot입니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민호는 준비한 대로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동작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의 눈은 오직 한 곳만을 향하고 있었다.

여름은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쩐지, 이 낯선 신입생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너, 왜 댄스부 지원했어?"

오디션이 끝난 뒤, 여름이 직접 민호에게 물었다.
민호는 짧게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

"그냥… 관심 있어서."
"춤에?"
"……아니. 너한테."



여름의 눈이 커졌다.
민호는 멋쩍게 웃으며 덧붙였다.

"잘 부탁해요 선배님"



그렇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강민호는 그렇게 댄스부에 합격했다.
춤이 서툴렀지만, 매일같이 연습실을 찾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시선은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윤여름.

처음에는 여름이 민호의 존재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도 점점 그를 의식하게 되었다.

선배, 이 동작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하면 돼. 손 각도를 좀 더 신경 써봐."
"오~ 윤여름 선배 직강이라니, 영광인데?"



장난스러운 말투에 여름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민호가 연습을 마칠 때까지 계속 그를 지켜보았다.




"선배,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어느 날, 민호가 여름을 불러 세웠다.



"응? 무슨 일인데?"



"그냥… 나 궁금한 게 있어서요."



민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선배는 춤출 때 제일 행복해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하지만 여름은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응. 춤이 내 전부니까."
"멋있네요."



그날 이후, 민호는 더욱 열심히 춤을 연습했다.
여름이 왜 춤을 사랑하는지, 그 감정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민호야, 너 춤 많이 늘었다?"





두 달 뒤, 댄스부 공연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여름은 민호의 무대를 보며 놀랐다.
분명 처음에는 어설펐던 아이가 이제는 꽤 괜찮은 댄서가 되어 있었다.

"진짜 고생 많이 했구나."


"선배 덕분이죠."


"내 덕분?"


"응. 선배처럼 되고 싶었거든."



여름은 순간 당황했다.
그의 말이 어쩐지 평범한 후배의 존경심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선배는 나 안 좋아해요?"




공연이 끝난 뒤, 뒤풀이 자리에서 민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여름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무슨…?"


"난 선배 좋아해요.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여름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사실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었다.




"민호야… 우리 아직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



민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고백도 하기 전에 차이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도 감정이 변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그녀도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름이 졸업하는 날이 되었다.

민호는 다시 그녀 앞에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꽃을 들고 있었다.


가슴이 아팠던 이유가 뭔지 이제 알겠어."




"……민호야."



"이제는 나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돼요?"



여름은 잠시 침묵하다가 민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너, 끝까지 이기적이다."



"그래도 이번엔 나 좀 봐줄래?"



여름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 너무 늦어서 미안해."



그렇게, 벚꽃 아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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