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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Punch Capital Mar 24. 2023

트레이더

주변 사람들에게 직업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개발자일 때는 무슨 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금방 설명이 끝났는데, 전업 투자자라고 답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트레이딩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TMI라서 그냥 개인사업이라고 덧붙이고 만다. 특히 부모님은 자식이 고정 수입이 없다는 점에 대해 우려하신다. 부모님 세대는 60대에 정년퇴직하는 게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자식이 40대에 은퇴하고 알 수 없는 “투자”를 하는 게 못마땅하신 모양이다.


트레이더를 표면적으로 보면 그냥 백수 같아 보인다. 집에서 몇 시간씩 주식 차트만 보고 있고, 출근도 안 하고, 월급도 없고. 누가 봐도 빈둥빈둥 노는 백수로 보인다. 젊은 나이에 열심히 일을 안 하고 놀고 있으니 일반적인 사회 통념으로 볼 때 그저 한심한 놈이다. 하지만 트레이더의 속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겪고 있다. 그리고 그 내적 갈등에 승리한 대가로 돈을 번다.


트레이더의 내적 갈등은 무엇인가? 인간 본성과의 싸움이다. 인간은 본래 만물을 선형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생명의 진화, 문명의 발전, 개인의 성장 등 모든 것을 설명할 때, 우리는 만물이 선형적으로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거시적으로는 이런 시각이 맞을 수 있지만 미시적으로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 인생을 작은 단위로 쪼개서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도 선형적이지 않다. 시장은 변동성이 더욱 심하다. 예컨대, 미 연방은행의 기준금리 발표 전후로 시장은 매번 난리통이다. 그리고 그 변동성이 트레이더를 끊임없이 시험한다.


트레이더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와 싸우는 사람이다. 그 감정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 수익을 얻고 패배하면 손실을 입는다. 이 내적 갈등은 돈과 연관될 때 극단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돈의 액수가 클수록 감정의 롤러코스터도 심해진다. 보통 트레이더가 자신의 "그릇"이라고 표현하는 변동성의 한계점이 있다. 변동성이 어느 선 이상이 되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트레이더는 예민해진다. 그래서 특정 액수 이상은 배팅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트레이더로서의 성장은 이런 그릇을 키우는 과정이다. 1억 원의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는 트레이더보다 10억 원의 변동성을 감내할 수 있는 트레이더가 10배 더 큰 수익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고통 또한 10배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업 트레이더로 생활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그릇을 키울 수밖에 없다. 개발자로 받던 연봉을 트레이딩 수입으로 대체하려면 최소한 수억 원의 수익을 실현해야 하는데, 단돈 1억 원을 배팅하고 그런 고수익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럼 굳이 트레이딩을 왜 하는가? 트레이딩이 어렵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어려우니까 더 재밌는 것이다. 매일매일 회사에 출근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트레이딩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는 건 아무나 못한다. 아무나 못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가 목숨을 걸고 요세미티 암벽을 기어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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