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이 죽어가고 있었다.
시술 다음 날 열이 나기 시작했다. 기본 체온이 38도를 유지했고 최저 온도가 37.3도를 기록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아침 밥은 커녕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세트아미노펜을 수시로 맞았지만 열이 떨어질 기미가 안보였다. 통증은 여전했고 그저 자리에 누워 고통을 참아낼 수 밖에 없었다.
오후 회진 때 이 상황에 대해 교수님께 여쭤보니, 코일색전술을 했으나 예고했던 대로 자리가 안좋아 비장으로 가는 주 동맥을 막을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따라서, 내 생황은 비장이 죽어가며 염증 물질을 내뿜고 있기에 열이 나는 것이라고 했다. 통증은 대부분 하루 이틀이면 사라진다고 하기에, 내심 안도했다.(그런데 통증은 일주일이 넘게 지속됐다)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혈관을 통해 혈액이 공급되는지 다시 찍어볼 예정이라고 했다. 결국 일단은 고통과 열을 참아내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나 더 기억나는 건 배에 가스가 차는데, 변이나 가스가 안나와서 너무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배에 힘을 주지 못하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저녁 인터벤션실에 가서 다시 시술결과를 확인했는데, 시술 의사가 잘 되었다며 올라가라고 했다. 내심 퇴원을 바랐으나, 높은 염증수치로 퇴원은 할 수 없었고 직장에 이 사실을 알리고 휴가를 연장했다. 나머지 병원의 일상은 별게 없었다. 채혈, X-ray, 체중체크로 시작된 일 그리고 사일째부터인가 먹었던 밥, 오일째부터 화장실에서 변을 볼 수 있었다는 것, 병동 주변 산책이 전부였다. 10일쯤 지나니 당시 내 몸무게의 10%가 빠졌다. 비장에 있던 혈액은 인체의 15%의 피를 저장한다는데, 이게 빠진게 아닐까? 하루이틀만에 빠져버려서 아침 체중 잴 때 간호사가 여러번 왔다 갔다 시켰던 기억이 있다.(하루에 2~3kg씩 빠졌음.)
시일이 지나니, 일상 중 제일 고통스러웠던 것은 소위 라인이라고 주사를 맞을 때였다. 혈관에 주사를 꼽아놓으면 최대 사용 할 수 있는 기한이 3일 정도인데, 난 혈관이 약해 이틀정도 밖에 안됐다. 더군다나 막히거나 넣을 때 터지기 일수였고 숨겨져 있었으며, 심지어 작고 움직이기까지 했다. 쉽게 말해 혈관이 약한 연로한 노인과 같은 상태였다. 비장이 죽어가며 혈액이 줄어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운동을 안해서일까? 여하튼, 덕분에 간호사님들이 항상 곤란해했다. 병동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분이 와서 해주시곤 했는데, 가끔은 몇번 찌르더니 있던 혈관이라도 살리고자 응급실 간호사 선생님을 부르곤 했다.(응급실 간호사 선생님은 어떤 혈관이든 한번에 성공)특히 나는 열이 나니 당직의 선생님들이 저녁에도 채혈을 요구했는데, 이게 참 곤욕이었다. 채혈은 감염 방지를 위해 해당 과 의사가 직접 와서 해주곤 했는데, 채혈 솜씨가 형편 없었다. 팔, 팔목, 이두 근처를 다섯번정도 찌르고 터트렸을까? 결국, 보다못한 병동 간호사 선생님에 의해 발목에 주사를 놨다. 나에게 있어 혈관과 주사에 대한 기억은 병동 생활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