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이 금세 시려오는 건 오랫동안 모유수유를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 탓했다. 미련한 것, 남들처럼 쉽게 쉽게 육아하면 될 걸 똥고집을 부리느라 애셋을 모유수유를 한 탓에 목디스크, 척추 나가, 손목까지 시들시들. 그때는 그게 자부심의 자부였으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기부정의 자부로 변했다. 그래서 첫째가 2주에 한 번 실내화를 들고 올 때마다 나는 자꾸만 무식했던 나의 육아 시절을 탓하곤 하는 것이다. 칫솔을 들고 실내화를 닦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손목에서 땀이 나는 듯한 나쁜 기분을 피할 수가 없다. 이어지는 익숙한 자기 비하와 후회. 그리고 이어지는 익숙한, 뒷모습.
엄마는 손빨래로 했다. 빨간 다라이(그렇다, 다라이다)에 빨래들을 쌓아 놓고 하나씩 하나씩 빨래판에 올리고 세탁비누로 문지르고 빨래들을 치댔다. 그 빨래들을 세탁기에 넣어 돌렸다. 지금의 나의 빨래법에 비교해 보자면 빨래를 두 번 한 셈이었다.
그 와중에 흰 빨래들은 삶기도 했다. 엄마는 일주일의 빨랫감을 몰아 일요일에 했는데, 덕분에 일요일에는 빨래 삶는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더 따질 것도 없이 엄마의 빨래는 오래 걸렸고 하나같이 깨끗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일요일 오전부터 '아이고, 빨래해야 하는데'라든가 '빨래하기 귀찮아 죽겠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 말을 들어도 나에겐 일말의 감정 동요 같은 건 없었다. 동요될 감정이 없었다, 나의 일이 아니었으니까.
엄마는 오후에는 화장실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쪼그려 앉아 빨래들을 치댔다. 어느 날은 조용히, 어느 날은 '궂은비 내리던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느 날은 '확'이나 '콱', '어휴', '못살아' 같은, 어느 감정일지 충분히 짐작이 되는 소리를 내뱉으며 빨래를 했다. 그런 감정의 대상이 무엇이고 누군지 예상 가능했지만 끝까지 모르고 싶어서 따로 묻지는 않았다.
엄마의 뒷모습은 늘 비슷했다. 여름이면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닦기 위해 빨간 고무장갑 낀 손을 목에 자주 갖다 댔다. 나는 그런 모습을 무심하게 보며 지나갔다. '힘들겠다'라든가 '손목이, 어깨가 아프겠다'라는 생각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채. 그런 생각을 할리가 없었다. 손빨래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고 알 수 없었으며 알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냥 하얘진 교복을 입고 기분 좋게 학교를 가서 수업을 듣고 졸리면 자고 급식실로 뛰어가고 친구들과 웃으면 될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건 엄마의 소신이자 고집이었다. 세탁기는 문제없이 잘 돌아갔다. 그러나 엄마는 기계보다는 엄마의 손을 믿었다. 세탁기만 돌고 나온, 여전히 회색이 강하게 남은 양말 바닥을 엄마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 손으로 얼룩이 지워지는 걸 보고 나서야 세탁기에게 후일을 맡겼다. 엄마의 고생스러운 방식이었다. 손목이 아프고 어깨가 결리고 목이 뻐근해도 빨래는 손으로 하는 거였다.
다행히 엄마의 손은 힘과 재주가 있어서 빨래의 결과물들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새하얀 교복을 입고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실내화를 신었다. 빨래한 옷은 다 그렇게 하얗고 깨끗하다고만 생각했다. 엄마 고집의 결과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때 나의 일상에서 중요한 건 김민종과 SES와 신화와 수학선생님과 중간고사 기말고사였어서, 손빨래의 힘 같은 건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빨래가 고생이고 고통이라는 건 결혼하고도 깨닫기 어려웠다. 나에겐 듬직한 세탁기가 있으니까. 사실 빨래는 집안일에서 가장 가벼운 영역이 아니던가. 빨래를 넣고 전원을 켜고 작동을 누르고 시간이 지나면 꺼내고. 이 얼마나 우아하고 효율적인 과정이란 말인가. 설거지가 싫어지고 청소가 싫어지는 동안 빨래는 고유의 영역 그러니까 고귀한 집안일의 영역을 지켰다.
