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는 강좌를 듣는 회원들, 무슨 강좌가 있는지 둘러보는 사람들, 강좌 등록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거린다.
나는 오후 근무자라 수영장에도 내려가야 한다.
수영장에는 시기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월 초에는 처음 온 회원에게 자세히 안내를 해 드려야 한다.
-회원님 수영등록 처음이시죠?
회원 카드로 표 끊는 방법 가르쳐 드릴게요. 바코드를 불빛에 대요. 주먹 하나 정도 띄우고요. 번호가 나왔지요. 탈의실 안에 들어가시면 사물함이 있어요. 찜질방처럼요. 짝수네요. 짝수는 아래쪽 사물함이에요.
탈의하고 샤워하시고 수영복 입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이구 친절도 하셔라
미화 여사님들에게 드리는 당부 말씀은 이렇다.
-탈의실 청소 안내해 드릴게요. 회원들이 나오는 시간과 그 다음 시간대 회원이 들어오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계셔야 하는데요. 탈의실은 아시다시피 머리카락과의 전쟁입니다.
50분에는 수영을 마친 후 샤워를 하고 나온 사람들이 머리카락을 비처럼 쏟아내요.
그리고 20분 되면 다 퇴장해요. 그러니까 그 때 쯤 오셔서 35분까지 머리카락을 다 치워 놓으셔야 합니다. 안 그러면 40분에 들어온 회원들한테 민원 들어와요. 특히 거울 앞에 신경 좀 써 주세요.
아쿠아로빅을 하시는 어르신들의 하소연에 대해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선생님 아쿠아로빅 힘들어요
-힘들지요? 그러면 강사 선생님 하는 대로 다 따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리하지 마시고 선생님이 알아서 쉬엄쉬엄 하셔도 돼요.
태도는 친절하게, 규정은 엄격하게, 질서는 바르게. 이는 내가 지키려고 하는 이른바 3대 원칙이다.
이 원칙은 공공기관 취업과 면접을 준비하며 만든 것인데 항상 기억하며 끝까지 고수하려고 한다.
친절은 어디에나 해당되겠지만 수영장에서는 더욱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수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것인데. 회원의 대다수가 어르신들이라 안전에 만전을 기할 수 밖에 없다.
친절은 자연히 안전사고의 예방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즐겁고 편하게 수영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나의 당연하고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어르신들과 종종 날씨와 건강에 대한 스몰토크도 하며 긴장된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해 주려고 한다.
출근 전에 어떤 일이 있었던지 자리에만 앉으면 입에 인사 자동 발사기를 단 것처럼 인사를 한다.
하이톤에다 적당히 큰 목소리로. 시무룩하게 들어온 사람들도 나를 쳐다보며 웃으며 화답하는 것을 보면
없던 힘도 솟는다. 밝은 표정으로 나누는 인사처럼 서로 윈윈인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시간에 대한 규정이나, 탈의실, 샤워실 에티켓을 잘 지켜 주어서 얼굴 붉힐 일이 없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어서 진상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은근히 근무자들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첫번째 유형은
미주알고주알 회원이다. 그 분들은 뭐든 고발해야 직성이 풀린다.
샤워 안하고 들어갔다, 머리 안 감고 들어갔다, 드라이기로 이상한 데 말린다, 수다를 떨어서 시끄럽다, 남자 회원의 수염이 너무 혐오스럽다, 옷을 턴다, 오줌 눈다, 팩 한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지 않는다, 등등 '풋'하고 웃음이 나오는 고발부터 미간이 찌푸려 지는 고발까지 다양하다.
민원이 들어왔으니 안내문을 써 붙일 수 밖에 없다. 머리만 말리세요, 팩 금지, 큰 목소리 대화 자제해 주세요,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주세요. 그러다 보면 "웬 안내문이 저렇게 많아요? 올 때마다 하나 씩 붙어 있네요." 하시는 분도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은
시간을 도무지 지키지 않는 회원이다. 정해진 시간에 마무리를 하고 퇴장해 주어야 미화 여사님들이 청소와 정리를 하고 다음 시간대 회원들이 들어가는데 세월아 네월아 하고는 도무지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아서 나와 미화 여사님이 애를 먹기도 한다.
세 번째 유형은
입장 시간이 지났는데 샤워라도 하고 갈 수 있게 탈의실에 들여보내 달라는 회원이다.
샤워라도 하고 가고 싶은 마음은 십 분 이해가 간다. 그래서 안된다고 딱 자르기가 죄송해서 규정을 구구절절 되뇌인다. 그러다 보면 제발 규정을 지켜 달라는 내가 훨씬 더 불쌍하게 보일 정도가 되어야 겨우 물러서 간다.
네 번째 유형은
재 등록 기간을 한참 지나고 나서 와서는 재 등록을 해야만 한다고 떼를 쓰는 회원들이다. 이런 분들이 한 달에 6~7명이 발생하는데 대략 난감이다. 그분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 자리를 벌써 신규 회원이 들어와 정원이 마감되었고 대기자 까지 줄지어 서 있는 마당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섯 번째 유형은
입장 시간 한참 전에 와서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사람인데 이런 회원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직원인 나를 허물없이 대하면서 (친한 척 하면서)수영장 회원들 이야기, 집안 이야기, 남편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 폭넓고 다양한 화제 거리를 일방적으로 쏟아 놓는다. 이런 분들은 수영장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서 살그머니 들어온다.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으니까 제 시간에 오라고 사무적으로 대했더니 자기를 기분 나쁘게 대했다고 삐쳐서 딴 소리를 하는 바람에 황당했던 적도 있다.
이 밖에도 초콜릿이나 빵, 떡을 먹으라고 갖다 주면서 온갖 귀찮은 부탁(개인적인 것)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앱 다운 좀 받아 달라, 복사 부탁한다, 메일을 출력해 달라, 심지어 손으로 그려온 양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어르신도 있다.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의 갑질 아닌 빵질, 떡질, 초질을 언제까지 잘 응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은 작은 친절에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회원들이 대부분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아쿠아로빅 넘 재밌어요. 수영장에 올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지 몰라요.물이 깨끗해요. 수영을 하니 허리가 안 아파요. 많이 건강해 졌어요. 살이 빠졌어요. 등등 반가운 얘기를 해 주는 사람들 덕분에 오늘도 즐겁고 감사한 센터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