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 누르는 사람조차 없다니, 이 멀쩡한 걸. 그러나 나는 곧 수긍했다. '건조대 드림'은 하루에도 몇 차례나 게시되었다. 너도나도 건조기를 사는데 누가 이 흉물을 집에 들이려 할 것인가. 저걸 버리자니 귀찮고, 일단 누가 데려갈 때까지 그냥 두자, 하고 그냥 두었다. 시간은 잘도 가고 자주 '끌올'을 했지만 캐럿 마켓의 새로운 게시물들은 나의 건조대를 빠른 속도로 하강시켰다.
신세계야신세계. 빨리 사라고, 너도 신문물을 받아들이라고 재촉하는 말을 감추어 둔 '신세계'를 맞이하는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 같은 사람, 구세계에 안주하려 하는 사람, 물건이 주는 편의를 우습게 여기려 노력하는 사람. 그래서 빨리 건조기를 들이라는 친구들의 말도 가볍게 흘려보냈다. 대한민국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경기도에서 가장 늦게 건조기를 들이는 엄마가 돼야지. 이런 유치하고 억지스러운 고집을 부리는 데 능한 재주가 있었다.
이런 재주는 019 때도 발휘되었고 스마트폰에서도 드러났다. 모두가 010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을 때 나는 019로 썼다. 잘 써야 했다. 9를 대충 썼다간 사람들은 010으로,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봐버렸으니까. 넌 왜 번호 안 바꿔?라고 물으면, 나는 '글쎄'라고 대답했다. 나도 왜 내가 번호를 안 바꾸는지 몰랐다. 바꿔 말해야겠다. 사람들이 왜 다 010으로 빠르게 바꿔 나가는지 알지 못했다. 국가 정책? 이게 그렇게 급한 국가사업이라고? 손발이 느린 나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였다.
스마트폰도 그랬다. 사장님이 '제발 좀'이라고 짜증 비슷하게 내셔서 스마트폰으로 바꿨지 안 그랬으면 나는 멀쩡한 나의 2G폰을 좀 더 썼을 것이다. 전화를 주고받고 문자를 보내고 받는 데 그 어떤 불편함도 없었다. 물론 나의 지인들은 불편했을 것이다. 너도 카톡이라는 걸 해봐, 너만 없으니 좀 그래, 너한테 따로 문자해야 하는 거 은근 귀찮다? 문자로 이야기하는 사람 너뿐이야, 폰으로 은행도 돼 대박이야, mp3랑 카메라가 차원이 달라, 신세계야 신세계. 아무리 들어도 신세계 진입으로 느껴질 그 어떤 유능함이 없었다. 은행 된다는 건 좀 신기했지만, 우리 집 근처에 ATM기는 많았다. 그래서 나는 느릿느릿하게, 내가 아는 모든 이들 중에 가장 늦게 스마트폰의 세계로 들어섰다. 아, 유재석 빼고.(유느님은 나보다 두 달 후에 2G 폰에서 스마트폰으로 갈아타셨다)
건조기를 경기도에서 가장 늦게 살 거라는 나의 이상한 다짐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생각지 못하게 온 셋째는 이미 심장박동을 시작하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세포분열하느라 정신없는 그 생명을 미워하며 우울해할 순 없었다. 보상이 필요했다. 건조기는 셋째 임신에 대한 보상이었다.
보상이 이루어졌는데도 우울이 많이 가시지 않았던 걸 보면, 건조기는 역시나 내게 그렇게까지 신세계는 아니었던 듯싶다. 빨래에 있어 확실히 일손은 줄었으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별생각 없이 돌린 아이들 옷이 인형 옷이 되어 나오는 걸 보고는 짜증까지 일었다. 신세계라고 말한 아이들을 106동 우리 집 앞에 일렬로 세워놓고 싶었다. 도대체 뭐가 신세계라는 거야.
신세계라고 치켜세운 친구들을 세우는 대신, 나는 오랜만에 건조대를 세웠다. 아이들 옷을 탁탁 털었다. 샤프란의 냄새가 역했다. 망할 입덧. 먼지들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바닥으로 하강했다. 베란다 건조기 옆에 팔을 벌리고 선 건조대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결국 너도 당분간 이 집을 못 벗어나겠구나. 순면으로 만들어지는 아이들의 옷을 건조기에 함부로 넣을 수는 없으니, 한동안 같이 살자. 캐럿 마켓 앱을 켰다. 게시물 삭제.
애들 옷이니까 오히려 더 건조기를 돌려야지, 살균까지 되잖아. 한두 치수 큰 걸 사서 입혀, 건조기 몇 번 돌리면 딱 맞는 크기로 줄어. 어쩜 그리 자기 인생 평형만큼 각지게 이야기하는지. 난 딸만 셋이잖아, 물려 입힐 생각을 하면 건조기에 못 돌리겠어. 이 대답을 4년째 하고 있다. 물려 입힐 생각에 건조기에 못 넣어.
