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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Jan 17. 2019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 (1)

fiction : 타인의 일기 프로젝트

너는 내 앞에서 그 육중한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들이 말하는 것처럼 소위 말하는 "악어의 눈물"은 아니다. 


물론 악어는 정말로 '악어의 눈물'을 흘린다. 인간이 하품을 하며 눈물 흘리는 것처럼 음식을 으적으적 씹어 먹을 때 눈물샘을 건드려서 우는 거다. 그래서 인간들은 위선적인 인간의 눈물을 '악어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부당한 일이었다. 인간들이 이 밀림에 들어와 사냥을 일삼으면서도, 그리고 또 너의 가죽을 벗겨서 가방을 만들고 벨트를 만들고, 재킷을 만든다고 하여도, 그들도 자신의 반려견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기 때문이다. 악어 역시도 그렇다. 네가 음식을 으적으적 씹어먹으면서 눈물 흘린다는 사실이,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는 없는 것이며, 또한 진정으로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라는 것은 한번 누군가를 위선자로 낙인찍어버리고는, 그 사람이 흘릴 모든 미래의 눈물조차도 위선으로 치부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네가 오늘 흘리는 눈물이 진정한 것임을 안다. 


나는 언제라도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작은물떼새였다. 나는 너보다 훨씬 작았지만, 날개는 그만큼 세상을 더 좁은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어디로든 가고자 할 수 있었고, 어디에라도 도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습지는 오래 머무르기에는 너무 좁고 답답했다. 아마도 너는 그것을 우려하고 있다. 나는 어디론가 떠나기엔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버렸다. 익숙해진 만큼 이별이 위태로워진다.




사람들은 우리가 단지 같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관계를 공생관계라고 정의 내렸다. 그러나 너의 저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턱 사이로 들어갈 수 있는 대담함은 내게는 없다. 그 안에 대단한 먹을거리가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의 이빨에 낀 찌꺼기를 먹지 않아도 내 앞가림 정도는 할 수 있다. 단지 사람들은 붙어 있는 생물들에게서 늘 이유를 찾고 싶어 했고, 그 이유는 늘 이익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상리공생관계인가? 편리공생 관계인가? 그런 건 그저 신화일 뿐이다. 단지 너와 함께 머물렀던 이유는 그저 하나의 계기 때문이다.


너는 끙끙거리며 사냥하고 있었다. 내가 독립을 선언하고 홀로 이곳에 도착했을 때다. 물기만 하면 다 부숴버릴 것처럼 무섭게 생긴 저 악어가, 이상하게 그 무엇도 제대로 붙들지 못하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물소의 다리를 먼저 물어뜯으려 달려 가지만, 한 발짝씩 뒤쳐진다. 나는 그 꼴이 우스워 본격적으로 구경하기 시작한다. 너는 다시 몸을 가다듬으며 물속에 몸을 담그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새는 그것도 모르고 한가하게 물고기 사냥을 하고 있었다. 너는 그 황새를 곧 덮치려는 듯했다. 그러나 찰랑 거리는 물소리에 황새는 악어를 돌아보았고, 입에 문 물고기를 떨어 뜨린 채로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황새가 떨어뜨리고 간 물고기를 낚아챘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등 뒤로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때 그 길로 너를 무시하고 떠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마음이 안 좋아서, 입에 문 물고기를 던져 줬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너를 기억하고 있다. 너는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그를 먹어치웠고, 악어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이 그저 무언가를 씹어대다 눈물샘을 건드렸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그냥 그런 순간이 있다. 저 황새의 자리에 내가 있었더라면 무참히 잡아 먹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단지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포식자가 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다. 동물을 사냥하는 인간이 동시에 동물을 기르는 것과도 유사할지 모른다. 대체 가능한 그것이 그저 대체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특별해진다. 식탁에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들. 나는 저들과 나르고, 너 역시도 그들과 다르다.


배고픔에 지쳐서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어 치워 버리고서는, 포만감이 차 오르자 지난날들이 서러워서 주저앉아 울어 버리는 모습을 보면, 그게 가여워서 따라 울고 싶어 진다. 나는 네가 말동무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는 인간들로부터 도망쳤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턱에 단단한 막대를 꽂아 놓고서는 그 사이에 머리를 넣었다 빼는 서커스를 하고 관람료를 받았다. 아이들은 돌을 던져서 자신의 신체에 상처를 입혔고, 그들은 그런 너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들은 계속 즐거워하기 위해서, 악어의 입에 넣은 막대기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를 늘 점검했어야 했을 것이다. 단단한 나무는 그 턱의 강력함을 견디지만, 썩은 나무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고, 그 안에 머리를 넣었던 인간의 머리도 결코 안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덕에 사람들을 모두 달아났고 너는 그곳을 절뚝이며 탈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더 이상 빨리 헤엄치거나 달릴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의 공생관계가 시작되었다. 그것은 그 어떤 물떼새와 악어 사이에도 있어 본 적 없는 오로지 우리 둘 만의 공생관계였다.


