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 사진을 찍다.

그림자 사진

by 분홍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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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는 웬만하면 남편과 운동을 하려고 한다. 운동이라야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이지만 혼자서 걷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남편은 나보다 더 좋아한다. 산책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린아이마냥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않고 떠벌떠벌한다.



나는 가끔 시간을 내어 친구도 만나고 주일에도 집사님들과 좋은 시간을 갖곤 하지만, 남편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쌓인 이야기를 나와 산책할 때 쉴 새 없이 쏟아놓는 것이다.




공원이 주택가와 뚝 떨어져 있어서 사람이 없다는 둥, 그래도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이사 오기 전 동네보다 훨씬 좋다는 둥,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맛 집이 많이 있으니까 한 주에 한 집씩 돌아가며 먹자는 둥. 아줌마 수다는 저리 가라 한다.



남편은 느릿느릿 걷는다. 왜 그렇게 느리게 걷는지 모르겠다. 자기 말로는 자기는 정상인데 내 걸음이 정상인보다 빠르다고 했다. 처음에는 보조를 맞추었는데 계속 느리게 걸으니까 운동도 안 되고 지겹기도 해서 나 혼자 빨리 걸었다. 저만치 앞서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하다가 그것도 못할 짓이라 그대로 앞서 가서 남편이 오는 동안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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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는 토끼풀 꽃이 한창이었다. 하얀 토끼풀 꽃이 나지막하게 자리 잡고는 때에 맞춘 충실함으로 수수하고 겸손하게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흰색 토끼풀 꽃 만 있는 게 아니었다. 토끼풀 옆에는 꽃모양은 같은데 키가 조금 더 크고 이파리도 길쭉한 보라꽃이 군데군데 피어서 흰색토끼풀꽃과 잘 어울렸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느새 내 걸음을 따라 잡은 남편이 보라색 꽃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토끼풀 사촌이라고 했다. 이종사촌? 고종사촌? 하더니 그 꽃이 너무 예쁘다고 했다. 검색해보더니 레드클로버라고 했다. 같은 토끼풀인데 색깔이 달라서 앞에 레드라고 붙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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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뜬금없이


“그런 것만 찍지 말고 사람도 찍어봐라, 오랜만에 둘이 같이 사진 찍을까? 했다.


“이제는 늙어서 사진 찍으면 숭하다.”


남편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숭하면 지우면 되지.”했다.


“티 쪼가리에다 얼굴도 시커멓구만, 다음에 선글라스라도 쓰고 와서 찍읍시다.”


하고 있는데 늦은 오후라 그런지 내 앞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좋은 수가 있어요. 여보, 여기 서 봐요.“


실물대신 길게 드리워져 있는 남편과 나의 그림자를 찍었다.


남편은 실물보다 훨씬 좋다고 하며 무척 만족해 했다.


나도 마음에 들었다. 신박한 사진 한 컷을 득템한 기분이었다.


사진을 찍으며 남편과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고나 할까? 남편이 점점 더 쓸모 있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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