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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ug 25. 2022

두 번째 생

집, 안일_때 되면: 욕실 청소



  부끄럽고 진솔한 고백을 하자면, 욕실 청소를 잘하지 않는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낳기 전에야 어떻게든 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욕실 청소를 하고 나자빠진 기억이 있어 정말 큰 맘을 먹지 않고는 잘하지 않는다. 

  첫째 낳고 50일 즈음, 한여름, 아이 자고 있을 때, 욕실의 저 검은 무리들을 몰아내자 하고 욕실 청소를 했다가 허리와 골반과 손목이 한꺼번에 괴성을 질렀다. 그 소리를 듣고도 20분을 더 땀을 흘리고 나왔다. 씻고 나와 패잔병처럼 거실에 눕자마자 아이가 깨서 울었다. 같이 울고 싶어졌다. 그 후로 욕실 청소가 무서워졌다. 욕실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남편의 집안일 목록에 추가되었다.



 




  남편의 작업복은 속옷 한 벌이다. 훌렁훌렁 벗고 두꺼운 등을 내게 보인다. 다 필요 없어, 이거 하나면 돼 하고는 칫솔 하나 잡는다. 쓱쓱 싹싹 그리고 쓱쓱 싹싹. 트림을 시키려 아이의 얇은 등을 두드리며 핀잔을 내뱉는다. 그거 가지고 되겠어요, 어느 세월에 다 하겠어요. 남편은 대답도 없이 닦는다. 쓱쓱 그리고 싹싹. 뭔가 더 비아냥대고 싶어 지지만 '그럴 거면 마눌이 하던가요' 말이 나올까 봐 조용히 작업 현장에서 벗어난다. 저거 가지고 언제 끝나겠어. 뭔가 답답하지만 그렇다고 더는 참견할 수 없다. 답답함을 조금만 참아내면 화장실은 깨끗해져 있을 거니까.

  아이가 거어억 하는 소리를 듣고 '아이고 내 새끼 트림도 잘하네' 하며 누인다.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린다. 기저귀와 물티슈를 주문하고 이런저런 기사를 보고 나니 아이가 입을 벌리고 자고 있다. 입에서 젖내가 폴폴 난다. 깨지 않게 눕히고 그 옆에 눕는다. 인스타 사진을 몇 장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폰 진동에 눈을 뜨고 보니 3000만 원까지 대출!이라는 문자다. 밖에서 인기척이 난다. 남편이 씻고 나왔다.

  역시나 화장실은 깨끗하다. 깔끔한 남편의 성격 때문인지, 칫솔의 위력인지. 둘 다인 거겠지. 화장실이 깨끗한 것처럼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수고했어요. 한 번 씩 웃어 보인 남편이 웃옷도 챙겨 입지 않고 소파에 눕는다. 아직 얼굴에 붉은 기운이 남아 있다. 그 후로도 남편은 몇 차례 욕실 청소를 했다. 도구는 동일하게, 작업복도 그대로. 괜히 아이 옆에서 책을 읽어 주거나 블록을 쌓으며 나는 욕실 쪽은 보지 않았다. 남편의 넓은 등과 작은 칫솔이 함께 끙끙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깨끗해질 거였다. 욕실 청소용 솔을 사놔야지, 매번 하는 다짐은 환해진 욕실을 보고 나면 깨끗이 없어졌다. 다짐이 생기고 없어지는 만큼 욕실은 환해졌고, 시간은 다짐하고 잊는 것만큼 쉽게 흘렀다.

  

  쓰레기봉투를 묶다가 남편이 버린 칫솔을 보았다. 칫솔모가 검어진 칫솔. 자기 탄생의 목적과 다르게 생을 마감한 칫솔. 한때는 나와 남편과 아이들의 이를 책임졌던 칫솔. 벌어지긴 해도 검어지지는 않는 칫솔모인데, 쓰레기통에 처박힌 칫솔의 모는 검은색이었다. 검은 얼굴의 칫솔이라니, 평생 남의 이 하얗게 해 주다 자기의 마지막 생은 검게 물들고 버려지다니, 희생이라는 두 글자로 덮어버리기엔 억울하고 분했다. 쓰레기봉투를 휙휙 묶어 버리고 와버렸다.

  손을 씻고 닦았다. 이 수건 또 빨아서 쓰고 있네, 이번까지만 쓰고 걸레 해야지. 낡고 헤진 수건을 자꾸 빨아서 쓰고 또 쓰고 있다. 이렇게 생각 없이 살아서야, 원. 수건을 가만히 본다. 장흥초등학교 제 xx회 동창회. 장흥초등학교는 장흥에 있는 건가. 장흥초등학교는 어디에 있는 거지. 장흥초등학교 동창회 수건이 어쩌다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을까. 태어날 때만 해도 장흥초등학교 동창회를 기념할 목적이었던 수건. 한 때 우리 가족의 세수와 손 씻기와 샤워 이후를 책임진 수건. 곧 걸레가 될 수건.

