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난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는 early adaptor였다. 삼성에서 처음 나온 폴더폰도 출시되자마자 동서울터미널 전자상가에 가서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
1990년대 초부터 컴퓨터와 이런 디지털 기기가 세상을 바꿀 시동이 걸린 시대였다.
지금은 누구라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 것이다. 잠에 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의 작은 창문이 전부의 세상인양 그곳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듯 디지털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였고 그것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무던히 노력하고 그 흐름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했다.
이제는 지갑에 현금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고 집에서 컴퓨터나 태블릿,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 세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보다 (나 역시 몇 년 더 지나면 60이 된다.) 아날로그에 익숙하신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편한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디지털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한다는 까다롭고 힘든 시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잘 적응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또한 어떨 땐 금액이 찍힌 종이 통장이 더 좋고 눈으로 손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할 때가 있다. 플라스틱카드를 사용하다 보면 금액의 크기에 많이 둔감해지는 경우를 가끔 느끼곤 했다.
그리고 자판을 두드리는 경우가 대부분 이기 때문에 손글씨를 쓰는 것이 어색하고 글씨체가 망가져 버린 것 같은 현실에 슬퍼지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기억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스마트폰에만 의존하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있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또한 톡이나, 대화 앱을 이용해서 서로 대화하다 보니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거나 담겨 있는 감정을 느끼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얇은 화면이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을 방어하고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문자를 많이 하면, 톡을 많이 하면 서로 더 생각하고 이해한다는 착각에 우린 빠져 있는 것이다. “디지털 사이버 가스라이팅”에 우린 스스로 모르고 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감정은 더욱 무디어지고 참고 인내하는 마음은 점점 고갈되어 가는 듯하다. '빨리빨리'가 아닌 '전광석화'의 결과가 나와야 하고 답이 와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로 느긋하게 바라봐야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생기는 것은 삶의 진리인 듯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이해의 폭'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의 즉각적인 삶의 굴레 속에서 그 폭이 너무 얕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등 돌려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혼자만의 섬에 갇힌 우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