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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Jan 16. 2019

화장 지우지 않은 다음 날

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눈을 떠보니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에 들어 있었다. 나는 우리가 만나기로 한 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에 깼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부재중 전화는 이미 여러 통 와 있었다. 문자에 너는 책을 읽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다 읽을 때까지는 있을 것이라고. 용케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 가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늘 늦었고, 너는 결국에 내가 나타날 것을 안다. 그래서 기다린다.

너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늦는 것은 늘 나였지만, 늘 나를 내치기는커녕 방금 왔다고 말했다. 아마도 그게 네가 하는 몇 안 되는 농담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너는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드는 법을 귀신같이 알고 있다. 처음에는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두 시간을 늦어도, 세 시간을 늦어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기다린 시간을 거끄로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나를 죄책감에 들게 했다. 네가 차라리 화를 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결국 습관적 형식이 되었다.

일어나서 물을 마신다. 속이 미친 듯이 쓰렸다. 어제 네 모든 연락을 무시하고 클럽에서 과음한 대가였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클럽이라는 알리바이였다. 누군가는 클럽에 가기 위해서 알리바이를 꾸미지만, 나는 오늘 클럽이라는 알리바이를 꾸몄다. 네가 그것을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그곳에서 지나치게 과음했다는 것이며, 그 사실을 바탕으로 나는 흔들림 없이 내 거짓말에 진실을 섞어 말할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대강 씻고, 내 얼굴에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너를 만나러 갈 준비를 한다. 너는 원래 화장이라는 거, 하는 말든 상관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너는 나를 만나며 이런저런 옷을 잘도 사 입고, 점점 멋있어졌다. 나는 그것도 짜증 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성으로 하고 다니다, 그조차도 습관이 됐다. 모든 것들을 루틴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그리고 나도 점점 그 굴레의 일부가 되었다. 껍데기와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다가, 나중에는 내가 곁가지가 되어 가는 그런 기분.

집으로 나가려는데, 엄마는 불단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그것도 짜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전통적인 일본 가정집에 있을법한 그 불단은, 엄마가 자신의 모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엄마는 매일매일 아빠의 사진 앞에 향을 피워 올렸다. 사별하고 난 뒤에도 청소를 깨끗이 하고, 꽃이 시들 새라 자주자주 갈아준다. 우리 집에는 이제 향냄새 밖에는 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정성스러움이 언제부터인가 견딜 수 없었다. 아마도 모든 것을 반복되는 일과로 만들어 버리는 그 사람을 만나고 나서부터 였을 것이다. 엄마는 아빠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매일 하는 저 반복적 소일거리가 없으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모르는 것이다. 아빠는 그냥 죽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저 사진에 지나지 않는, 그 사진을 다른 무엇으로 바꾸어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엄마의 저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증거다. 엄마는 누굴 만나느냐면서 내 꼴을 나무랐다. 알게 뭐야, 이제 오늘로 다 끝인데- 나는 이렇게 소리 지르며 현관문을 닫았다.




카페 앞에 섰을 때, 네가 보였다. 거기에 너는 차분하게 앉아 있다. 손에는 책이 들려 있고, 너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나는 들어가려다 잠시 멈칫했다. 네 평온하고 권태로운 표정을 보니, 반대로 나는 아침부터 짜증으로 가득해서 미칠 것 같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르려 표정부터 추슬러 보지만, 오히려 진정되기는커녕, 무언가 더 불쑥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렇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네가 싫었다. 나를 만나면서 손은 더 꽉 쥐여준다고 해도, 눈은 늘 저 너머를 향해 있는 것이 싫었고, 나를 바라볼 때에도 마음이 대신해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리고 점점 그 간격이 나를 만나며 늘어나고 있는 것도 지겨웠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그냥 나는 네 앞에 앉았다. 


나는 기계적으로 따박따박 답장이 오는, 결코 늦지 않는 네가, 술이 취해서 내게 전화하는 것도 싫었다. 너는 종종 네 사랑의 흥을 위해서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다. 나는 그것이 술 취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자식 얼굴에는 수염을 부비고, 아내에게는 질색으로 느껴지는 취기 어린 입맞춤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너는 사랑하기 위해서 술을 마셨고, 흥이 오른 마음을 가지고서 그것을 일종의 사랑이라는 마음으로 도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너는 멍한 눈동자로 저 먼 곳을 향하는 간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과음하는 날도 더 길어졌다. 그리고 너는 그 술 취한 전화 한 통이 마치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 양, 언젠가부터는 주정에 대해서 사과는커녕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맑게 갠 한낮에 너는 차분하고 조용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더 사랑해달라는 말은 죽어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손을 잡은 그 따뜻한 손을 더 강하게 쥐는 것이고, 나를 더 오래 응시하는 것이며, 내가 보낸 메시지에 따박따박 답장하는 것이었고, 그 모든 행위를 모조리 해버린 뒤에도, 이제 더 무얼 할 수 있겠느냐 말하며 내게 시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네가 바보라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비겁해서 그러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나는 이 지루한 삶이 너무 지겹고, 권태롭고, 오늘 나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끝내버릴 수 있을 만큼, 네가 싫다. 평생 함께 할 수도 없는 주제에 엄마를 한국에 데려와 놓고 떠난 아빠도 싫고, 그런 아빠의 사진을 꽂아 놓고 향을 피우는 엄마도 싫고, 모든 굴레에 한가운데에 칼을 하나 푹 찔러 놓고 칼자루를 비틀어 버리고 싶다.


