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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14. 2021

시(詩)를 나누다, 마음(心)을 나누다

시를 써야 하는 때

  폰을 뒤적거려 보니, 2020년 6월 4일이더군요. 밤 11시 14분. 이 시가 제게 온 시간이에요. 그래요, 시는 떠오르나 짓는 것이 아니에요, 적어도 저 에게는요. 시는 참 불친절하게, 불쑥, 문득, 돌연, 찰나에 다가와요. 차분히 걸어오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얼굴을 들이밉니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요. 기회가 되어 폰이나 펜으로 적어 두면 제 시가 되고, 기회가 되지 못해 붙잡지 못하면 한 순간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를 쓰지 않아요. 그냥 시를 받아 적어요.

  이 시도 그랬어요. 아이를 재우는 데 머릿속에서 빠른 타자기가 타타타 타타타 타타 쳐내는 겁니다. 빨리 받아 적어, 내가 휘발되기 전에. 아이는 잠들지 않았어요. 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잡았습니다. 아이가 잠이 들자마자 폰을 들어 휘갈겼어요. 일단 저장.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오타 몇 개만 고쳤습니다. 그렇게 쓰인 시예요.


  아이가 잠들지 못한 무수한 새벽 창 밖에서 들려오던 정체모를 소리들, 저는 그것들을 이슬들의 원한 맺힌 소리라고 생각했어요. 마트 가는 길마다 건너는 다리에서 바라본 왜가리인지 백로인지, 그들이 날개 속에 숨긴 외로움이 나의 그 것보다 더 크게 느껴졌어요. 지금 이 시간도 세상을 떠날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들을 자주 떠올려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아플 때마다, 세상보다 더 아프게 느껴졌어요. 글을 모르던 시절부터 글이 일상을 가득 채운 시절까지, 나뭇가지에 내낸 걸려 있던 투명한 것들을 바라보았어요. 그것들이 갑자기 시의 얼굴로 나를 덮쳐버린 거예요! 그래서, 썼어요. 어떤 형체 없는 것들이 줄줄 흘러 내리는데, 나는 그저 그릇을 갖다 댔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나는 시의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나는 그렇게 시의 도구로 태어난 존재였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썼어요.






  시필사방에서 자작시를 공개하는 시간이었어요. 시는 늘 부끄러움을 동반해요. (윤가의 아름다운 청년은 늘 그 것을 한탄하며 시를 썼지요) 부끄러움을 밀쳐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그래도 시를 드러냈어요. 내가 쓴 시가 아닌 시였지만, 부끄럽게도 내 이름으로 내밀었어요. 바야흐로 시는, 저를 떠났어요. 시를 아끼는 이들이 각자 그들의 방식대로 시를 다시 살려 주었어요. 나는 시의 도구일 뿐, 시에 호흡을 불어넣고 옷을 입히고 단장을 해준 건 그들이었어요. 시는 필사가 되었다가 캘리가 되었다가 낭송이 되었어요. 그들의 손에서, 그들의 목소리에서, 한 때 제 것이었다고 착각한 시가 환생했어요. 주인을 잘 만난 시는 훨훨 날아올랐어요. 순간, 1년 가까이 내 폰의 어둠 뒤쪽에 매장되어 있던 시에게 미안했어요. 제대로 된 도구를 만나지 못해 침묵의 확성기로 울부짖던 시에게, 밤을 밝혀 글로 용서를 구하는 까닭이에요.





 

베로니카 님께 감사를
낭송과 필사, 캘리로 시를 아껴 주신 sunflower 님께 감사를
작은연두 님께 감사를

https://brunch.co.kr/@futurewave/1147

공심님의 브런치, 시필사 22기 홍보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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