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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Jan 15. 2019

성애서린 유리 너머(2) : 유서와 죽음

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영하 10도. 밖은 추운 겨울이다. 두꺼운 옷을 껴 입고도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나는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그를 바라본다. 유리는 오로지 따스한 햇볕만을 허용했고, 난방은 충분히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고, 가습기는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지금 내 모든 피부를 감싸고 있는 것들 중에 나를 괴롭힐만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내 팔은 이제 너무나 앙상해져서, 무엇도 제대로 쥘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이제는 들숨과 날숨을 먹고 뱉는 것조차 내 힘으로 할 수가 없다.

너는 매일 같이 나를 찾아왔고, 나는 네가 과연 그러고 싶은 것인지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너는 늘 무언가를 참으며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참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꾸역꾸역 터져 나오는 것을 참으면서 오는 너는 마치 고통받으러 오는 것 같았고 - 그렇다면 너는 고통을 좋아하는 것이냐 -라고 나는 네게 말했다. 나는 어떻게든 익살을 덧붙여서 네게 말을 하지만, 너는 여전히 정직하고 진지하게 대답한다. 그래, 내가 걱정이 되고, 그래서 나를 보고 싶어서 오는 것이겠지. 너는 사물들의 핵심을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네 안에 있는 마음의 핵심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내 안의 핵심을 제대로 말하지는 못해도, 바로 그래서 네 안의 핵심이 무엇인 줄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네가 참고 있는 감정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다 드러나는 감정을 내 눈앞에서 참는다는 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이냐. 감추기 위한 마음은 철저하게 숨기기 위한 것인데, 어떻게든 그렁그렁한 것들을 눈으로부터 흐르지 않게 하려 그 한 번을 깜박하지 않는 것은, 사실은 나를 위해 마음을 숨긴다는 거짓 위안으로, 사실은 나를 위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불과한 것이 아니냐 - 나는 이 말까지도 네게 온 힘을 다해서, 너그럽게 이야기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말을 할 뿐이다. 우리는 죽음을 초월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이 말이 아니라면 어떤 말을 네게 건네야 할까. 내가 유서라는 것을 써야 한다면, 할 수 있는 말만을 모두 하고, 그리고 그를 통해서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고서 그리 세상을 뜰 것이다. 내 삶을 지탱해준 것은 받아들이는 것과 꿈꾸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나서부터 배운 것은 그것 둘 뿐이었다.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바꿀 수 없다. 그것은 현실을 살아가라는 하나의 가르침이다. 그것은 나를 덤덤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리고, 오로지 바꿀 수 없는 것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을 실현하는 것은 나를 숨 쉬게 해 주었다. 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사는 방법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 끝에서 가진 것 없이 치열하게 산 뒤에도 고작 내가 얻은 결과라는 것이 죽음뿐이라고 해도, 그래서 나는 그것으로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쯤 되면 너는 나와 논쟁을 하고 싶어질 것이다. 너는 나를 몰아세운다. 너는 내 마음을 모른다. 너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제대로 눈치챈 적이 없다. 그러니 죽음 앞에 초연하고자 하는 내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이 불가결한 논리 앞에서, 네가 찾고자 하는 것은, 내 죽음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 앞에서 무언가 하나를 더 쥐고자 하는 내 마음을 궁지에 몰아넣어, 너는 마침내 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조금 더 똑똑했다면, 내 안에 무언가가 이미 있는 줄 알고 있다면, 나를 궁지에 몰아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궁지에 몰리기에는 이미 넘어설 수 없는 것 앞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싫지 않았다. 너는 울음을 참을 수 있게 된 뒤에도 네 감정에 늘 정직했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네 이름을 가지고 너스레를 떨었던 내 앞에서 펑펑 울어버린 너를 보면서, 나는 네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안해서 멋쩍게 사과하는 나를 너는 받아 주었고,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왠지 너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네 기분을 알고 있고, 나는 그런 것에 괘념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친해져서 이곳저곳을 놀러 다녔다. 서로 다 이성에 눈을 떴을 때에도, 너는 바보 같은 사랑을 할 때에도, 진실된 사랑을 할 때에도, 늘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무엇이었고, 너는 늘 할 수 없는 것에도 바보처럼 온 힘을 다해서 그렇게 살았다. 나는 어떤 사랑을 네가 시작하든 결국 그로 인해 아프게 될 것을 알았고, 사실은 그것이 늘 우려스러웠다. 아마도 그때쯤 나는 사랑이라는 것들에 질려 있었고, 우정이라는 것은 언제나 맞춰줄 수 있는 것이겠기에, 적어도 나의 존재에 한한 네가 아프게 될 일은 없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너를 보니 내가 틀렸다는 것은 알겠다.