그리고 내 짜증을 틀어막는 네 눈빛은, 천천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는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것을 알아서 그것을 종종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강력한 것은 침을 뱉어도 화내지 않는 표정이었다. 우는 아이가 울음을 참으려다 흐극흐극 놀래는 것처럼, 나는 그 응시 앞에서 내 짜증을 흐극거리며 참고 있다. 


나는 네가 오늘 나를 보자고 먼저 말했던 이유를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내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그 모든 행위를 다 한 네가, 나보다 한발 먼저 앞서서, 마치 그런 스스로를 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그래서 이러한 방식들로 나를 더 오래 만나는 것이 나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깨닫기라도 한 듯, 너는 오늘 내 앞에서 감히 먼저 우리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 모든 것은 자존심의 문제였다. 네가 몸으로 내게 시위하는 것은 마음의 문제지만, 그것조차도 다 안다는 듯이 내게 이제 또 나를 위한 최선이라는 이유로 스스로 털고 일어나서, 정처 없는 곳으로 네 그 흐리멍덩한 눈이 향하는 곳으로 비틀비틀 걸어가려고 하고 있다.




나는 문득 우리가 함께 갔던 미술관에 걸렸던 커다란 그림이 생각났다. 이름 모를 화가의 그 거대한 그림은 단순한 바다가 그려진 풍경화였다. 하늘은 파랗게 펼쳐져 있었고, 그를 배경으로 빛나는 태양과 여름을 증명하는 적란은 수평선 아래에서부터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해변과 철썩이는 파도들. 모던함이나 특별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 심심한 그림 앞에서 너는 오래 서 있었다. 나는 너의 그 무던한 취향을 싫어한 적이 없지만, 네가 좋아하던 그 무던한 그림들을 좋아한 적도 없었다. 무던한 것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좋아하는 너를 좋아했을 뿐이었다.


그 시퍼런 그림 앞에서 너는 내게 말했다. 이 거대한 그림 안에서 마지막 붓 터치는 어디에 했던 걸까? - 나는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은 화가의 싸인 일 것이라고 말했다. 너는 웃으면서 그 말이 맞다고 말하며 네 물음이 제기하는 철학적인 함의를 구태여 고쳐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 배려를 거절하고, '바보야 그건 펜으로 했겠지.'라고 말했다. 너는 그 말도 맞다면서 또 바보처럼 웃었다. 그래, 그런 날들이 있었다. 싸움을 싫어하는 너, 모든 것을 다 내게 맞추는 너. 그 모습에 방심하는 사이, 나는 그 모든 루틴이 반복되듯, 네 마음도 그 마음처럼 망망대해를 가는 저 그림 안의 돛단배처럼 순항을 거듭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제 그때 대답되지 않았던 물음에 대답을 하려 한다. 관계라는 하나의 그림 어디에 마지막으로 손을 대어야 하는 걸까. 나는 이제 모든 것들을 그저 지루하게 완벽하고 아름다웠던, 그래서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는 그런 푸른빛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다. 내가 조금만 더 비참해지면 된다. 네 모든 작별의 메시지를 그저 받아들이면 되었다. 그렇다면 순전했던 연애의 항로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마치 로맨스 영화를 묘사하듯이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영화와 그림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답다. 아름답게 완전한 그림은 마지막 붓 터치를 어디에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것은 그저 하나의 그림일 뿐이다. 나는 우리 관계의 끝을 실감한 이후로 우리의 관계를 하나의 그림으로 두어야 할지를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바람이 아니라 너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모든 배경은 완성되었고, 어쩌면 여기에 덧붙일 모든 그럴듯한 말들은 무의미한 붓 터치처럼 그저 붓을 떼기 위한 장치가 될 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까지도 나의 위력을 네게 과시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준비된 지금이다. 나는 네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듣는 대신에, 어제 네가 내게 연락하는 새 나는 클럽에 있었고, 클럽에서 다른 남자와 잤다고 말한다. 완벽한 그림에 마지막 붓 터치는 검은 먹색으로 그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이 모든 마무리에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한 획이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극적인 것은 못 되었다. 너는 침을 뱉어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덤덤한 네 표정에 나는 속이 메스꺼워 밖으로 뛰쳐나간다. 추하게 주말 한낮부터 전봇대 앞에 속을 게워 놓았다. 나는 도로 들어가지 않고 그 길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게 상처가 될 것이라고 조금은 기대했던 것이 바보 같아졌다. 오히려 추했고 더러웠다. 아니, 그것은 사실 추하지도 더럽지도 않았고, 그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화룡점정은 어려운 것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종종 사족이다. 어두운 그림의 마지막에 더 짙은 색깔을 칠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차라리 너는 비극을 만들어 스스로를 달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선택을 의심해본다. 그러나 대안이라는 것은 별로 특별히 더 만족스러울 것 같지 않았다. 이 정도면 좋다. 그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받아들일만한  잔잔한 끝은 언젠가 잊힐 무렵에 다시 욕망의 대상이 된다. 관계 회복을 위해서 무의미한 헤어짐과 재결합의 반복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그림에 쓰레기를 끼얹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끝은 그저 덮쳐 오는 것이다. 미완으로 놔두든, 완성으로 놔두든, 스스로 망쳐 버리든. 그려내는 과정이 즐거웠을 뿐, 어떻게든 놓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것에 갸륵하고 긍휼 한 끝은 없다. 




