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Aug 24. 2021

승희에게

그리움 뒤에 숨은 이들에게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까요.

  승희, 승희 씨, 승희님, 승희 작가님. 주말 내 비가 많이 왔다던 남쪽 그곳, 지금은 어떠한가요. 여전히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듣긴 했어요.  


  가을에 취약해요. 가을에 취약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몇 해 전까진, 영혼을 취약하게 했던 계절은 봄이었어요. 겨울이 길었던 동네에서 자란 탓에, 봄바람 불어오면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적어두었던 수많은 '하고 싶은 것'을 꺼냈어요.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하느라 봄바람을 안타깝게 소진했어요. 

  그런데, 인생 조금 살아본 나이가 되어보니 가을에 취약해져요. 주변의 풍경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이, 그것을 보는 마음이 꽤나 아려와요. 이렇게 가을비가 오면 허물어지는 동쪽 마음을 바라만 보게 돼요. 그게 가을의 눈빛 같아요. 무엇도 지켜낼 수 없이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그러고 보니, 눈동자의 색도 가을빛이 서려있는 색이네요. 


  

  제 인생의 도처에 걸려있는 편지들을 유심히 혹은 스쳐 지나가듯이 살펴봤어요. 물론 가을이 시켜서 본 거예요. 가을의 억지가 아니었다면 감히 할 수 없는 행위예요. 


  천리안 펜팔 상대 대학생 오빠는, 제대하고 복학하면서 답장을 보내는 횟수가 줄었어요. 물론 글자의 양도, 마음의 양도요. 엄마한테는 전화비 줄어서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 소리도 싫고 오빠도 싫고 다 싫었던 고등학생 때의 야후 메일이 생의 저쪽 구석에 놓여 있네요. 빛바래고 먼지 쌓인 채. 

  

  그 후의 편지들은 대부분, 하아, 불쌍하네요. 부치지 못할 편지들을 왜 그리도 열심히 써댄 건지. 겉봉투에 주소까지 다 쓰고 왜 보내지를 못한 건지. 뻔하죠 뭐, 이성에 대해 전혀 몰랐던 소심녀 이십 대의, 들킬까 봐 숨긴 마음들. 대부분 주소는 '00부대'였어요. 좋아했던 과 선배 오빠, 남자 동기들, 그리고.. 어떤 부대인지조차 모르면서 마음 털어내려고 써 내려갔던 첫사랑. 

  인생의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시절이 있다면, 이 단락이에요. '우연히 너의 메일을 알게 되면서 모니터 앞에 널 밤새 기다릴 때'란 가사의 노래를 무한 반복하다가 모니터 아래의 초록빛 깜빡이면 작정하고 밤을 새우던 그때, 대화의 끝에 '진샤를 좋아해'라는 글자를 보고도 '나도 내가 좋아요'라고 눈치 없이 엔터를 눌렀던 그때. 밤새운 공을 한 순간 보란 듯이 차 날린 손가락들.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마코토의 타임루프 딱 하나만 빌려오고 싶어지는 순간이에요. 열나게 잘 뛸 자신 있는데.

  그 오빠는 공군 복무 중에도 몇 번을 편지를 보냈어요. 그때마다 최소 5장의 답장을 쓰고 주소를 쓰고 봉투를 풀로 붙이고, 서랍에 고이 모시고. 행간에 가득 숨긴 마음을 알아채 주길 바라며, 진짜 알아챌까 봐 겁이 나서 우체국으로는 향하지 못한 못난 마음. 

  동기 놈들에겐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들킬 마음도 없었으면서, 그들이 받고 싶은 건 그저 '여자 이름'의 답신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 답장도 친절하게 잘 썼으면서 도대체 왜 보내지를 못한 걸까요. 휴가마다 나와서 같이 영화 보고 '답장 왜 안 보냈어' 했을 때 가방에서 꺼내 줬으면 될 걸, 왜 직접 건네겠다고 가져간 편지마저 건네지 못한 걸까요. 한숨만 절로 나오는 스무 살의 어리바리예요.

  짧고 연하고 어린 첫사랑이자 짝사랑, 독어과 친구에겐 도대체 몇 번을 편지를 쓴 건지 모르겠어요. 주소도 모르면서 말이에요. 그러니까, 보낼 곳도 없는 받을 사람도 없는 편지를 그 겨울 거의 매일 밤 썼어요. 어느 날은 '야 너 나 알지 중어과 김진샤'하면서 아주 편한 친구처럼 쓰고, 어느 날은 '그날 밤 기억나니, 같이 불꽃놀이를 보았던'이라며 감정 과잉의 글자를 편지지 줄에 걸어두고, 어느 날은 '저기요, 혹시 저를 기억하실까요'라며 어색하지만 예의를 갖추고자 노력하고. 마주침도 대화도 많이 없었던 나의 그리고 우리의 한 학기를 복기한 숫자만큼 늘어가는 편지지와 마음들. 어차피 못 볼 편지이니 시원하게 써내려 가고 마지막에 다시 읽고 찢고, 무의미한 행위들 속에 남은 건 '추억' 뿐이네요. 비슷한 감정의 여럿 중에 이 아이를 첫사랑으로 결론 내리게 한 것은, 어쩌면 그 편지들이 가졌던 애틋함의 더미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대만에서 돌아와 보낸 편지들은 다행히 수신인에게 잘 도착했어요. 마음에도 없는, '맘에 드는 여자 생기면 내 생각 말고 만나'라는 문장을 적소에 배치한 편지들이었어요. 그는 늘 잘 받았다고 했고 답신은 없었어요. 네가 있는 데 어떻게 다른 여자를 만나, 라는 건 메신저보다는 편지로 받고 싶었어요. 그의 필체를 사랑했었으니까요. 

