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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Feb 17. 2022

저의 출간 기획은요,

이림(어떤날엔), <만나지 못한 말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 편'이었던 것 같아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게 글은 어떤 아우성 같은 거였어요. 나란 사람 여기 있다, 이렇게 겨우 살아내고 있다, 읽고 끄덕끄덕 토닥토닥 해주라, 이런 발악 같은 글들이요. 그런 글들 가운데 하나가 '브런치추천'에 올랐어요. 사람들이 자연스레 흘러들어와 읽고 공감해주는 맛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맛은, 그 글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거처럼 여겨졌어요, '부모님 유산으로 살고 있습니다'.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 맨 앞에 그 글이 있었고, 제 글은 그다음이었어요. 부모님 유산으로 사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우리 엄마아빠는 유산의 ㅇ도 못 줄 거 같은데. 그 글 때문에 만년 2위 하는 기분, 살뤼에르와 아사다 마오와 진샤가 동급으로 묶이는 그 기분, 좋지 않더라고요. 그 글을 며칠째 째려보아도 1위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각오했죠, 얼마나 많이 물려받았길래 비킬 생각을 안 하는 거냐, 그 돈으로 브런치추천 명당 자리도 사버린 거냐, 확인해보려고요. 글을 클릭을 하고 읽으면서 한밤중에 코를 조용히 풀어대느라 머리가 아팠어요. 코 푼 휴지보다 눈물 닦은 휴지가 더 많았고요. 조용히 라이킷을 누르고 구독을 누르고, 나의 글 따위가 이런 글 뒤에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어요. 나는 그렇게 조용히, 작가님의 편이 되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님은 저와는 달리 호들갑스럽게 내 편이 되어 주었어요. 내 글의 악플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나와는 달리, 아주 대차게 댓글을 달아 주었어요. 악플에는 그저 어쩔 줄 몰랐던 제가 그 댓글에는 펑펑 울었어요. 사람이 이럴 수가 있나, 얼굴도 안 보고 모르는 사람을 이렇게나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 편을 들어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라는 의구심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의문으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어쭙잖은 절필, 브런치에서 종적을 감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 한 통이 왔어요. 용기 내서 메일 보냅니다. 결국 글을 다 지우셨네요, 괜찮으신 건지 꼭 여쭙고 싶었습니다, 메일이라도 언제든 주세요, 식사는 꼭 챙겨 드세요. 별 말 아닌 말들에서 눈물을 다 뽑아내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때만 해도 몰랐어요, 그 사람과 매일 출간을 이야기하게 될 줄은.


사실 저는, 작가님의 글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볼 자신과 용기가 없어서요. 보게 되면 울기만 해서, 눈이 너무 붓고 머리가 아파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몇몇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지만, 대부분의 글은 보지 못했어요. 작가님이 저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나선 더 그랬어요. 도저히 나로선 받아들이지 못했을 삶의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꺼내는 모습이 보기 힘겨웠어요. 개인적으로 노닥거리고 농담을 주고받아도 나는 끝내 작가님 안의 검은 슬픔들을 다 헤아리지 못할 거란 미안함이 걷히지 않아 그게 더 미안했어요. 그래도 작가님은 농담의 분위기를 잘도 유지하면서 '읽지 마세요, 내 글'을 자주 보내왔어요. 그러면 울컥울컥 하는 미안함을 꾹꾹 누르면서 '그럼 마음 놓고 읽지 않을게요'라고 답하곤 했어요.


그 글을 투고하겠다던 작가님은 별안간 저를 투고 메이트로 멱살을 잡기 시작했어요. 나의 기획 의도는 이러이러하다, 쉽지 않을 거지만 작가님과 함께라면 끝까지 할 수 있을 거 같다, 라는 의지를 밝히시더니, 아니 글쎄, 그날부터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노란 메시지를 날리시는 거 아니겠어요.

'기획은요?'  


