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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Oct 29. 2022

사연 일지

  곤란했다. 이제 한겨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데, 날이 생각보다 따듯하다 싶더니 여름처럼 소나기가 내릴 줄이야. 우산도 가방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지금. 왜 급한 상황일수록 세상 일이 이토록 꼬이기 시작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저기요.”

  답답한 상황에 한탄하며 빗속으로 뛰어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비슷한 나와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괜찮으시면 이거 쓰세요.”

  그는 그 말과 함께 자기가 들고 있던 우산을 내게 건넸다. 갑작스러운 호의에 나는 당황하며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그런 나를 만류했다.

  “아, 저는 괜찮으니까 쓰셔도 돼요.”

  그러면서 가방 안에 짧게 접혀 있는 또 하나의 우산을 가리켰다. 여분의 우산을 내게 준 것일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그가 건네드린 우산은 이제 쓸 일이 없어서요, 하고 덧붙였다.

  그 순간, 우산을 받아 든 손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서늘하고, 끈적한. 보이지 않는 늪에 손을 집어 넣은 기분.

  아, 그래. 그럼 그렇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방금 받아 든 우산에는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도 꽤 깊은 걸로.

  정말, 왜 하필 이면 이럴 때에. 나는 다시 한번 세상을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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