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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랜딩인가HR인가 Sep 09. 2019

성숙한 피드백 방법 : '솔직할 용기'에 대한 오해

<그래서, 인터널브랜딩 : 브랜딩스러운 조직문화 이야기>

색맹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가 색맹인 사람에게 특정 장미의 붉은 정도를 평가해 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피드백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은 제대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빨간색을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이때의 오류는 무작위가 아니다. 예측과 설명이 가능하며, 측정 체계의 오류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는 시스템적 오류다. 우리가 7명의 색맹 환자에게 장미의 붉은 정도를 평가해 보라고 한다면, 그들의 오류도 똑같이 시스템적일 것이다. 그들의 평가를 평균화한다고 해도 장미의 붉은 정도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 정확하지 않은 붉은 정도 평가(‘회색’ ‘매우 회색’ ‘흰색에 가까운 회색’ ‘탁한 갈색’)는 합산해서 평균을 낸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장미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이해하기 어렵고, 장미가 얼마나 붉은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인간이 진실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은 ‘감정’과 ‘경험’이다. 의사는 오랜 기간 경험을 통해 이를 잘 알고 있다. 회복실에서 자신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면서 “1에서 10점 척도에서 10점이 가장 높다고 하면, 고통의 정도가 몇 점인가?”라고 묻는다 치자. 만약 당신이 “5점”이라고 말하면, 모든 치료법을 동원해서 처방할 것이다. 하지만 ‘5점’이라는 점수를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횟수의 수술을 진행했든지 간에 “5점은 틀렸고 오늘 아침은 3점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5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5점’이 진짜 ‘5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다른 의사들과 평가 세션을 열어 나의 ‘5점’이 다른 환자들의 ‘5점’과 같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의사는 당신이 고통을 가장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보고, 수치가 낮을수록 건강 상태가 양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통지수에 대한 평가는 의사가 아닌 당신이 하는 것이다.




의사가 당신의 고통의 정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듯 우리가 동료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수의 직장인들이 자신의 현재 업무역량을 알고 싶어 한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서 이런 경향을 보인다. 팀원들은 종종 자신의 성과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요청할 것이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 경험, 반응을 공유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동료의 목소리가 거슬린다거나, 설득력이 있다거나, 프레젠테이션이 지루하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다. 그의 업무성과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우리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 말해 줄 수 있다. 이는 우리에 대한 평가지, 평가를 받는 사람에 대한 것은 아니다.



* 출처 : HRB [피드백이 멍들다], 2019 3-4월 호. 





요즘, 조직문화를 고민하고 있는 담당자라면

한 번쯤 '피드백'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구글이나 넷플릭스 같은 

소위 잘 나간다는 회사들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솔직함'이라던가 '극단적 투명성'이 화두가 되면서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용기'라던가 

'모두를 위한 단호함'같은 태도를

어떻게 하면 우리 조직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을까- 

와 같은 고민들을 하면서 

HR이나 조직문화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피드백을 주고받는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고)  

<그래서, 인터널브랜딩>을 쓰면서

고민과 생각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었다. 



#피드백을 위한 성숙도 높은 상태란?



<그래서, 인터널브랜딩> 中 에서





#피드백, 직원들의 성숙도 제고가 먼저냐, 방법 개선이 먼저냐





앞서 인용한 HBR의 아티클을 읽으면서

'성숙한 피드백'의 방법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출처 : HBR, [피드백이 멍들다]. 2019 3-4월 호






성숙한 피드백은 

'당신'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나'를 이야기한다. 


피드백은 분명 타인에게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타인을 이야기하지 않고 나를 이야기한다니?!



손가락의 방향이

타인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런 부분이 부족하고

당신은 현재 이런 역량이 부족하니 

이런 것들을 보완하고 채우세요-'



라고 하기보다는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었는데,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어.' 



와 같이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본 

다소 주관적인 생각과 관점을 제시한다. 

답은 늘 각자에게만 있는 법이므로. 



성숙한 피드백은

'수준'을 이야기하기보다는

'경험'을 이야기한다. 


'당신은 현재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다소 부족합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도 2.5포인트 정도 차이가 나네요'



피드백 진단에서 나타나는 수치 Index를 활용해서

위와 같이 피드백에 활용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다. 



아티클에서 지적한대로, 

어떠한 평가를 평균화 한다고 해도, 

'장미의 붉은 정도'를 제대로 나타낼 수는 없다.

그리고 5점을 주었다 해도 모두가 동일한 5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점수의 수준과 내용은 제각각인데다가, 

보통, 조직 안에서 한 사람을 평가하는 대상 집단의 특성과 인원이 모두 다르므로 

숫자 자체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경험과 감정을 이야기해주고

나와 비교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에 대한 생각을 말해줄 수 있다. 



상대방의 수준을 수치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경험과 나의 수준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나에 대한 평가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숙한 피드백은

'점'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선'과 '면'을 이야기한다. 



점은 지나간 과거의 선택이자 사건이다.  

이미 엎질러져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선택과 사건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컨트롤 할 수 없는 것이 점이다. 



과거의 선택과 사건인 점은

지금 현재의 생각과 행동에 분명 많은 영향을 끼치기에 

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으나

점'만' 이야기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그 선이 모여 면이 되기 때문이다. 



선은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이자 방향이다. 

지나온 점들이 궤적을 이루어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된 것이 바로 선이다. 



'내가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현재의 길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더 나은 방향을 위해 현재 내게는 어떤 선택들이 있는지'



'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선과 선을 연결하면 '교점'이 생긴다.

인생에서 다양한 교점이 생길수록

우리의 선택은 더 다양해지고 

깊이 있는 통찰을 가지게 된다. 



면은 미래의 선택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관(觀)이다. 



과거의 점과 선이 다양하게 교차하고 

반복적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모양을 만들고

그 모양이 점점 더 선명하고 명확해진다. 



그래서 면(面)이 되면

특정한 범주 안에서의 선택이 이루어진다. 

면은 나의 선택의 범위를 결정하는 세계관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선택과 행동, 

그리고 앞으로 남은 선택들은 모두 

특정한 프레임 안에 존재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우물 안에서 우물 입구의 크기 만큼 동그란 하늘을 바라보며

그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한다. 



좋은 피드백은

상대방의 '관'을 확장시켜준다. 

즉, 가보지 못한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면'을 보여준다.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다. 



한 개인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관으로 들어가는 여정은  

듣는 것이 아니라, 

오직 '경험'만을 통해 가능하다. 





의도가 불분명한 사람이 현 상황을 진단하고, ‘실제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고,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반면 자신을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이 경험을 공유하고, 느낌을 말하고, 잘하는 부분에 대해 말해 주게 되면,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게 된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은

그 사람을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이어야 한다.



<솔직할 용기>

<극단적 투명성> 

이러한 가치가 왜곡되거나, 잘못 사용되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하게 된다.



"나는 널 위해 이렇게 솔직하게 피드백을 주는데,
넌 왜 이 말을 수용하는 겸손한 용기가 없는 거야?



라는 말에는

솔직함은 있을지 모르지만, 

존중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중이 없는 솔직함을 무례함이라 부른다. 



성숙한 피드백은 무례하지 않다.

좋은 피드백은  반드시 상대방의 '들을 준비'를 고려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 



상대방의 성숙한 변화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성숙되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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