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한 것 같아 빚진 마음이었는데 성의 표시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첫 해에는 강원도를 갔는데 거기에서 관광과 먹거리, 재래 시장까지 꽤 흡족한 시간을 보냈었다.
올해는 남쪽으로 가기로 했다. 부산에 사는 언니와 질녀가 기장에 좋은 펜션 있다고 다녀가라고 해서 곧바로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는데, 이왕 가는 걸음에 거제도에서 1박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영광스럽게도 거제도 숙박은 내가 법인 콘도를 예약해서 해결하기로 했다.
맛집은 현지인이 추천해 줄 수 있으면 그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듯해서 거제도 토박이인 시매부에게 전화를 했다.
시매부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안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아뇨 고모부가 더 잘 알아요. 몇 시에 통화 가능하세요?"
시누이 부부는 주말부부인데 시매부만 모 선박회사의 임원으로 거제도에 살고 있어서 그 방면에서는 시매부가 훨씬 잘 알 수 있을 터였다.
시매부가 톡으로 보내준 맛집 메뉴인 멸치 쌈밥, 물회, 회, 매운탕, 굴국밥을 공유하자 비릿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 친정 식구들은 반색을 하며시매부에게 무척 고마워했다.
시매부는 식사 후 갈 수 있는 까페 목록까지 친절하게 올려주었다.
먹고 놀 일만 남겨둔 여행 직전의 며칠처럼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소풍을 앞둔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행복한 며칠을 보냈다.
금요일 아침 7시에 언니집에서 출발했다. 차에 같이 탄 사람들에게 좀 더 일찍 출발하자고 말하고 싶었으나, 누군가 사정이 있나보다 하고 정해주는 대로 움직였다고 했더니, "나도나도" 하면서 누가 시간을 정했냐고 물었다. 그제서야 오빠는 더 일찍 나서고 싶었으나 직장 생활 하는 내가 힘들까 봐 시간을 늦추었다고 했다.
예상대로 대전까지 차가 겁나게 많이 막혔다. 부산에서 언니가 전화가 왔다. 차가 막혀서 어쩌냐, 하면서 천천히 오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우리가 고생할까봐 애가 타는 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언니야 걱정 마라, 우리는 차 안에서 벌써 여행 기분 내고 있다."
도착하자마자 기장에서 유명하다는 장어 구이와 전복죽을 먹었다. 숯불에 구운 장어를 밥 먹듯이 먹었다. 정신없이, 끝도 없이 먹고 또 먹었다. 장어 구이로 배가 불렀지만 언니가 마지막에 입가심 하라고 전복죽을 추가했다. 배불러서 낭패라고 했더니 전복죽 들어갈 자리는 따로 있다고 했다. 전복죽도 별미처럼 맛있었지만 입가심 하다가 하마터면 배터지는 줄 알았다.
기장의 명소인 용궁사를 들른 후 숙소에 가기 위해 해안도로를 달렸다.
창문을 열고 얼굴에 바닷바람을 맞으니 머리 속에 있던 잡 생각들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듯 했다.
숙소에 도착해 냉장고에 넣으려고 각자 가지고 온 짐가방을 털었다. 이모와 언니들이 해온 김치와 밑반찬, 식재료를 꺼내 놓으니 식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냉장고가 금세 가득 찼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여기서 한 달은 거뜬히 살겠네." 했다.
저녁에 조카가 왔다. 조카가 오기전에 우리는 배불러서 회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말했는데도 소용없었다. 광안리에서 기어이 회를 떠왔다. 모전여전이 따로 없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먹자 먹자 먹고 볼 일이여," 했다. 갓 떠온 회라 신선해서 그런지 탱글탱글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착착 감겼다. 바닷가에서 먹는 멍게 해삼 문어의 맛은 가히 비교 불가였다.