늘 그렇듯 육아는 빨래의 지위 또한 바꿔놓았다. 옷에 흘리고 묻히고 쏟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바로바로 손빨래하지 않으면 다시는 입기가 힘들어진다. 그래도 그런 일은 비정기적이었다. '주기적으로 귀찮아지는'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후 '주기적으로 귀찮아지는' 빨래가 드디어 내게도 생기고야 말았다.
첫째는 2주에 한 번 잊지 않고 실내화를 가져온다. 처음에는 때 탄 실내화가 예뻤다. 이 녀석이 내 아이의 발을 감싸고 학교 교실과 복도를 누볐구만, 귀여운 것. 귀여움이 귀찮음으로 변질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큰거리는 손목을 주물러가며 아이의 실내화를 빤다. 때가 잘 가지 않아 생각보다 긴 시간과 그만큼의 고생을 필요로 한다.
몇 번 문지르다 '에잇 확 세탁기에 던져버려' 싶어 진다. 요즘 실내화는 재질이 좋아 모양도 안 변하고 금방 마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내화를 노려보다 보면, 어느새 내 곁에 엄마가 뒷모습을 이끌고 온다. 20년 넘게 두 시간씩 손빨래를 한 어깨와 손목이 함께 온다. 나는 20분 실내화 씻기도 손목이 아파서 못하겠는데, 엄마는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손빨래를 한 걸까. 확, 콱,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어휴, 못살아, 에 대답이 있기라도 한 걸까.
엄마의 노래를 불러본다.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대답은 없다. 최백호 아저씨 특유의 낭만만 있을 뿐이다.
문득, 답을 찾은 기분이 든다. 물결 낭(浪), 흩어질 만(漫), 낭만. 빨래가 실내화가 일으키는 물결, 그 시절에서만 건질 수 있는 그런 것. 엄마는 크고 있는 아이들을 곁에 둔 엄마일 때 최선을 다해 손빨래를 했다. 초등학생 엄마가 된 나는 초등학생의 실내화를 빤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특정한 시절이 주는 물결에 흔들리는 것. 우리는 그런 낭만의 시간을 관통하는 것이 아닐까.
엄마는 고생스러운 빨래를 잊기 위해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그저 별생각 없이 흥얼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노래 뒤에는 젊은 내 엄마만이 가질 수 있는 낭만이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도 지금의 나는 젊은 엄마이고, 그런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지금의 나만이 해내야 하는 그 무엇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만이 지나올 수 있는, 경험할 수 있는 낭만, 그 물결에서 흔들리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2주에 한 번 실내화 한 켤레 빨기 힘들다고 징징대는 글을 쓰고 있다. 고생이니 고통이니 하는 묵직한 어휘들을 곁들여가며 자못 진지하게 쓰는 것이다. 그러나 글의 끝에는, 내 엄마의 뒷모습에서 배어 나온 낭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 시기의 고통이나 고생이라는 것들도 낭만의 일부일 수 있음을, 지금의 나만이 할 수 있고 해내야만 하는 일들의 가치임을 받아들이려 한다.
문득, 엄마의 빨래판이 그리워졌다. 엄마, 빨래판 사진 좀 찍어 보내줘. 엄청 닳았어. 그럼 더 좋고. 사진이 왔다. 그래, 이것이 낭만이 아니고 무엇이던가. 빨래판에 엄마의 서사가 투박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느새 엄마는 세월을 내어주고 빨래판을 사 오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훗날 내 엄마를 그리워할 때, 나는 이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게 될 것만 같았다. 엄마가 엄마였던 날들이 깊이 새겨져 있으니까.
어디선가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엄마의 이야기
집에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려는 주부가 쓰는 집안일 에세이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순간만큼은 집과 나 모두에게 쉼을 주려 합니다. 5로 끝나는 날마다 보잘것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집안일을 늘어놓겠습니다. 집안의 일들이 갖는 소중한 의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