어느덧 나는 너의 사냥꾼이 되었고, 또 사냥꾼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너의 눈이 되었다. 악어의 입에 자살하려 머리를 들이미는 인간이 더는 없어도, 나는 이제 그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내가 너에게 물고기를 물어다 주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너는 허기를 채울 수 있게 되자, 그보다도 내가 해주는 이야기들에 더 즐거워했다. 파란 하늘과, 저 넓게 보이는 지평선들. 하늘을 활강하는 느낌과, 내가 부려댈 수 있는 수많은 곡예들. 


그러다 우리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너는 불안해했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었고, 그 가능성은 나의 날개와 나의 시야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었다. 나와 내 동지들은 물가를 벗어난 적이 드물었고, 늘 이 습지와 함께 살아가곤 했지만, 너는 자신보다 내가 더 멀리 보고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늘 내가 떠날 것을 걱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사라지면 먹고살 수 없으리라는 눈물도 아니었고, 심지어 내가 사라지면 외로울 것이라는 걱정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죄책감이었다. 자신에 의해서 내가 날개를 펴지 못하고, 더 먼 곳까지 날아가지 못하리라는 죄책감이다. 


어느 날 너는 내게 말했다 : "내가 너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더 멀리 갈 수 있을 거야. 가야 한다면 가. 나는 괜찮으니까." 


내 안에는 분명히 끓어오르는 것들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닿을 때, 그것은 그저 부딪힘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깃털을 타고 흐르는 하나의 흐름이다. 그때 날개를 펼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나는 본능적으로 아주 알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갈 수 있는지를 온몸의 세포가 알고 있다. 대기에 내 몸을 기댈수록 가라앉기는커녕 더 위로 튀어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바로 그 느낌. 나는 그 느낌을 알고 있다. 


너는 그런 나를 분명히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때에는 결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으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알게 된 만큼 너도 나를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모르는 것이 있다. 자신을 떠나라고 그런 목소리로 말하는 악어를 떠날 수 있는 새는 없다. 너의 말은 똑똑하게 해야 할 말을 하지만, 너의 목소리는 간절하게 그 말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 말은 온갖 종류의 감정들로 뒤섞여 있다.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버려지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래서 포기를 말한다. 하지만 너는 그 말이 오히려 무언가를 붙드는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는 그 말이 가지는 호소력이 차라리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나로서, 네가 좋아서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말이 가지는 호소력 때문에 너와 함께 하는 것으로 나를 전락시키고 싶지 않았다. 나의 삶은 나의 것이었다. 나의 선택은 나의 것이었다. 내게 하늘을 활개 쳐야 할 그런 사명이라는 것은 한 번도 존재했었던 적이 없었다. 단지 내게는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기꺼이 버린 저 무한한 세계로 등지고, 여기서 내 삶을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내게 강요할 수 없고, 그것은 내 천성과, 본능과, 온몸의 세포조차도 내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에 관한 철학은 그저 무의미하다. 내가 포기한 세계는 포기된 무엇이 아니라, 포기된 그 순간부터 이미 존재하지 않는 그런 무엇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네게 이 말을 전하지 않는다. 하나의 세계가 기꺼이 포기됨으로써 우리의 사랑을 빛내준다 하여도, 너는 결국 내가 져버린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또 울어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하루의 일과가 좋아서 그리 노니는 그저 한 마리의 새가 될 것이다. 


나는 이 곳이 좋다. 네 울퉁불퉁한 피부에 발을 디디고 유유자적 떠다니는 것이 무엇인 줄 이제는 안다. 정신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지 않고, 너와 나누던 이런저런 이야기들. 그 누구도 우리를 방해하지 못했다. 나는 민첩했고, 너는 두려운 존재였으니까. 여기는 우리가 만들어낸 우리만의 공간이다. 나는 이제야 악어새가 된다. 우리의 공생관계는 그 누구도 아닌 그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오로지 그 사실만이, 우리가 이리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리 살아간다는 사실만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빛내줄 수 있을 뿐이다. 나는 한 번도 있어본 적 없었던, 오로지 여기 이곳에서만 존재하는 공생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그때 불안한 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날개를 세상만큼 펼쳐 안아주는 것이었다. 

비록 그것은 네 코 언저리를 덮을 수 있었을 뿐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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