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소금 Mar 13. 2024

사무실에서 도시락 혼밥

사무실은 산세권(건물 뒤에 산), 도세권(근처에 도서관)에다가 딸네 집까지 근처에 있어서 건강을 위한 운동이나 취미 생활하기가 좋을 뿐 아니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으니 그건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식당이 없는 것이다. 직원 식당이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무실 근처에 음식점이 이렇게 없기도 힘들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희소하다. 베이커리가 있고 떡볶이 집도 있고 최근에는 돈까스 집도 생겼지만 그런 곳은 어쩌다 한 번은 갈 수 는 있겠지만 어느 모로 보아도 한 끼 든든한 식사를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먹을 만한 식당이 있다해도 직원 식당이 아닌 이상 살림하는 주부가 매일 점심을 사 먹는 일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직장인라고 해도 그렇다.(나만 그럴 것) 



도시락을 싸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어쩔 수 없이(내 탓 아님) 도시락을 싸는 모양새가 되었으니 궁색해 보이지 않겠군 했다. 도시락을 싸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직원들과 함께 둘러앉아서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함께 펼쳐 놓고 먹지 않으니 반찬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센터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늘어서 있는 강좌 시간에 맞추어 근무시간을 배정했기에 직원들마다 근무시간이 제각각이다. 근무 시간이 달라서 식사 시간도 제각각이 될 수 밖에 없으므로, 12시나 1시 정각에 점심을 먹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3명씩 같은 시간대에 식사를 한다. 한 명만 빼놓고. 누구일까요?

나는 어쩔 수 없이 혼밥을 하게 되었다. '혼밥 좋아,완전 좋아, 옛날 같으면 서러웠을지도 모르지만 요즘에는 식당에서도 ‘혼밥’ ‘혼술’을 트렌드로 즐기는 세상인데 사무실 혼밥이 뭐가 어때서?'

다행을 넘어 오히려 쾌재를 불렀다.

처음에는 옛날 생각이 나서 일단 도시락 밥 위에 달걀프라이를 얹어 주었다. 그 외 반찬은 김치나 멸치조림, 깻잎이나 삭인 고추 등 되는 대로 쌌다. 겨울에서 보온 국통에 국을 담아 가서 밥을 말아 먹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먹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싼 반찬은 정말 맛이 없었다.

가장 기대가 되고 즐거운 시간이 식사 시간이고 싶은데 반찬이 맛이 없으니 기대도 없고 밥을 먹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다른 직원들(대개 독립한 미혼 청년)에게도 식사 메뉴를 고르는 것은 쉬운 문제가 아닌 듯 하다.

피자를 시키거나 편의점에서 (혜자)도시락을 먹을 때도 있지만 컵라면과 3분 카레를 압도적으로 자주 먹고 있으니  말이. 피자나 컵라면, 편의점 도시락이 젊음의 음식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음식을 상시로 먹으면 몸이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라면도 그렇다. 아무리 세계적인 음식의 반열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끼니나 간식으로 자주 먹는 것을 보면 짠한 마음이 든다.

 


도시락의 끝판 왕은 일본 영화 '461개의 도시락'이 아닐까 한다.

이혼 후 아들과 둘이 살고 있는 아빠가 부모의 갑작스런 이혼으로 혼란스러워 하다가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해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위해 3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시락을 싸는 이야기이다. (브런치 연재 '영화 너머 삶의 진실을 엿보다' 4화 참고)



아빠는 아침부터 창의력을 불태우며 도시락을 싸게 된다. 아빠는 아들의 도시락을 준비하며 비로소 아버지로서의 자리를 찾으며 생활에 활기를 얻는다. 뿐만아니라  아버지의 역할에 소홀했던 것에 대한 미안함에서 벗어나게 되고 아들과의 관계도 회복하게 된다. 아버지의 사랑을 전달하기에 도시락만큼 감동을 줄 수 있는 것도 드물 것이다. 도시락은 사랑임에 틀림없다.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위해 도시락을 싸게 된다면 이 영화에서 나온 도시락에서 팁을 얻어야 되겠다 했는데 그 첫 번째 대상이 내가 되었다. 나를 위해 이 영화를 참고한다고? 밥과 반찬이 모든 면에서 훌륭했지만 나 먹자고 뭣 하러 그런 수고를 사서 한단 말인가?

그래도 영화에서 본 나무 도시락은 갖고 싶었다. 이 기회에 나무 도시락을 장만하는 거야. 열심히 검색을 했다.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은 나무 도시락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다. 드물게 있는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가격이 너무 비쌌다. 하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구비해 놓으면 반찬도 도시락 수준으로 올라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찜한 도시락의 구매 후기를 살펴 보았다. '예쁘긴 한데 국물이 샌다, 씻으니 칠이 벗겨진다, 반찬은 물기 없는 걸로.' 같은 댓글이 보였다. 내가 담아갈 수 있는 반찬 중에 물기가 없는 것이 있을까? 칠이 벗겨지면 끝인데? 나랑은 인연이 아닐쎄.



하루를 두 부분으로 나누어 아침에 하는 집안 일을 1라운드, 직장에 출근해서 하는 일을 2라운드라고 치면, 1라운드에서 진이 빠지면 사무실에서 일할 때 무척 힘이 든다. 1라운드 집안 일 중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식구들이 하루 동안 먹을 음식을 하는 일인데 거기에다 도시락까지 추가해서 신경 쓰다 보니 더 힘들어졌다.



지치지 않으려면 반찬 만들기가 간단해야 했다. 자연히 비주얼이니 영양가니 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맛없는 도시락을 계속 먹는다면 근무 시간 8시간이 몹시 무미건조하고 지루할 것 같았다. 간소하면서 맛도 챙길 수 있는 음식이 무얼까 하다가 생각한 것이 일품 요리였다. 한동안 오징어 덮밥이나 쇠고기 덮밥, 마파두부 덮밥, 김치 참치 볶음 덮밥, 심지어 나물 덮밥까지 자주 도시락 밥 위에 덮을 음식을 했다.



식구들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던 것이 도시락을 위한 반찬으로 바뀌게 되니 덮밥을 하는 날은 식구들이 하루 종일 덮밥을 먹어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그건 잘된 일이었다. 나를 위해서 음식을 한다고 생각하니 수시로 올라오던 생색이 맥을 추지 못했다. '남자들아, 내 도시락 반찬을 위해 만든 것이여, 알아서 드시게나, 싫음 말고.'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은 질리기 쉽상인가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에 자주 먹던 국과 반찬으로 되돌아왔다. 도시락도 예전처럼 반찬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대충 쌌다.

그래도 완전히 처음처럼은 아닌 것은 즐거운 점심시간 만은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하다못해 내가 좋아하는 과일과 채소라도 썰어서 함께 넣는다. 아삭아삭 사과가 주는 새콤달콤한 맛 하나에도 기분이 좋아져서 더없이 행복한 점심시간이 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는 날은 국물이 있어야 제 맛이다.우거지 국이라도 가져오려고 보니 보온 국통 뚜껑이 말썽이었다. 그럴 때는 세계가 인정하는 k푸드 컵라면이 얼마나 요긴한지 모른다.

과 김치만 준비하니 도시락 싸기도 오히려 더 간편했다. 그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국물과 면발로 점심시간은 여전히 행복했다.



여러 작가님들, 식사는 하셨나요? 아직이라고요? 그렇다면 맛있는 식사를 위해 보나뻬띠!

이전 05화 직원 복지-남도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