 

  칫솔과 수건, 전혀 다른 두 생을 살고 마침내 버려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욕실을 깨끗이 하는 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칫솔은 자신이 한 때 이를 깨끗이 하는 칫솔임을 떠올릴까. 걸레가 된 수건은 한 때 자신이 섬유유연제의 장미향을 풍기는 보송보송한 수건이었음을 환기하고 슬퍼할까. 자신에게 갑자기 닥친 두 번째 생이 끌고 오는 서글픔을 서글퍼할까. 하얀 과거를 검게 그리워할까.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본다. 40년을 산 얼굴이 있다. 20년 전 아니 10년 전을 그리워했다. 시간이 파내는 그리움에 깊이가 있다면, 나의 그리움은 내핵 근처에서 뜨겁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10년 전의 나는 비혼을 외치고 다녔다. 남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은 생각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내 기억에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이었지만, 남편은 웃었다고 한다. 뭐가 중요한가, 지금은 애셋 엄마고 애셋 아빠인데. 

  10년 전의 나는 가고 싶은 곳에 갔고 보고 싶은 것을 봤고 웃고 싶을 때 웃었고 울고 싶을 때는 울었는데 울고 싶은 때는 거의 없었다. 매일 웃으며 지내기에도 바빴다. 울음은 선택적이었다. 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는 슬픈 영화를 보면 되었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꾸준히 일었지만 그렇다고 일개의 청춘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자주 무력했지만 그보다 더 소소하게 행복해서, 총량으로 봤을 때는 '행복한 개인'이었다. 

  10년이 뭐길래 나를 이리도 바꿔 놓았을까. 세 번의 출산이 아니었어도 허리와 손목과 어깨가 이렇게 아플까. 세 아이의 엄마라는 직업은 어찌 이리도 보람차지 않고 바쁘기만 한 건지. 마흔은 동화 속 마녀의 나이라는데, 그들은 마녀라서 그런가, 매력이 넘치던데 나의 팔자주름은 왜 이리도 깊고 못난 건지.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없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없고 웃고 싶은 때는 거의 없고 울고 싶은 때는 너무 많다. 총량으로 봤을 때 불행이 압도적인 개인이다. 칫솔과 수건과 나의 두 번째 삶은 이렇게나 볼품이 없구나. 서글프구나. 

  쓸데없이 감성적인 성격은 자주 눈물이 나서 좋지 않다. 손에 쥐고 있던 수건으로 쓱쓱 닦는다. 곧 걸레가 될 주제 장미향이 난다. 보송하다. 곧 걸레가 될 수건이지만, 너의 지금은 수건이구나. 수건 향이 좋아서 조금 더 얼굴을 묻었다. 덕분에 수건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칫솔도 나도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닦고 닦아낼 뿐이야. 그냥 그렇게 있을 뿐이야. 



  그냥 그렇게, 여여(如如)하게 있는* 칫솔과 수건에 감정을 싣고 혼자 질질 짜는 마흔 살 아줌마라니. 피식 웃음이 났다. 그냥 그렇게 있을 뿐인 그들의 두 번째 삶. 이와 살을 닦다가 곰팡이와 마룻바닥을 닦는데도 그냥 그렇게 있을 뿐이라니. 나의 두 번째 삶을 보았다. 세 아이의 넘치는 사랑을 밀어내느라 바쁜, '엄마' 부르는 소리에 귀에서 피가 날 거 같지만 피는 안 나고 웃음소리가 와닿는, 덕분에 따라 웃을 수밖에 없는 두 번째 삶. 그냥 이렇게 있어야 하는 삶. 너무 별로이고 너무 평범하고 그래서 너무 행복한 나의 두 번째 삶.


  칫솔은 욕실 청소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 수건은 걸레가 될 생각이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되었다. 결혼할 생각이 없었지만 아이 셋의 엄마가 된 나도 그냥 그렇게 되었다. 욕실 청소는 잘하지 않지만, 곰팡이 제거 젤은 자주 바르는 그런 엄마가 되었다. 




*여여(如如): 불교 용어. 그렇게 있음. 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모습.



  

두 번째 생을 기다리며 




집에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려는 주부가 쓰는 집안일 에세이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순간만큼은 집과 나 모두에게 쉼을 주려 합니다. 5로 끝나는 날마다 보잘것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집안일을 늘어놓겠습니다. 집안의 일들이 갖는 소중한 의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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