지금 셋째 기저귀 갈기도 바빠 죽겠구먼 기획은 무슨. 자꾸만 제게 육아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출간 기획의도를 잡아주시고 투고서 양식을 보내 주시고 '쓰기만 하면 PPT는 내가 알아서 한다, 나 PPT 좀 한다'라는 궁금하지도 않았던 말을 하시고 한참 딴 소리를 하다가 갑자기 '그래서 기획은요'하면서 귀여운 압박을 하는 거예요. 이런저런 거절의 메일과 읽씹과 읽지도 않는 출판사들의 반응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기획은요'하면 저는 준비해둔 딴소리를 하고. 이런 나날이 우리의 여름을 데웠어요. 맞아요, 그때 우리의 여름은 어쩌면 시원했어요.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토닥이고 낄낄대면 어느 순간 눈물이 우리 안의 것들을 시원하게 해주곤 했거든요. 그러다가 출간 논쟁으로 다시 뜨거워지고. 왜 출간 준비를 안 하냐, 빨리 작가님 글을 컴퓨터 말고 종이로 읽고 싶다, 이러면 저는 말 돌리다 또 혼나고.

슬쩍 내비치기도 했었지만 그때의 저는 (물론 약간의 고민은 있었지만) 출간 생각이 크게 없었어요. 막내가 드디어 어린이집을 갔고, 읽을 시간도 없이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싶은 마음뿐이었어요. 책을 내야 한다는 당위성도 갖지 못했고, 작가님이 주는 압박은 너무 물렁해서 와닿지도 않았고요^^ 순수히 타자를 치는 그 손끝의 느낌이 좋았어요. 반면 그때의 작가님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육아휴직기간 동안 무언가 성취를 얻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저는 작가님의 투고와 출간을 응원하기로만 결심했어요. 저도 함께 했다가 누구 하나가 먼저 성공했을 때 느낄 그 어색한 재질의 감정도 싫었고요, (왠지 작가님이 더 빨리 될 것만 같았거든요) 조바심 내면서도 설레여하는 작가님 곁에 그냥 그렇게 있는 게 그냥 좋았어요. 제가 어쩐지 작가님께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거든요. 이미 작가님은 제게 글 쓰는 사람, 그 이상이었어요.


그 작가님이 존경하는 그래서 저도 덩달아 존경하게 된 작가님과의 만남이 있었고, 아쉬움뿐이었던 그 자리를 이었던 두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작가님의 '출간 계약서'를 보게 되었어요. 세 명은 꼬막무침과 식어가는 고등어구이를 앞에 두고 자꾸만 울었어요. 하얀 종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울었어요. 가벼운 종이 위에 담길 작가님의 묵직한 이야기들이 생각나서 괜히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그리고 그 계약서의 결실이 드디어 나왔어요. 작가님의 인생과 눈물과 초조함이 잘 버무려져 예쁜 표지를 달고 나왔어요.

책이 나왔다고 '저기... 주소 좀....' 하고 물어오던 작가님이 대뜸 물으시더라고요. 그래서, 기획은요. 아하하하, 오랜만에 소리 내서 웃었어요. 끈질기고 기분 좋은 질문. 대충 현실적인 대답을 했지만 진짜 대답은 따로 있어요. 그리고 그 대답이, 이 길고 장황한 글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제게 작가님의 글은, 글쎄요, 별생각 없이 읽다가 어느덧 마음이 뭉근해졌다가 조금 웃다가 조금 더 울다 보면 어느새 샛별 같이 맑은 눈빛을 갖게 되는 그런 글이더라고요. 그런 글들이 소복이 쌓여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어요. 많이 사고 많이 읽고 많이 소문내 주세요. 가까운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 꼭 해주세요. 감사의 마음 미리 건넵니다.





브런치 어떤날엔, <만나지 못한 말들> 이림 작가님. 잘 모르겠어요. 브런치 몇 만의 글 쓰는 사람들 중에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그냥 뭐, '인연'이라고 간단히 말하기엔 그 뒤에 많은 이야기들이 간단치 않게 얽혀있겠지요. 그 이야기들이 풀어놓은 선을 따라오다가 우리가 만나 자신의 삶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거겠지요.

작가님, 대답해 볼까요. 제 출간 기획은요, 작가님 10쇄 찍으실 때 그때 작성해서 보여드릴게요. 그러니 그때까지 좋은 글 많이 써주시고 계속 곁에 있어 줘요. 진심으로, 진심을 다해 작가님의 출간을 축하드려요. 저는 영원히 작가님 편이에요.


삶의 촉수님, 숙제가 늦어 죄송해요. 책 받으면 사진 찍어 올리고 싶었는데, 택배 파업.... 우리 파티 전에는 도착할 거 같아요. 파티는 언제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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