식사가 끝나고 술과 과일과 떡을 먹으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젊은 조카와 조카 사위, 남자들은 골프에 대한 경험과 훈수를 술잔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했다. 사람들의 화제 거리를 들으면 나이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의 화제 거리는 말할 것도 없이 건강이었다.거기에 모인 친정 식구들의 나이를 계산해보니 평균 연령이 69세였다. 우리는 특히 건강에 좋은 음식, 먹으면 안되는 음식, 당뇨가 있는 사람이 조심해야 될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나도 천기누설이라고 하면서 한의원에서 배운 몇 가지 운동을 추천해 주었다.
이야기 도중에 가장 많이 넣은 추임새는 백여시(백여우)였다. 들은 말을 그냥 넘기지 않고 부연 설명이라도 할라치면 "백여시다, 너가 이제 백여시가 다 됐구나." 했다.
그 말은 더 이상 어리숙하지 않구나, 어찌 그런 것까지 속속들이 아느냐, 여우처럼 지혜롭고 똑똑하구나. 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듯했다.(나만의 착각일지도)
다함께 모여 앉아 시골에서 유행하던 귀신이야기를 했다. 온갖 귀신이 총 출동했지만 거기에 있는 어떤 사람도 실제로 귀신을 본 적이 없다는 말에 다소 싱겁게끝났다.
아침에는 언니들과 이모가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일찌감치 거제도로 향했다.
조카의 조언대로 거가대교 휴게소에서 그곳의 명물인 십원빵을 먹었다.
설마 빵이 십원이라서 '십원빵'이라고 하는 건 아니지?십원짜리가 어딨노?풀빵인데 10 이라고 찍혀 있어서 '십원빵'이라네,4000원이다, 풀빵인데 풀빵보다 맛있다. 비싸서 맛있나, 원래 맛있나? 그냥 처 묵어라.
관광지에 굳이 갈 필요가 있겠나 싶게 도로를 달리다가 차를 세우고 내리기만 해도 탁 트인 바다 경치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특별한 구경거리가 없나 하던 차에 조카 사위가 돔 식물원에 가보라고 했다. 돔 식물원을 보자 시골 출신 친정 식구들은 비로소 취향을 저격 당한 듯 모두가 환호하며 좋아했다.
식물원 안에서는 지상 위, 공중 다리 위, 할 것 없이 사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뎠다.
나도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어 사진을 많이 찍었다. 나보다 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바로 올캐 언니였다. 어쩜 그렇게 쉬지 않고 사진을 찍느냐고 했더니 "사진 밖에 안 남는다. 집에 가서 보면 더 멋지다." 했다.(명언 인정)
식물원에서 나와서 시매부가 알려준 숙소 근처에 있는 물회 집으로 갔다.
물회를 보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서울에서 유명한 물회 맛집이라 해도 회는 몇 점 되지도 않으면서 양배추 채만 한 가득인데 반해 조개처럼 생긴 우묵한 그릇에 각종 해물이 채워져 있었다. 야채는 고명처럼 조금 뿌려져 있을 뿐이었다.
이모는 집에 가면 생각날 맛이라고 했다. 음식 박사인 이모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물회는 강렬한 식사 경험을 선사했다.
숙소에 가서 짐을 놓고 바로 사우나로 향했다. 다들 피곤하다 하며 사우나가 별로 땡기지 않는 눈치였지만 사우나 덕후인 내가 사우나를 갔다 와야 피로가 풀리고 밤에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며 반 강제로 일으켜 세웠다. 노천탕이 없어진 게 좀 아쉬웠지만 전체적으로 물이 깨끗했다. 습식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누룽지 탕을 끓여 먹었다.
우리 친정 식구들은 나이가 들었든 그렇지 않든 '에헴' 하며 앉아서 대접을 받으려 하는 사람이 없다.
손자들도 여럿 있고 남 부러울 것이 살고 있지만 몸에 배인 바지런한 습성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가장 연장자인 이모까지 들고 일어나 수저와 그릇을 모두 꺼내 뜨거운 물에 튀기며 저녁 식사 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튿날 아침에는 떡국을 먹었다. 떡국을 먹으며 이번 여행은 무엇보다 음식 조합이 최고라고 했다. 사실 그 말은 지난번 강원도에 갔을 때도 한 말인데 따지고 보니 함께 움직일 때마다 잘 먹은 셈이다
체크 아웃을 한 후 재래시장인 서호시장과 중앙시장을 가기 위해 통영으로 향했다.