집 앞에 멈춰 선다. 엄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아빠를 따라 한국에 온 엄마. 당신은 아빠가 사라지기 전까지 뒷바라지만 하며 살았다. 나는 싫다. 아빠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매일처럼 행해지는 그 습관적 그리움, 아니 부지런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싫었다. 나는 엄마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리움이라는 것은 습관으로, 또 부지런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무리 망치고 더럽혀도, 붓 대신에 칼을 사용하여 모든 과거의 그림을 난자한다 하여도, 종종 우발적으로 마음을 밀어젖히고 비집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리움이고, 나는 그렇게 나를 약하게 만드는 그 그리움이라는 것을 온 힘을 다해서 혐오했다. 부지런한 그리움은 불가능하고, 우발적인 그리움은 혐오스럽다. 나는 적어도 내 마음에 성실하지도,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너를 다시 찾지 않을 것이다. 더 열심히 성실하게, 그리고 또 부지런하게 내일로 달아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한낮의 햇살에도 추운 공기가 패딩 사이로 파고들었다. 눈 한 송이가 내 코 위에 내려앉았다. 햇살과 함께 얽힌 겨울 냄새가 내 속을 달래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겨울 공기의 냄새를 되맡을 때마다, 무엇도 되담을 수 없다 하여도, 종종 너를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것을 알았다. 인간의 기억은 얄궂게도 모든 보기 싫은 이유들을 간과하도록 만든다. 무심함보다 그저 꽉 쥐어주는 그 손아귀의 힘과, 그 손을 쓰다듬을 때 느껴지는 혈관의 굴곡과, 답답함과 포근함 사이에 있는 포옹의 강도와 같은 것들만이 느낌으로 남을 것이다. 언젠가는 전혀 타인이 될 그 인간과 가장 은밀한 곳에서 나누던 이야기와 숨결과 피부의 마찰과 같은 것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놀라워져서 다시 한번 희미해진 그것들을 스스로 분명히 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그 모든 시도가 이제는 내 곁에 없음을 깨닫고, 오늘의 결심을 배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설레는 표정을 자각하지도 못한 채로 너를 만나러 걸어가던 순간들. 그리고 만나기 전에 도도하게 한 번 더 다잡아 보던 표정. 무언가에 열중하며 나를 기다리던 너의 모습과, 나를 보자 그 무엇도 가정하지 않으며 맞이하는 웃음과, 나란히 걷다 기대 보던 커다란 어깨와 향수 냄새 같은 것들. 힘겹게 살다가, 설령 정말로 누군가와 클럽에서 만나 마시고 뒹굴고를 반복한다 하여도, 언젠가 그리움을 자극하는 냄새를 맡게 되면, 다시 마법처럼 그리워하는 병에 걸려 주저앉아 울게 될 것을 알았다.


나는 문득 네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 정도면 네 죽음 앞에서 내가 모른 체로 나를 떠나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었어야 했다.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했다. 문득 "너 곧 죽니?"라고 물을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후회가 바보 같아서 웃었다. 나중에 후문으로 그런 소문이 들린다 해도, 내가 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워서 운다고 해도, 네가 죽었다는 이유로 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웃을 것이다. 그 고집에 감탄하며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며 웃을 것이다. 


엄마의 부지런한 그리움의 비밀은, 아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비밀을 알아낸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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