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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08. 2021

시로 수혈받아 글쓰기의 생을 이어가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시가 살렸다

  정말 오랜만에, 밑도 끝도 없이 우울했어요. 아, 이런 우울감 오랜만이야, 라고 생각하며 밀려오는 우울을 받아들였어요. 생각해 보면 둘째를 키우던 시절, 이틀 연속을 링거를 맞고 사실 이틀 정도 더 링거가 필요했지만 그냥 버티던 나날이 있었어요. 이틀이나 맞았는데 또 맞기엔 눈치가 보였어요.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좋아진 척해야 했어요. 그땐 그랬어요. 늘 좋지 않았던 시절, 몸이 안 좋아서 맘이 안 좋은 건지 맘이 안 좋아 몸도 안 좋았던 건지 헷갈렸던 시절. 링거를 맞고 나면 좀 좋아졌지만, 말 그대로 '좀' 좋아졌어요. 두 시간 정도 지나면 다시 시작되는 미식거림, 이명, 소화 불량, 두통, 구토. 이유는 '육아 스트레스' 정도였지만, 늘 항상 언제나 달고 있는 지병의 이유라기엔 너무 가벼운 느낌이었어요. 육아 스트레스라는 이유보다 몇 겹 더 안에 진짜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상황이 계속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매일 집의 벽이 조금씩 좁아지는 느낌, 그래서 강해지는 갇혀 있는 기분, 그 와중에 끊이지 않는 아이의 울음소리. 이런 생각들을 떨치지 못한 채 몸도 계속 아팠으니, 최후의 방법으로 링거를 맞으며 버틴 거예요. 링거를 맞는 동안도, 다 맞고 나면 괜찮아져야 한다는 압박에 심장이 두근거려 쉬지 못했어요.

  그런 시기 이후 오랜만에 우울했던 거예요. 그 시절이 떠오르며 우울을 잊어 보려 노력했어요. 그런 때도 있었는데 지나갔으니 이번에도 어떻게든 지나갈 거야, 그럴 거야, 그럴 수 있을 거야.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며 꾸역꾸역 살아내던 어느 날, 대화창에 시가 떴어요. 아, 시 필사를 신청했었지. 나, 시를 손으로 써보려 했었지.







 

  더 이상은 브런치와 그 무엇도 하지 못할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던 그 날, 공허와 불안의 눈빛으로 브런치를 돌아다니다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글에서 이 시를 발견했어요. 순간 생생히 떠오르던 15년 전 즈음의 그 날. 신문을 탐독하던 시절 신문에 실린 이 시를 보고, 손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도서관에서 나왔던 그 날. 문자 그대로 '부들부들' 떨렸어요. 시인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너무나도 탐나는, 나는 어찌해도 이런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시기심'이 그 정체였어요. 시의 부분을 북- 찢어 들고 나와서는 다시 천천히 소리내 읽었어요. 화가 치밀어 조금 울었어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사람이기에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거지, 어떤 삶을 살면 이렇게 시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거지, 나는 이런 시를 읽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거지. 무슨 표정으로 이런 시를 마주해야 하는 거지.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능한 모든 변명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으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통으로 시를 외워보고는, 다시 잊어보려 머리를 막 흔들었어요. 그럴수록 시어와 시구들은 더 빠른 속도로 좌뇌, 우뇌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어요. 그때 알게 됐어요, 나는 이 시를 알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구나.

  

  그 날은 신문이고 스터디 준비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집으로 왔어요. 저녁을 먹고 이불을 확 뒤집어쓰고 자버렸어요. 자꾸 시가 떠올랐지만 쳇, 하고 자버렸어요. 시는 쓸 수가 없고 글이 쓰고 싶어 택한 직업이 기자였는데, 기자가 되려는 나의 발목을 잡는 것만 같은 시였어요. 이 시의 충격은 꽤 오래갔지만, 졸업과 유학과 직장생활과 결혼은 '일상'이란 이름으로 시와 글과 충격받은 나 모두를 조용히 잠식했어요.




  그 시가, 브런치 유랑의 마지막에 나를 잡아당겼어요. 와, 브런치 진짜 끝까지 추잡하게 나를 잡아끄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이제 활자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나였기에 더 무얼 어찌할 수는 없었어요. 시는 추억을 헤집어 놓고 마음 지저분하게 하고는, 네 감정이니 난 모르는 일이다 하더군요. 끝까지 치사한 시예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연히 본 '시 필사 모임' 홍보글에 다시 보게 된 거예요. 한 달 동안 필사할 시집 제목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운명'이란 단어는 이럴 때 떠올리는 거였어요. 저는 거부할 힘도 재간도 없었어요. 그냥 끌리듯이 신청을 하고, 신청 후 2주 후 시작하는 필사의 공백기간동안 잊고 지낸 거예요. 밀려오는 우울 역시 거부할 수 없어서.