다들 '그건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여전히 표정들엔 '그래도'하는 말들이 묻어있지만 다들 더 이상 '신세계' 편만을 들지는 않는다. 나의 지인 중 그 누구도 어린 딸 셋을 키우지는 않으니까, 누구도 나의 집안일을 멋대로 상상할 수는 없으니까.
어린이집 원복을 급히 입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건조기에 넣었다. 원복은 거의 줄지 않았다. 막내는 순면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은 옷을 입어도 될 만큼 컸다. 인공의 것을 접하기엔 내 눈에는 여전히 작은 아이이지만 건조기는 그렇지 않다고 객관적으로 입증했다. 건조기 옆 건조대의 늙은 나이를 만졌다. 신혼 때 홈더하기에서 산 건조대, 너도 벌써 열 살이구나. 한동안 같이 살자, 의 '한동안'이 수명을 다한 것 같았다. 너를 잃을 시간이 왔구나.
019가 010로 사라질 때는 그 어떤 감흥도 없었다. 흐름이었고 시대였고 추세였고 말없는 강요였다. 2G가 갤럭시가 될 때는, 삼십 대에 적응하던 시기였다. 서글픔과 서러움과 안타까움, 아쉬움, 미련, 추억, '점점 더 멀어져가는 청춘'처럼 눅눅한 감정들이 있었다. 이런 감정들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4를 앞세운 나이에 건조대가 이끌고 온 어휘는 '상실'이었다. 아직은 '상실'에 낯익을 때가 아닌 것도 같은데, 나는 왜 너의 감촉에 상실을 벌써 실감하려 할까.
시절, 상실의 속에는 '시절'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절은 대개 '추억'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신혼 때는 이인분의 빨래가 적어 대형 건조대보다는 남편이 사용하던 키가 작은 건조대를 주로 세웠다. 첫째를 낳고 둘째를 낳은 후 건조대 두 개로도 모자라 하나 더 살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그러니까 초등학생과 유치원생과 어린이집 유아를 키우는 시절, 건조대는 여전한 각도로 팔을 벌려 아이들 옷을 받아내고 있다.
건조대를 없애면 무엇도 함께 사라질까,를 생각하다이내 답을 찾길 포기했다. 슬픔과 아쉬움의 다리를 가진, 추억이 되어버릴 일상이라는 팔을 벌린 감정 때문이었다. 향긋한 냄새와 묵직한 무게와 깨끗한 기분을 가진 빨래들이 건조대로 오면 여덟 살과 여섯 살과 네 살의 인생이 건조대 겨드랑이 아래로 모인다. 여덟 살은 의젓하게 탁탁, 여섯 살은 어설프게 탁탁, 네 살은 꺄하하핳 탁탁 툭, 바닥으로. 그러고 다시 꺄하하핳핳, 언니 저것 봐. 여덟살은 꽤나 무섭게, 똑바로 널어. 건조대를 없애면 이 웃음소리와 탁탁과 여덟 살, 여섯 살, 네 살의 시간이 모두 건조기 안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좀 더 털어, 쫙 펴서 널어야지 하는 엄마의 잔소리도 없어질 테다. 끝났다, 이제 자유시간, 외치는 여덟 살의 들뜸도 여덟 살 속으로 묻힐 것이다.
예정된 상실이었지만 이리도 일찍 올 줄은 예정하지 못했다. 나는 건조대의 노동을 연기시키기로 했다. 우리 집의 추억을 연장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나답게 느리게 상실하기로 결심했다. 그리 긴 시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고 건조대는 그 속도를 감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019도, 2G 폰도 상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건조대도 그리될 것이다. 이 예정된 상실 앞에서 조금 두려워진다. 아마도 잃는 것이 두려워진 나이가 되어서, 잃어간 것들을 다시 되돌려올 수 없음을 알게 된 나이가 되어서 그럴 것이다.
나이를 먹는 건 시절을 잃는 일이다.그것이 슬퍼서 이 글을 느리게 썼다. 나이를 먹을수록 슬픔을 이겨내는 속도도 느려진다는 생각을 하며, 세월을 따르지 못하는 속도로 썼다.
세탁기가 울린다. 건조대가 팔을 벌릴 시간이다. 아이들의 옷을, 나의 슬픔을 말리러 가야겠다.
조금만 더
집에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려는 주부가 쓰는 집안일 에세이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순간만큼은 집과 나 모두에게 쉼을 주려 합니다. 5로 끝나는 날마다 보잘것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집안일을 늘어놓겠습니다. 집안의 일들이 갖는 소중한 의미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