우리 친정식구들이 외지에 가면 빠뜨리지 않는 것이 재래시장에 가서 장을 보는 것이다.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식재료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 건어물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관심 1호로 자리매김했다.
건어물 뿐만 아니라 모든 식재료에 해박한 이모와 큰 언니 덕에 우리는 야무지게 시장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물미역과 머위와 김,뿌리다시마와 잔멸치를 샀다. 이모와 언니가 고른 멸치는 집집마다 한 박스 씩 가져갔다. 통영 명물인 오0사 꿀빵도 오는 길에 들러서 집집마다 한 박스를 챙겼다.
서울로 가는 길도 군데군데 정체가 되었다. 차가 막히는 통에 피로가 살짝 몰려 들기도 했지만 이모가 실화라고 해 주는 현대판 꽃뱀이야기를 듣느라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멸치를 손질했다. 다시 멸치여서 내장을 빼고 머리는 남겼다.
이튿날 아침에 뿌리 다시마와 멸치로 다시물을 우렸는데 명품 답게 아무리 끓여도 노릇하고 투명한 국물이 탁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잡내가 나지 않고 깔끔했다. 한 마디로 고급진 맛이 났다.
너풀너풀거리는 물미역이 보기만 해도 건강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담갔다가 충분히 문질러 씻고 으깨짐을 방지하기 위해 살짝 데쳤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며칠 동안 여행 이야기로 제법 행복할 것이다.
이모들과 언니들은 통화를 길게 하며 별별 이야기를 다 할 것이다. 내가 00를 흉 보는 것은 아닌데 하면서 허벌나게 흉을 보기도 하겠지. 흉을 보다가 미안해서 그래도 백여시들 덕택에 구경도 잘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를 덧붙여 줄 것이다.
나도 언니랑 벌써 몇 번이나 통화를 했다. 첫날에 한 번 하고 그 다음날은 두 번을 했다.
우리는 평소에 오빠나 남동생이 얼마나 성실하고 집안 일을 잘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그런 경상도 남자 없다, 아니지 그들은 이미 경상도 남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침이 마르게 칭찬했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언니야, 오빠만 힘든 게 아니라 올캐도 오빠 땜에 힘들겠더라.
오빠가 담배도 아직 못 끊었더마, 창문을 열고 침을 밷지를 않나? 별것도 아닌 일에 화를 벌컥 내지를 않나?
둘이 바람이라도 쐴 수 있게 우리가 종종 데리고 나가 줘야 할 것같아.
부산 큰 언니 이야기도 했다. 언니가 형부를 거둘 사람은 자기 밖에 없다하더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실감이 나더라, 그러니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겠노? 우리가 단 며칠이라도 형부를 거둬줘야 해. 형부가 그래도 착하잖아 우리가 두사람을 데리고 나와서 바람을 쐬게 해 줘야 돼. 꼭 그러고 싶어.
이모 이야기도 빠지지 않고 했다.
언니야, 이모는 아직 얼마든지 모시고 다녀도 되겠더라.
그 연세가 되면 전두엽이 쪼그라 들어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거나 배려한다거나 친절하게 하는걸 못하거든.
그런데 이모는 안 그렇더라. 할 말도 많이 참고 잔소리도 안 하데. 앉아서 대접 받는 것은 싫어하는데 돈은 쓰고 싶어했어. 이번에 이모가 담아온 봄동 겉절이 있잖아, 나는 그렇게 맛있는 겉절이는 내 생전 처음이야, 언니도 먹어봤잖아, 혀를 베어 먹는 맛이더라니까. 또 찰밥하고 밑반찬 까지 바리바리 싸왔지, 거기다 시장에 가면 좋은 식재료까지 골라주니까 항상 배울 게 많은 것 같아.
여행을 통해 뜻밖에 가족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사무실에 가자 마자 달력을 들추었다. 올 가을 친정 식구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 계획을 짜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