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그리고 퇴원 후
2022. 8. 31일 퇴원날이 다시 잡혔다. 퇴원일은 무려 3번이나 바뀌었기에 이번엔 제발이라는 기도로 밤을 보냈다. 8. 28일 염증수치는 4.8 백혈구 수치는 15000. 아직도 일반인의 4배가 넘는 수준의 염증수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기도가 통했는지 8.29 ~ 30일까지 염증수치가 일반인의 2배 수준으로 떨어져 퇴원 날짜가 나왔다.
퇴원일이 다가 올 수록 열은 거의 안 났으나 식은땀이 많이 났다. 몸에 기력이 없어진 느낌이랄까? 하긴, 혈액이 갑자기 15%나 줄었으니 당연한 이치랴. 어쨌든 퇴원 날 아침까지 채혈은 이어졌고 31일 아침 회진에 퇴원이 최종 결정됐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가족이 병원으로 출발했다. 나는 혼자 병실에서 짐을 싼 뒤, 인사 후 병동을 나섰다. 가족이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다시는 오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병원을 한 바퀴 돌았다. 한 달이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어느새 정들었나 보다. 그러던 중 가족은 도착했고 나와 함께 차로 이동했다.
차는 내가 입원했을 당시부터 30일까지 약 15일 정도를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본래 입원 예정은 3일이었기에 그냥 주차해 놓겠다는 의지가 몇 십만 원의 가격으로 돌아왔다. 나는 당황하여 주차 관리자분께 여쭙자 환자번호를 확인하더니 가격을 절반으로 줄여주셨다. 13만 원이었다. 뭐, 내가 놓고 오지 않았기에 나의 탓이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족에게 내가 느꼈던 많은 것들을 공유했다. 가족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 가족 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고맙다는 것. 결혼 후 생각보다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더 값진 퇴원길이 되었다.
나는 퇴원 후 다음날부터 직장으로 출근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은 아스피린을 꾸준히 먹는 것, 그리고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15일이나 비웠으니, 빨리 가서 해결하는 게 오히려 단명하지 않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이전의 삶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직장보다는 가족의 안위를 우선했다는 것이 바뀌었다. 빠른 퇴근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다. 집보다 직장이었던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내가 달라진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가족 말에 따르면 삶에 대해 좀 더 유연해졌다고 했다. 이전에는 부러질 수 없기에 악으로 버티는 사람 같았다면, 지금은 물 흘러가듯 잠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 말이다. 또한, 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혼자 고통 속에 방치되어 있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 "이대로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 "죽기 전에 못한 건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 "가족들 밖에 없다는 생각" 등 철학과 지식 지혜가 어우러진 생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들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창업을 준비한다던가, 글을 쓴다던가, 운동을 다시 시작한다던가,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던가, 책을 읽는 등의 행동들이 모두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
나는 나의 이 경험이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잠시 퇴보했지만 십보 전진할 수 있는 지혜를 깨우쳐줬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글 투병일지는 내가 비장동맥류에 대해 알아볼 때 자료를 많이 찾아볼 수 없었기에, 누군가에게 도움라도 될까 싶어 작성했다. 시술 후 1년이 지났지만 뭐 이리 쓸거리가 많은지, 투병 일지라도 글 쓰는 것이 참 쉽지 않다고 느꼈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쓸 날이 온다면, (오지 않아야 하겠지만) 좀 더 유연하고 감성적으로 써보리라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