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란했다. 이제 한겨울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데, 날이 생각보다 따듯하다 싶더니 여름처럼 소나기가 내릴 줄이야. 우산도 가방도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지금. 왜 급한 상황일수록 세상 일이 이토록 꼬이기 시작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저기요.”
답답한 상황에 한탄하며 빗속으로 뛰어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비슷한 나와 나이로 보이는 남자가 있었다.
“괜찮으시면 이거 쓰세요.”
그는 그 말과 함께 자기가 들고 있던 우산을 내게 건넸다. 갑작스러운 호의에 나는 당황하며 거절하려 했지만, 그는 그런 나를 만류했다.
“아, 저는 괜찮으니까 쓰셔도 돼요.”
그러면서 가방 안에 짧게 접혀 있는 또 하나의 우산을 가리켰다. 여분의 우산을 내게 준 것일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그가 건네드린 우산은 이제 쓸 일이 없어서요, 하고 덧붙였다.
그 순간, 우산을 받아 든 손에서 확실히 느껴졌다. 서늘하고, 끈적한. 보이지 않는 늪에 손을 집어 넣은 기분.
아, 그래. 그럼 그렇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방금 받아 든 우산에는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도 꽤 깊은 걸로.
정말, 왜 하필 이면 이럴 때에. 나는 다시 한번 세상을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