나는 그를 보기 싫어서 저 찬장에 올려져 있는 TV를 보았다. 내년 봄에 개봉한다는 영화를 벌써부터 광고하고 있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저 영화가 보고 싶었다. 너라도 저 영화를 봐 달라고. 나는 또 짓궂게 말하고, 내 기분을 말하는 대신에 네 기분을 확인해 버린다. 나는 너로부터 도망치는 방법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이렇게 네 앞에서 우선권을 차지하고, 다시 한 번 내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네게 환기시킨 채로, 나는 정적 안으로 도피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너는 네가 입대하던 날에, 다음 주에 개봉하는 영화가 보고 싶다고 말했었다. 나는 휴가 나오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다 보면 될 것이라고 너를 위로했지. 하지만 너는, 그 영화가 정도 이상으로 성공하지 않는 한, 다시는 스크린에 걸리지 않을 테고, 내게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가 입대하고 난 뒤에, 나는 혼자 영화관에 가서 그걸 보았다. 삼류 SF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는 생각했다. 이런 영화가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올 리는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 사이에서 그저 그런 평가를 받고, 아무도 다시 찾지 않을 것이라고. 그래서 아마 네가 휴가 나왔을 때 생각할 것은 지금 보지 못할, 앞으로도 평생 찾지 않을 그런 영화가 아니라, 애타게 먹고 싶었던 술 한잔 정도이리라고. 내가 사라진 뒤에 개봉할 영화와, 찾아올 봄과, 그 봄의 벚과, 벚이 지고 난 뒤에 찾아올 푸른 계절과, 모든 순환의 반복, 그리고 내가 볼 수 없을 네 미래와 같은 것들. 내게 조금의 희망이랄 것은, 삼류 영화를 네가 다시 돌아와서도 찾지 않았듯, 나 역시도 그러니 보지 않을 미래를 아쉬워하며 저 너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나는 네게 썼다.

그리고 난 뒤에도 권태로운 며칠이 내게는 더 남아 있었다. 편지 같은 유서를 쓰고, 내게 세계에 남을 아쉬움이랄 것은 없었다. 나는 가진 것도 없었고, 열심히 벌어 놓은 것들은 이 병실 안에 아쉬울 것 없을 정도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런 뒤에도, 모든 할 말을 다 내뱉고 난 뒤에도, 그리고 그 유서와 죽음 사이의 정적은 너무나도 길고 지루하게 놓여 있었고, 나는 네가 보고 싶었다던 그 영화가 마침내 잊히고 난 뒤에도, 휴가를 나와 헐레벌떡 찾았던 것들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잊어가는 것 뒤에도 다시 여전히 추구하는 것들이 없을 리 없었고, 나는 결국 편지와 죽음 사이의 짧은 시간에 그것들을 너무나 확실한 방식으로 여러 번 되돌려 생각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너는 술을 찾았고, 나를 찾았고, 또 그 둘과 함께하는 시간을 찾았다. 그래, 나는 죽음을 넘어설 수 없지만, 그 뒤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여기서 이렇게 마음 쓰고 있다.

내가 다시 찾게 될 것들을 나는 사실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게 한 번 더 이 세상에 휴가 나올 날이 주어진다면, 내가 꼭 하고 싶은 것들. 그것은 내년 봄에 개봉할 그런 영화도 아니거니와, 찾아올 봄과, 그 봄의 벚과, 벚이 지고 난 뒤에 찾아올 푸른 계절과, 모든 순환과 반복도 아니었다. 그러나 꼭 다시 보고 싶을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말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고, 내가 어떤 말을 하든, 너는 슬프게 될 것이었다. 내가 결코 네 앞에서 하고 싶지 않은 말들. 사실은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말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갈등하지만, 이런 갈등조차 사라지고 흩어져 버릴 것이다. 늦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제의 나는 이런 기회의 말살을 소망하고 기도했다. 그것이 이루어졌고, 슬픔은 그 대가일 뿐이었다.

너는 저 밖에서 외투를 입고 더 멀리 나아가라. 창에는 무언가 서릴테고, 너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 것인지, 잊어서 보이지 않은 것인지 모르게 될 그 순간에 창에서 볼을 떼고 뒤돌아 걸어가게 될 것이다. 결국 살아야 하기에 언젠가는 그리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때 나는 다 안다는듯이 웃으면서 말할 것이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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