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왠지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과장해 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함) 고향에서 농사 짓는 부모님과 함께 여섯 식구가 살 때에 우리 가족은 '함께 밥 먹는 입',이라는 식구의 본래의 뜻에 잘 들어맞는 밥상 공동체였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둥그런 좌식 밥상(두레상)에 둘러 앉아서 먹었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아침은 마루, 점심과 저녁은 마당 한 켠 나무 밑 그늘에 펴 놓은 평상에서 먹었다. 식전부터 식구들은 부지런히 일을 했다. 아버지와 오빠는 소가 아침에 먹을 꼴을 베러 갔다. 언니는 일어나자 마자 동네 아이들과 소를 먹이러 산에 갔다. 그동안 엄마는 식구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무쇠 솥에 밥을 안치고 된장을 끓이고 잎이 달린 채로 따온 부드러운 고구마 줄기를 데쳐서 젓갈을 넣고 무쳤다.
시계가 없어도 식구들은 제시간에 모여서 다같이 밥을 먹었다. 단출하고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열심히 일을 한 후에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주로 꽁보리밥과 열무 김치와 된장을 먹었다. 다같이 둘러 앉아 먹는다고 두레상이라고 했는데 우리 집 두레상은 여섯 명이 앉기에는 솔아서(비좁아서)엄마와 언니와 나는 종종 튕겨 나와 셋이 따로 앉아 양푼이 밥을 먹었다. 열무 김치에 된장과 고추장을 넣고 큰 양푼이에 비벼서 꿀돼지 처럼 허겁지겁 퍼 먹었다. (돼지는 많이×허겁지겁○)하루에 한번은 비벼 먹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한 밥상에서 우리가 먹는 것과 똑같은 반찬을 먹었다. 아버지를 위해 더 낫게 차려줄 만한 귀한 것이 없어서 밥상의 평등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리라.
가난한 농가 답게 푸성귀를 많이 먹었다. 날로 먹거나, 데쳐서 무치거나 혹은 국을 끓여 먹었다. 호박 잎을 예를 든다면 반은 국을 끓이고 반은 쪄서 호박 쌈을 싸서 먹었다. 그런 날은 엄마가 "국도 파래, 장도 파래다" 라고 했다. 며칠 지나서 시금치 나물과 시금치 국이 나란히 올라오면 언니와 나는 "엄마, 오늘은 국도 파래 장도 파래네."하면. 엄마는 "애들 보는데 찬물도 못 마신다." 하며 웃었다.
매일 비슷비슷한 푸성귀를 질리지도 않고 먹었다. 질리기는 커녕 매끼마다 마지막 한 젓가락까지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아침 일찍 부터 일을 해서 시장한 데다가 (먹을 만한 것이) 없어서 못 먹을 때라, 푸성귀든 뭐든 닥치는 대로 배부르게 먹으면 그만이었다.
점심은 더 간소하게 먹었다. 냉장고가 없던 때여서 찬물을 마시려면 찬물 나오는 곳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했다. 두 군데 있었는데 멀리 산 밑에 있는 샘물이 더 차가웠다. 점심 때 찬물 당번은 언니와 내가 도맡아 했는데, 언니는 산 아래에 있는 샘물에서 길어 왔고 나는 가까운데 있는 우물에서 떠 왔다. 들 일을 하고 돌아온 아버지와 엄마는 찬 밥을 찬물을 말아서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서 먹었다. 우리도 그렇게 먹었다. 하나도 맛없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고등어가 흔했다. 흔한 만큼 값도 쌌다. 오죽하면 단백질을 쉽게 섭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값싼 고등어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교과서에 버젓이 나왔을까.가을이 되면 가끔 아버지가 장에 가셔서 고등어를 사오셨다. 그러면 냄비에 시레기를 깔고 고등어 조림을 했다. 생선 반찬은 날마다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쉬워서 조림을 담았던 그릇을 기울여 남는 국물을 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으면 누군지 기억 나지 않지만 가족 중의 한 사람이 "그릇까지 뽀사묵어라." 했다.
호박죽은 늦가을에 먹는 별미였다. 호박죽을 끓이려면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겨야 했다. 작고 여린 손으로 몽당 숟가락(1/3쯤 닳은 숟가락)을 야무지게 잡고 호박 껍질을 긁어냈다. 아이가 하기에는 버거운 일이지만 "호박 껍디 긁어서 벗겨 나라" 하면 호박죽을 먹을 생각에 힘든 줄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했다.
음식을 놓고 투정이나 까탈 같은 것은 초기 세팅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배불리 먹기만 해도 삶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던 시절이었다. 한 번은 내가 두통이 나서 "엄마, 머리가 아파 죽겠다." 하니까 엄마는 "골이 비어서 그렇다. 많이 먹으면 낫는다."고 했다. 나는 "많이 먹으면 비어 있는 골이 채워지나?" 했다.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인데, 엄마가 "하모." 했다. 나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었다.(실화임)
누가 나더러 시골에서 먹었던 대표 음식 5가지만 꼽아 보라고 하면 망설임 없이 열무 김치, 고구마 순 무침(어린 잎이 붙은 채로 데쳐서 젓갈에 무친) 된장에 찍어 먹는 풋고추, 시래기 고등어 조림, 호박죽을 5종 세트라고 말하고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안될까요?" 하고 물어본 뒤 그러라고 하면 "쌈도 끼워주세요." 할 것이다.
대표 5종 세트와 함께 먹은 각종 푸성귀들은 우리 식구의 건강을 지켜주고 자잘한 병을 치료했으며 우리의 영혼까지 풍성하게 해 주었다. 뭐든 가리지 않고 먹은 덕분에 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 조회에서 옆 반의 친구들이 픽픽 쓰러질 때도 똑바로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까지 먹으며 행복했던 다소 거칠은 듯 보이는 음식은 50년이 지난 지금 시대에 따져보아도 어떤 건강식이나 웰빙 식에 뒤지지 않는다. 단짠단짠한 음식과는 차원이 다르다. 저칼로리 저지방에 필수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다. 게다가 섬유소가 풍부하게 들어있어 변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잘 먹고 잘 싸는 건강의 기본 조건에 얼마나 충실한 음식인지 모른다.
구하기 쉽고 값도 비싸지 않다. 조리법이 간단한 건 덤이다. 엄마는 침샘을 자극하는 달짝하고 덜큰한 양념을 쓴 적이 없었다. 끓는 물에 데친 야채에 적당한 장류(된장,고추장,젓갈장,조선간장 중 택1)를 넣고 주물럭주물럭 한 뒤 간이 맞으면 되었다. 뭐하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속으로 꽉 찬 이런 음식에 붙이려고 소울푸드라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게다가 살은 찌지 않으면서 암과 성인병을 예방해 주니 소울푸드를 넘어 슈퍼푸드라고 해도 어거지는 아닐 것이다. 고향에서 일상으로 먹던 반찬 5종 세트를 10대 슈퍼 푸드에 빗대어 5대 슈퍼 푸드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이다.
어렸을 때 먹은 음식은 쉽게 잊어버리기가 어렵다. 그 때 먹은 음식의 맛을 온몸이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엄만가 뜻밖에 우리에게 건강한 음식,웰빙 음식, 슈퍼푸드를 때마다 시마다 해 주어서 그 때 먹은 기억으로 지금도 습관을 쫓아 고향에서 먹었던 소울푸드를 해 먹으며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 또한 가난에서 얻어진 소중한 유산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