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라클 May 08. 2023

어버이날

어머님의 사랑

오늘은 일 년에 한번 있는 어버이날이다. 가정의 달인 오월이 되면 만감이 교차한다.

우선 여기저기 챙겨야 할 사람들도 생각나고 경제적으로 주머니 생각도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내가 챙겨야 할 부모님은 한 분이시다는 것이 마음이 씁쓸해졌다.

이제는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시어머님은 나에게는 한 분인 어른이시다.  

큰아들인 신랑은 어머님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어머님은 결혼해서 아파트 비밀번호도 다 알고 언제든 다녀가신 분이셨다. 한번 다녀가시면 쓴 잔소리가 이어졌다. "집안 꼴이 뭐냐. 청소도 좀 하고 다니고 냉장고 청소도 좀 하고 다녀야지." 난 병원일에 지쳐서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어머님의 잔소리는 정말 싫었다.


결혼하기 전부터 시어머님은 나에게는 무섭고 냉정한 분으로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근무하면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는데 어머님에게 나도 모르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불을 각도에 맞혀서 정리하시는 어머님은 매사에 깔끔하시고 부지런하셨다. 그런 눈에 며느리의 집안일은 언제나 부족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쓴 잔소리는 한마디씩 나의 가슴에 쏙 박혀서 상처로 남았다.

첫아이가 태어나자 주변에서  "시어머니를 똑 닮았네. 미워하면 닮은다고 하던데. 시어머니를 미워했나 봐." 하였다.  실은 난 임신해서 시어머니를 얼마나 미워했던지 그 말이 진심으로 마음에 와닿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이 태어나고 어머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부모가 됐을 때 부모가 베푸는 사랑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10년간 투석을 하시는 아버님을 지극정성 병간호하시고 한가정의 경제적인 부분까지 책임을 지시고 살아온 어머님은 존경스럽게 다가왔다.

내가 일을 할 수 있게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반찬을 언제든 챙겨주셔서 조용히 집에 와서 냉장고에 넣고 가시기도 하셨다. 한 여자로 인생의 힘든 시기를 이겨낸 분으로 나에게 하는 말들이 가시 돋친 말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어머님의 말들이 진심으로 자녀들을 사랑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머님은 핸드폰을 마련하게 되면서  문자를 보내는 기능을 손주들에게 물어서 배우게 되었다. 문자를 처음 배운 날 어머님은 며느리인 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큰며느리, 사랑한다."라고 문자가 왔다. 감동스럽고 고마웠다.

난 과연 어머님처럼 손주들을 돌봐주면서 아버님 병간호까지 할 수 있을까 싶다.

난 답장으로 "어머님 건강하게 저희들 곁에 오래 있어주세요" 라고 보냈다.


이제는 시어머님도 80이 다 되어 가시다 보니 여기저기 몸이 아프시게 되었다.

작년에는 피부 암과 양쪽 무릎관절 수술에 기력이 많이 쇠약해지셨다.

부모님의 잔소리가 명언으로 들리는 순간 내가 어른이 돼가고 있다고 한다.

내 나이 오십이 돼서야 어머님의 잔소리는 나에게 사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의 며느리인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저희들과 행복하게 살아요

작가의 이전글 봄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