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소다 Oct 05. 2023

말과 태도

경미한 접촉사고에서 배운 말과 태도의 중요성.

 며칠 전 강화도에 놀러 갔다. 옥토끼 우주 박물관에 가서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동막 해변으로 장소를 옮겨 놀고 있었다. 그러다 울리는 한 통의 전화. 모르는 번호가 찍혀있었다. 나는 모르는 전화를 되도록 안 받으려 하는데, 대부분 스팸이거나 손절한 사람의 전화를 받기 싫어서였다. 그러나, 이 전화는 왠지 받아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화 버튼을 눌러 받자, 상대방의 목소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OOOO 차주분 되시죠? 제가 주차하다가 살짝 긁었습니다. 한번 와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blah". 속으로 "아~ 이런.." 탄식과 함께 주차 장소로 가봤다. 가보니 50대쯤 되셨을까? 머리 옆라인에는 흰머리가 있는 아버지뻘 되시는 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분께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차 상태를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크롬휠, 가니쉬, 차량 뒷좌석 문짝에 흰색으로 선명하게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그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살짝 긁었어요 살짝, 흠집 방지제로 하면 티도 안 나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나는 지금 기쁜 마음으로 놀러 왔다가 짜증 나는 일을 겪고 있는데, 사과는커녕 티도 안 난다니. 멀리서 가족이 봐도 선명한 흠집 자국이 나있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그가 긁었다는 부분을 말하는데 크롬휠이 빠져있었다.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차를 샀을 땐, 애지 중지 세차 용품이며 유리막이며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블랙아이스에 미끄러진 사고로 차량 오른쪽 엉덩이 부분이 파손된 후 그 생각을 접었다. 문콕은 그냥 그러려니 했고 흠집은 당연한 걸로 여겼다. 언젠가 타인이 차량에 흠집을 낸다면 그냥 쿨하게 넘어가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살짝 긁었어요"라는 말에 나의 인류애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문제를 냉철히 생각했다. "어떻게 처리하실 건데요?"라는 말에 그의 대답은 "글쎄요 어떻게 처리해야 하죠?"라고 응수했다. "말 장난하자는 건가?" 생각이 들던 중 그분의 일행으로 보이는 분이 와서 보험처리를 하자고 했다. 알겠노라 하고 명함을 달라니 신분증을 찍어 가라더라고 말했다. "신분증을 사진으로 찍어가는 건 개인정보라 좀 그런데요"라고 말하니 괜찮단다. 내키진 않았지만 피해자인 내게 선택지는 없었고, 찍었다. 그렇게 사고에 대한 1막이 끝났다.


다음날까지 어떠한 사과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저 살짝 긁힌 정도의 사건이었을까. 솔직히 사건 다음날까지 그의 녹슬어 있는 차량을 생각하니 보험 처리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이런 고민을 가족에게 이야기를 해봤는데, 사과를 못 받았으니 그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사람처럼 대우받으려면 그 사람도 나에게 사과를 하고, 나이가 어려도 존중해 주는 것이 맞았다.


여하튼, 아쉬운 건 나였기에 연락이 없는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제 OOO차주입니다. 보험 접수 번호 알려주시면 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뒤 그에게 전화가 왔다. 필라테스 중이라 받진 못했고, 이후 내가 걸어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내게 "보험사에서 차주분 신상을 달라니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사진 찍어서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니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싶어 이렇게 대답했다. "보험사 접수하는데 신분증이 왜 필요해요? 전 개인에게 찍어서 보내는 건 안 해서요. 보험사를 저에게 직접 연결해 주세요." 이에 그가 대답했다. "번거롭게 왜 그렇게 하냐, 나도 신분증을 찍게 해 줬으니 상대방도 찍어서 보내줘야지 않냐. 똑같이 보내주는 게 맞지 않냐"라고 말했다. 그의 말엔 도통 이해 할 수 없는 말들로 가득했다.


나는 개인정보보호법을 교육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개인정보에 적시된 권한과 권리를 잘 알고 있다. 신분증을 촬영해서 보내달라는 그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개인정보보호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그렇게 안 해도 되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냥 생년월일이랑 이름 보내드리겠습니다. 보험사가 알아서 해줄 거예요." 이후 통화를 마쳤다.


전화를 끊고 나서 더 명확해졌다. 받을 만큼 다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보험사 접수번호가 나왔고 차를 수리하러 가려한다. 크롬휠은 일부분이 먹어 원상 복구하려면 교체해야 할 듯하고, 문짝도 내 권리에 있는 한에서 모두 받아내려고 한다. 그의 말과 태도는 나를 냉정한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민법에 명시되어 있는 원상복구에 대한 조항을 그대로 이행하려 한다. 


처음부터 사과를 받았다면, 이 이야기를 완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전화 통화에서도 그의 태도에서 변화가 있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났으리라. 하지만 그의 기회의 잔은 이미 엎질러져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이를 통해 교훈을 얻은 것도 나요, 보상을 받는 것도 내가 됐다. 내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값진 교훈을 얻은 값으로 등가교환 했다고 생각해야겠다. 세상에는 제 것대로 모두 받아내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상대방의 태도나 말에 따라 변화되는 일도 있다. 그만큼 말과 태도가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다. 나는 진정 다른 분을 만나 쿨하게 보내 줄 수 있는 상황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필라테스하는 남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