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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초원 위에 K초가집

by 분홍소금


초가집.jpg 일러스트 by 솜


유년기의 고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난이다. 어쩔 수 없다. 의식주가 다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가난을 말할 때 초가 집 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나는 60년대에 태어났고 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1972년에 새마을운동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고 새마을운동으로 척결 되어야 할 1호가 초가 지붕인 듯 지붕 개량이 시작되었다. 그 도도한 물결이 고향 시골 마을까지 밀려와 초가 지붕을 함석이나 슬레이트로 시원하게 싸악 갈아 치울 때까지 나는 아니 우리는 초가집에서 살았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초가 지붕 위에 보름달같이 둥그런 박이 복 스럽게 열려 있는 사진 속 풍경은 넉넉하고 여유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작 지붕 아래 에서 사는 사람들은 지붕에 달려있는 박덩이들 만큼이나 주렁주렁 달린 자식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가난에 찌든 농가일 따름이었다. 우리 집도 그 모양이었다.



우리가 살던 초가집이 눈에 선하다. 야트막한 산을 등지고 위 채와 아래 채, 거기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당이 있었다.

마당에는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빨랫줄이 쳐져 있었고 마루로 올라가는 축담이 마루 밑으로 주욱 이어져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 여섯 식구가 살았다. 엄마 아버지와 2남 2녀가 합쳐서 여섯 명이었다. 앞집의 6녀 1남. 시맘, 시동생 아재와 아지매 합쳐서 11명, 뒷집의 4녀 3남과 아재 아지매 합쳐서 9명에 비하면 우리 집의 식구 수는 단촐한 편이었다. 거둬 먹일 자식의 수가 많지 않음에도 가정 경제의 부침은 남들보다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농사도 짓고 소와 돼지와 닭도 치고 심지어 토끼도 키웠는데 가난을 면치 못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수두룩하고 건사해야 할 입들이 천지인 앞집과 뒷집보다 더 가난했다.

눈만 뜨면 아버지와 엄마는 눈 앞의 생계를 위해 농사 일에 매달려 있었고 아이들인 우리는 각자의 나이에 맞게 혹은 나이와 상관없이 학교 다니고 농사일을 거들고 가축을 돌보고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폈다.



해가 지면 등잔불(호롱불)을 켰다. 세상 물정 모르는 로맨티스트가 방안에 밝힌 호롱불을 보았다면 작고 아담한 초가집에서는 따뜻한 온기를 품은 부드럽고 친근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고 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도 한번 쯤은 호롱불 아래에서 도란도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눈 후, 밖에서 얘기를 엿듣고 있는 아기 별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눈 후 각자 달콤한 꿈 속에 빠져 들었다. 를 내 얘기로 쓰고 싶지만 아쉽게도 현실에서 동화스러운 구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호롱불에서는 한 줄기 시커먼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고, 우리는 이불 하나를 서로 자기 앞으로 땡기다가 엄마가 뿌려주는 욕설 한 바가지를 덮어쓰고 꾸역꾸역 잠들었다.



욕설을 들으면서 잠들었어도 힘들었다거나 고생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호랑이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꿀잠을 잤고 이튿날에도 투정 하나 부리지 않고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잘 살았다. 그렇게 끝내도 될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2퍼센트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나의 지나온 시간을 새로 고침 함으로써 알게 되는 것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나보다 오래 살았던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 부는 수 밖에 없다.

먼저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냐, 초가집이나 초가집에서 살 때 좋았던 것 함 말해봐봐

-없따.

-건성으로 없다 하지 말고 함 생각해봐

-으음~ 없따.

-내가 글 제목을 k초가집이라고 붙였거든, 그러니까 근사한 것 하나는 있어야 된다. 좀 진지하게 생각해봐

-K초가집은 무슨, 헬 초가집이지.

-언니는 안되겠다 오빠한테 물어봐야지



-오빠 우리가 살던 초가집의 장점 한마디 해 주셔요. 두 마디도 괜찮아요.

-초가집에 대해 아니면 초가집에 사는 것에 대해서?

