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걷기를 하려고 산에 올라가니 매미 소리와 새소리가 뒤섞여 요란했다.
오잇오잇 매미소리, 끼리리릭 태엽을 감는 것 같은 딱새,개똥지빠귀 소리, 작은 벌레들의 소리, 저마다 질러 대는 소리가 활력이 넘치면서도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초록의 생명이 발산하는 기운에 젖어 어떤 비타민를 먹은 것보다 더한 활력이 솟았다.
이내 살아 있는 기쁨이 사방에 출렁이는 산 길을 걸을 수 있음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일본판)를 보았다.
여자 주인공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에서 직접 채취한 소박하고 건강한 식 재료로 요리를 하며 사계절을 사는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풍경이 어찌나 싱그럽고 청량한지 화면으로 보는 데도 눈이 시원한 것은 물론, 머리 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영화를 보며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의 정경이 영화의 장면과 오버랩되었다.
강이 흐르고 강변에는 숲이 길게 이어져 있고 숲을 지나면 과수원이 있었다.
사과 과수원도 있고 복숭아 과수원도 있었다.
고구마 밭과 땅콩 밭, 벼 논을 바라보며 산을 등지고 초가집들이 듬성듬성 있었으니 정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싶다.
산과 들, 숲과 강 중에 뭐하나 빠진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춘 곳이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조용하고 아늑하고 초록초록한 생명력이 넘쳤으나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준 것 같이 값 없이 풍성하게 받고 있는 환경이 좋은 줄도 모르고,누릴 줄도 몰랐다.
집이 가난할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나는 종종 내가 소죽을 끓이는 것을 깜박하거나 소에게 제 때에 여물을 앗아주지(건네주지) 않아서 소가 굶어 죽는 꿈을 꾸곤 한다. 소가 굶어 죽다니, 꿈에서 깨고 나서도 굶어 죽은 소가 어찌나 불쌍한지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다.
시골에서 소를 키우던 때에 내가 때마다 소를 먹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무의식에 남아 있어 이런 꿈을 꾸는 게 아닌가 하며 어린 마음이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을까 하고 새삼 돌이켜 보게 된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아이들도 일을 했다. 조금씩 거드는 수준을 넘어 한 사람 몫의 일을 단단히 했다. 일을 하느라고 낮에는 공부 할 틈도 없었다. (실화임)
아침부터 일을 했다.
학교에 가기 전까지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일어나자마자 도랑에 세수를 하러 가면서 걸레를 갖고 갔다. 먼저 걸레를 방망이로 두들겨서 말끔히 빨아 놓고 그 다음에 세수를 했다.
학교에 가면서도 편히 갈 수가 없었다. 학교를 가는 길에 큰 집이 있었는데 큰 집 앞을 지나치려고 하면 큰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염소 고삐를 쥐어 주며 학교 가는 길에 방천에 매 놓고 가라고 했다.
염소는 건강한 풀을 먹고 자라서 그런지 기운이 넘치고 힘이 셌다.
나는 그만 울상이 되어 "이놈의 염생이야, 니 멋대로 가면 우짜노 제발 그리 가지 말고 이리 오니라 ." 했지만 염소한테 질질 끌려가다시피 가야 했다.
어찌저찌 하여 겨우 방천에 염소를 매어 놓고 정신을 차려보면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싫어요, 내가 왜 큰집 일까지 해야 돼요?
언니들 시키세요. 나보다 힘센 오빠도 있잖아요." 라고 하지 않았다.
엄마가 큰어머니에게 꼼짝 못하니 나도 아무 말도 못했다.
우리 언니는 친구 집에 가려면 작은 집을 거쳐가야 하는데 작은 집을 지나가기만 하면 작은 할머니가 불러서 쑥을 캐오라고 했다.
-언냐, 그럼 쑥이 없는 철에는 편히 갔겠네?
-그럴 리가 있나? 불러서 마루 닦으라고 하고, 마당도 씰어라고 했제?
-망할 할망구들 같으니라구!
우리는 어느 누구도 공격할 줄을 몰랐다.
부당한 대접을 받아도 그것이 부당한 줄도 몰랐다.
씨족 공동체가 엄연히 살아있는 작은 마을에서 튀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대를 이어 흐르고 있는 가난한 유전자가 가르쳐 준 대로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았다.
체념이 우리의 대표 방어 기제였다.
김수영의 시, '풀'에서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발목까지, 발밑까지도 누웠다.' 에서 처럼 우리는 바람이 불면 저항하지 않고 그저 납작하게 누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은 것은 아니어서, 풀뿌리 마냥 질기게 살아남았다.
이후에 몰려왔던 광풍 같은 고난 속에서도 풀뿌리의 힘으로 수고하고 견뎌내며 살아 남았다.
가난은 누울지언정 결코 꺾이지 않는 풀 같아서 비가 온 뒤에 더 푸르고 더 굳세게 살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