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게 된 날을 잊지 않겠다고 울던날

-그리움이 된 너에게

by 규린

그랬다. 이맘때에도 비가 이렇게 내렸다. 투둑투둑 창문을 두드리며 고요한 공간을 가득 채우던 소리. 원래 같았으면 그 빗소리를 들으며 평온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고요함이 쓸쓸하게 느껴진다.

사랑과 설렘을 처음 느낀 건 한여름, 8월이었다. 무더운 날씨에도 누군가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던 그날. 덥지도 않았다.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모든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평소처럼 좋아하는 시집을 들고 도서관에서 나와 근처 카페로 향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구석자리에 앉아 첫 페이지를 읽으려던 찰나,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커피를 가지러 일어서는 순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잘 정돈된 흑발에, 동그란 눈동자와 또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경영학과 선배로 보이는 과잠이 그의 어깨를 덮고 있었다. 그는 다정한 말투를 가진, 어디 하나 모난 곳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처음 설렘을 느껴본 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선배를 마음에 두었다. 이름도 몰랐지만, 그 사람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선배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한국대의 왕자’라 불리며 학과 과대표와 과탑을 놓친 적 없는 인재라는 소문이 돌았다. 항상 단정한 셔츠와 슬랙스를 입고 다니는 모습은 마치 그림 같았다.

그러나 선배의 마음을 얻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 했다. 그를 둘러싼 벽은 높고 단단했다. 그렇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학생회 활동에 지원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었다.



학생회 활동 중 처음으로 선배와 마주한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학생회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을 열며 들어가는 나를 보고 다정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서 있어? 들어와, 유진아.”
내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참 후, 선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요.“
”뭐 마실래?“
”선배가 사주실 거예요?“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음료가 도착하기 전, 나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선배, 여자친구 있어요?“
그는 놀란 듯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없어. 왜?“
내가 신경 쓰던 소문을 알아챈 듯, 선배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나 좋아하지?“
그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겨우 그 질문에 답했다.
”네.“
그러자 선배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랑 연애 한번 해볼래, 유진아?”
나는 눈물이 맺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내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행복한 연애를 시작했다. 매일 붙어 다녔고, 사람들은 우리가 커플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와 함께 보낸 시간은 매 순간 특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조금씩 변해갔다.

그가 회사의 이사가 되고, 바쁜 삶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점점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힘듦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짐이 된 것 같았다. 대화는 줄었고, 그에게 다가가는 것이 점점 어려워졌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하준 오빠, 우리 잠시 쉬어갈까?”
그는 답이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헤어짐을 결심했다.
“오빠, 우리 그만 하자.”
그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5년 3개월의 사랑을 끝냈다.


헤어지던 날, 나는 그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오빠, 사랑했어. 당신을 좋아하게 된 날을 잊지 않을게.

그 이후로도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 그를 떠올린다. 우리가 함께했던 순간들, 그리고 끝내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사랑을.

하지만 나는 그날의 감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사랑했던 순간만큼은 진심이었다. 사랑에 빠졌던 날을 나는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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