-아무거나요

-초가 지붕은 짚으로 만들잖아, 짚 이야기부터 해 볼까(오빠는 학구파)짚은 초가 지붕 이는 것 말고도 용도가 많아. 일단 짚은 소가 먹어야 돼, 소마구(소 마구간)에 깔아 조야되고, 그리고 짚으로 가마니도 만들고, 새끼도 꼬아, 거름 소쿠리도 짚으로 만들었지, 빗자루도 만들고, 할아버지는 우산 대신 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입고 다니셨다...

-오빠, 끝이 없다. 그러지 말고 초가집 이야기로 범위를 좁혀봐요




-그러지 뭐, 지붕을 일려면 먼저 짚으로 이엉을 엮어야 돼. 가을 추수가 끝나면 이엉을 엮었어. 이엉을 다 엮으면 동에 사람들 서 너 명이 품앗이로 돌아가면서 이엉을 이었지. 1년에 한 번 씩 그 일을 했어.

-내 기억에도 1년에 한 번 씩 한 것 같은데 찾아보니까 2년에 한 번 씩 하기도 하던데요.

-그건 흉년이 들었을 때라. 아무리 흉년이 들어도 소는 먹여야 되니까 그럴 때는 2년에 한 번 하기도 했지



-새 이엉으로 갈려면 원래 있던 지붕을 뜯어 내야 되잖아요.

-하모, 어른들이 낫이나 괭이를 들고 올라가서 걷어냈지. 그 때는 장화가 어디 있었나, 그냥 고무신 신고 올라가서 맨손으로 걷어냈지. 썩은 짚을 걷으면 굼벵이, 그리마, 노래기, 지네, 온갖 벌거지들이 우글우글했지

-아이구야 숭축해라(흉칙해라)




-머, 지붕은 따시고 숨기도 좋고 짚에는 영양가도 많으니까 벌거지들이 살기가 딱 좋지. 벌거지들이 지붕에 사니까 방에도 벌레가 수시로 기어나오고 그랬다.

-나도 많이 봤어요



-벌레가 "우리 칭구 아이가" 하고 기어 나오면 "아이다" 하고 탁 때리 잡고, "나도 좀 살자." 하고 기어 나오면 "저리 가" 하고 빗자루로 씰어 내삐고 그랬지, 벌거지들 하고 그냥 같이 살았지 머.

참새도 집을 짓고 그랬어.

-우리 애들이 보면 소리를 꽥꽥 지르고 난리가 날건데, 근데 우린 그런 것 별로 안 무서워 했던 것 같아요. 오빠, 그 시절에 혹시 우리 간이 부었던 게 아닐까요?

-흐흐, 같이 안 살면 우찌 할끼고 방법이 없잖아




-일꾼들이 지붕에서 집 이을 때 오빠는 뭐했어요?

-나도 그 때는 어려서 지붕에는 못 올라가고, 밑에서 주로 심부름 했지. 지붕이 날아가지 말라고 새끼.줄을 묶었는데 밑에서 새끼.줄을 앗아주었지.(건네주었지). 어른들 3~4명이 하루 종일 했니라

-힘들었겠다. 그렇게 지붕을 잇기가 끝나면 월동 준비 큰 거 하나 끝난 거죠?

-하모



-새 지붕을 인 날은 새집 같았겠어요?

-그럼, 초가 지붕이 함석이나 슬레이트 지붕 보다 보온이나 단열이 잘됐지.

-나는 피부로 못 느낀 것 같아요. 너무 어려서 그런가요, 근데 새집같이 좋은 느낌이 있었던 건 어렴풋이 기억이 나요.



-초가집은 100퍼센트 친환경이다. 걷어낸 짚까지도 거름으로 썼으니까 버리는 게 한 개도 없었지. 거기에다 황토벽이라 몸에는 좋다고 봐야지.



아무리 친환경적이라도 이미 자연인으로 살 수는 없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장점이 좀 궁색해 보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K초가집인가 헬초가집인가 그것이 궁금할 뿐. 그래도 다시 살아라고 하면 절래절래, 네버, 앱솔루트리 노, 그래도 왠지 아련하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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