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부터 시작된 AI발 나스닥 랠리와 대조적으로 크립토 시장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오히려 SEC가 대표적인 크립토 거래소인 코인베이스(Coinbase)와 바이낸스(Binance)를 연이어 고소하면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모든 크립토 자산 가격이 대폭 하락했다. 6월 14일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심리적 지지선으로 인식되던 $25k 이하까지 내려가면서 시장에는 크립토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밤은 동트기 직전에 가장 어두운 법이다. 6월 15일 갑자기 세계 최대의 투자 운용사 블랙락(BlackRock)에서 비트코인 ETF를 신청했다는 뉴스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6월 19일에는 피델리티(Fidelity)도 비트코인 ETF를 신청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연이어 나왔다. 표면적으로 보면 미국 정부는 크립토를 금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블랙락과 피델리티 같은 월가의 대형 은행들은 무슨 생각으로 이 시점에 비트코인 ETF를 신청하는 것일까?
만일 SEC가 블랙락의 비트코인 ETF 신청을 승인한다면, 이는 굉장한 의미를 지난다. 음모론적인 시각일 수도 있지만, 미국 정부는 월가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미국 정부의 진짜 의도는 크립토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크립토를 월가의 대형 은행들의 통제하에 두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크립토가 처음에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 저항하면서 탄생했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 통합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과거 금이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 통합된 과정과 흡사하다. 2004년 GLD ETF가 처음 생겼는데, 그 이유는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물리적으로 금을 소유하지 않고도 금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월가의 대형 은행들은 GLD라는 “종이” 금을 발행해 공급을 늘림으로써 금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 금이 이런 통제를 받게 된 이유는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가치저장소로서 미국 달러의 지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3년 비트코인은 과거 금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미국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무분별한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은 몇 년째 지속되고 있고, 중국의 부상으로 국채를 더 이상 이웃 나라들에게 강매할 수 없게 된 미국 정부의 화폐인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힘을 점점 잃고 있다. 그 와중에 비트코인은 2009년 탄생한 이후 그 시장가치가 꾸준히 상승해 $500B을 넘었다. 이 시점에서 미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다. 다른 크립토 코인은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SEC가 금지할 수 있지만, 최초 발행인이 존재하지 않는 비트코인은 금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비트코인을 금처럼 월가의 대형 은행들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비트코인이 기존 금융 시스템으로 통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4년 GLD ETF가 론칭한 시점부터 금값의 추이를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해 볼 수 있다. 몇 년간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비트코인을 매집하면서 가격 상승을 유발할 것이고, 시장의 수급이 어느 정도 균형을 찾으면 가격이 안정될 것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금과 달리 공급이 한정되어 있다. 과연 얼마의 가격에 시장의 수급이 균형을 찾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