  2월 중순부터 매일 시를 쓰고 있어요. 질투심에 부들부들 떠는 손을 진정시키며, 도대체 무슨 놈의 시인은 뭘 먹길래 이런 시를 배설해내는 거지, 하며 겨우 써내려 가요. 이상한 일이에요.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마음은 부글부글, 손은 부들부들인데 어쩐지 나의 손끝에서는 단내가 나요. 시인의 마음, 시인이 시를 떠올린 순간을 저도 좀 훔쳐오는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기분이 좋았어요'라고 표현하기에는 표현이 너무 간단해서 좀 고민했는데, 이럴수록 간단한 표현이 맞는 것 같아요. 정말 기분이 좋았으니까요.) 아주 천천히, 시인의 마음 한쪽 끝을 잡아보는 기분도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시를 쓸 수밖에 없었구나.


  '평화가 린나이 보일러처럼 자알 작동하는 곳'(아버지, 옛집을 생각하며 中)이라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하아-' 하고는 잡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어요. 그런 구절은 쉬어 줘야 해요. 눈물이 나오려다 참으면 눈물이 다시 들어가는, 그런 기분을 고스란히 느껴야 해요. 아버지를 보낸 방을 바라보는 시인 앞에서 너무 쉽게 울면 안 되니까요.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청춘 中)라는 구절에서도 펜을 내려놓고, 지금의 내가 젊은 시절의 나와 악수를 한 번 해줘야 해요. '너무너무 이해하는 구절이어서 그냥 콱 젊은 나를 안아주고 싶을 때'라는 답시의 문장도 떠올려야 해요.


  시 필사 모임은 그냥 시를 베껴 쓰는 모임이 아니었어요. 일종의 재능기부 모임이었어요. 캘리그래피와 필사시 옆의 커피와 디저트 그림으로 눈의 힐링을 주었어요. 시를 아끼는 이들의 필체를 감상하고 나면, 시를 보고 난 후의 마음을 나누었어요. 시를 느끼는 절정은 시낭송이었어요. 각자의 방식과 감정을 그대로 담은, 시의 언어를 음성으로 변환한 낭송을 듣고 나면 내가 알던 시가 아닌 다른 시가 귓가에 맴돌았어요. 딱 하나, 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만 같고 시에 다가가는 방법들, 시가 주는 느낌을 공유하는 마음은 모두가 달랐어요. 그 곳에서 시는 시인의 산물이 아닌, 생명을 지닌 존재였어요. 시는 자신의 부분을 나에게 나누어주어, 그 생명을 받아 다시 살아날 수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시가 있었어요. '선생님'이라는 공식적인 장래희망 이전에 비공식적인 장래희망은 시인이었어요. 그러니까 제 첫 장래희망이 시인이었던 거예요. 문학동아리를 6년동안 한 것도 순전히 시 때문이었어요. 오랫동안 제 삶의 원동력이었던 기자도, 시인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아 글 언저리에서 살고 싶어서 정했던 꿈이었어요. 20대에도 날씨가 좋거나 기분이 좋을 땐 나도 모르게 고등학생 시절 외웠던 시가 뇌도 거치지 않고 입에서 튀어나왔어요. 본능같은 시였어요. 오도독에서 겨우 글을 쓰다가 내 안의 진짜 글쟁이를 불러 온 것도 '시를 써 보자'라는 선생님의 말이었어요. 브런치 '시인' 검색하다가알게 되었어요.

  마치 시가 내 인생을 이끌어온 것 같아요. 그렇게 이번에도, 역시나, 詩였어요. 시가 있는 한 저는 죽지도 못해요. 시를 마주하고 싶어서, 너무 살고 싶으니까요.



  그렇게 시를 베껴 쓰다가 문득 떠올랐어요.

나, 활자 곁에 있어도 되겠구나. 활자 곁에 있어야 하겠구나.


  열심히 열심히 활자와 최대한 멀리하며 지냈는데, 고작 몇몇 시구가 결국 내 글 쓰는 자아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이번에 맞은 링거에는 시만 가득했어요. 다 수혈받은 것도 아닌데, 내 글 쓰는 자아의 얼굴에 다시 분홍빛이 돌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어요.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글 쓰는 진샤 모두를.













의도치 않으셨겠지만, 제 안의 글 쓰는 이에게 생명의 시를 쏟아부어주신 심보선 시인께, 이 글을 보실리는 없으시겠지만 그래도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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