  그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에는 사내 연애의 설레는 마음이 넘실댔고, 저는 괜한 억울함과 서운함을 담아 '잘 됐네'라고 메신저로 보냈어요. 답신을 보낼 필요도 가치도 없어서, '잘 됐네' 보내고 나서  쓴 장문의 글은 굳이 엔터를 누르지 않았어요. 덕지덕지 남은 감정, 못생긴 상처 무어하러 내보이겠다고.



  부동산 계약서나 진급장, 표창장처럼 중요 문서만 모아두던 상자 맨 밑에서 발견한 나의 편지글. 잊었던 나의 마음들이 얼마 전 그 상자에서 발견되었어요, 마치 화석같이. 지금은 뼈처럼 남은, 그때는 살이 통통 올랐던 우리의 연정(戀情)같이. 


'우리가 얼마나 안 맞냐면요, 김치만 해도 그래요. 대위님은 겉절이, 저는 신김치. 대위님은 그냥 김치만, 저는 김치찌개, 김치볶음, 김치전. 대위님은 배추김치만, 저는 오이소박이, 총각김치, 부추김치, 파김치. 대위님은 줄기만, 저는 잎 부분만. 이렇게나 달라요. 그래도 이렇게 결혼까지 하게 되었네요. 김치가 뭐가 중요한가요, 김치 올라간 식탁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하지요.'


  소름 끼치도록 유치한 문장들, 구절들 사이에 스며든 설렘과 행복. 우리가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는 것 따위 아무 문제없게 느껴진 마음. 물론 너무 안 맞은 연유로 쉽잖은 생활이지만, 중요한 건 잘 보관된 화석이라는 거죠. 핵심은 뼈대니까요. 뭐, 결혼은 원래 그런 거니까요. 그렇죠, 승희님? 


  이 편지들을 끝으로, 제 생에 편지가 없었어요. 잊지 않고 엽서를 보내주는 동생이 있지만, 편지만이 가지는 그 무엇이 배어 있는 그런 글은 거의 없었어요. 발신의 설렘도, 수신의 향기로움도 없이 메마른 삶. 아, 그 무엇, 그건 그리움이네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서로를 향한 그리움, 편지지 구석 어설프게 자리 잡고 있던 동그란 젖은 자욱, 감정의 방치, 그것 말이에요.  



  가을 햇살에 취약해진 탓에 겨우 눈을 뜰 수 있었던 그 아침, 승희님의 글을 보고 편지를 써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누구에게 쓰지, 누구에게 이 허약해진 가을의 영혼을 날려 보내지. 몇몇 떠오르는 과거의 이름들은 누렇게 힘이 없고, 그리움 같은 헤픈 감정은 비집고 들어온 틈새가 없는 요즈음은 건조할 뿐이고. 

  그런데도 자꾸 퇴적되는 그리움의 대상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같은 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내 안의 시간과 공간에 분명히 '현존재'로서 그림자를 드리워요. 그림자는 길고 짙어요. (그 수업의 교수님 또한 연모의 대상이었어서 덕분에 하이데거를 끝까지 놓지 않을 수 있었네요, 에세이를 빙자한 고백은 눈치채지 못하신 듯해요.) 

  그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저 '그리움'이기 때문이에요.  모든 이름이, 모든 공간 안에서 명확한 실체 없이 그리움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그 시절'이라는 안개가 짙기 때문이에요.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그리움의 정서, 정리되지 않아 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은 매혹적인 글. 온 우주 통틀어, 독자가 '그대' 한 명뿐이라 더욱 내밀한 글. 글이 담고 있는 철학과 사유와 깊이가 오롯이 '나' 그리고 '그대'만을 위한 그래서 가장 고매한 글. 

  

  편지가 쓰고 싶어 졌어요. 

  

  가을만 아니었다면, 이리도 감정만 수북한 편지는 안 썼을 거예요. 이게 다 가을 때문이라고요. 가을을 탓하세요, 저도 그리 할 거니까요. 


  브라운 아이즈의 '이별송'을 들어야 하는 온도와 바람, 창밖의 나뭇잎 빛깔이에요. 가을이 나뭇잎 위에 살짝 얹은 색에, 제 마음도 갈변되어요. 속수무책이네요. 윤건의 목소리로 와닿은 노랫말로 겨우 버텨요.


'나의 슬픈 그대를 부디 그댄 모르기를' 


  부디, 가을을 위한 부사네요. 편지에 쓰라고 가을에 실려 온 부사네요. 부디,를 남발해야겠어요. 



  승희님, 그리움을 모두 모아 불러보는 이름들을 '승희님' 세 글자 뒤에 숨겨두겠어요. 부끄러운 마음이 삐져나오지 않게, 들통나지 않으려 좀 더 크게, 


승희님,


부디, 이 가을에도 그저 평안하시길.

부디, 제 부끄러운 마음을 이 편지의 행간에서 읽어내셨길.

부디, 알아내셨어도 모른 체하시길 

그리하여 

차마 그대의 자리까지 가닿지 못할 감정을 끝내 몰라 주시길.   






가을이 넘치는 마음을 흘려보내기만 하며 아까워하고 있었는데, 편지를 쓰라고 간질여 주신 분이 있어 가을밤의 취기, 가을비의 억지를 빌려봅니다. 


* 초록 문장은 '승희님'의 글에서 그대로 빌려왔습니다. 그리움의 대명사가 되어주신 승희님께 감사를 드려요. 


https://brunch.co.kr/@hearthee/117


매거진의 이전글 20대는 신림, 30대는 지동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