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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미 Nov 06. 2020

동물원의 불편한 진실

화조원에 다녀와서 

제주에 온 지 3일째다. 어젯밤에 애월 근처의 장소들을 여기저기 검색하다가 '화조원'이라는 데를 알게 되었다. 이름을 들으니 꽃과 새가 있는 곳인가 보다. 여러 동물들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는 후기를 읽고서 오늘은 여길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을 먹고 서둘러 택시를 타고 화조원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알파카가 우릴 반겼다. 알파카를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정말 거침없이 다가왔다. 울타리가 없이 그냥 풀어놓은 걸 보니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는 모양인데, 코앞까지 들이대는 알파카를 보고서 나는 자꾸만 뒷걸음이 쳐졌다. 무서웠다. 왜 자꾸 따라오나 했더니 내 손에 든 먹이를 먹고 싶어서였다. 매표를 하면 1인당 1개의 먹이 접시를 나누어주는데, 접시를 들고만 있으면 알파카들이 알아서 와서 접시에 든 풀을 와그작 맛있게 먹고는 볼일 다 봤다는 듯이 또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이들에게는 이게 일상이겠지. 


화조원이라는 이름답게 여기는 올빼미, 부엉이부터 매, 비둘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새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앵무새였다. 실내 조류관에는 색깔도, 크기도 다양한 앵무새들이 한데 모여 귀가 따갑도록 빽빽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랑앵무라는 새가 모여 있는 장소가 따로 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새들이 나무 위에 앉았다 공중으로 날았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현란한 색상의 작은 앵무새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이에게는 너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겁도 없이 앵무새 뒤를 막 쫓아다니기도 하고 앵무새가 손 위에 앉아도 피할 생각도 없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곤 했다. 정작 나는 앵무새가 어깨에라도 앉을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어렸을 때는 지금의 내 아이처럼 저렇게 아무에게나 쉽게 다가가고 손 내밀 줄 아는 아이였을까? 크면서 아는 게 많아지고 경험이 쌓이며 이렇게 겁이 많아진 걸까. 


세 시간이 훌쩍 지나 화조원을 떠났다. 아이는 눈 앞의 동물들이 신기했는지 아까 본 동물들을 또 보고도 처음 만난 듯이 신기해하며 연신 웃었다. 오리와 토끼 먹이주기 체험은 두 번씩이나 하고, 연못에 사는 비단잉어 먹이까지 주고 나서야 발길을 돌렸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더 있다 가자고 졸랐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오늘의 동물원 관람이 어떻게 기억될까?


아이에게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게 해 주었고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으므로 오늘의 목표는 달성한 듯 보였다. 그러나 사실 세 시간 동안 나는 마음이 불편한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날고 싶어 파다닥거리는 매가 발에 묶인 줄 때문에 날지 못하는 걸 봤다. 타조 두 마리가 너무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것도 보았다. 그 좁디좁은 공간에서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잠도 잘 것이다. 보기만 해도 답답해보이는 그 감옥같은 공간에서. 날개가 참 멋졌던 해오라기가 실내 조류관 안에서 잠시 날개짓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것이 밖으로 나 좀 꺼내달라는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그들이 원래 그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편의와 즐거움을 위해서 가두어 놓고 먹이를 주고 기르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게 될 즈음에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아이에게 동물을 보여주고 싶어 이 곳에 왔고 내가 구입한 입장권으로 그 값어치만큼 아이와 함께 즐거움을 누렸으면서 동물의 존엄성과 인간의 잔인함을 논하는 내가 모순적임을 안다. 그러므로 나는 혼란스럽다. 


동물과 사람의 이야기를 즐겨 쓰는 고혜진 작가의 <어느 여름날>에서는 동물원에 방문한 어떤 여자 아이가 북극곰을 보고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북극곰은 북극에 살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여기 살아요?" 우리 아이가 커서 이 질문을 내게 한다면 나는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오랫동안 고민한 적이 있다. "응, 사람들이 보려고 동물원에 데리고 왔지. 우린 돈을 냈으니까 그냥 재밌게 구경하면 돼." 이렇게 대답할 어른이 될 것인가. 적어도, 사람들이 동물에게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인지, 그래서 동물들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인지, 동물과 사람이 함께 잘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이야기해 주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무언가 '불편하다'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인식의 변화와 더 나아가서는 행동의 변화를 아우른다. 이제 에버랜드에서는 더 이상 돌고래 쇼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돌고래 쇼를 위해 가두어두고 조련을 시켰을 때는 새끼도 낳지 않고 온종일 멍하게 있던 돌고래들이, 그들을 제주 앞바다에 풀어주었더니 자유롭게 바다를 노닐고 새끼도 낳고 행복하게 살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뇌과학자 신성욱 님은 아이에게 돌고래를 보여주고 싶거든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보여주라고 말한다. 동물원이 단순히 입장료 18,000원만큼의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동물들의 삶과 존엄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동물원을 하루아침에 해체하고 그 안의 동물들을 모두 풀어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절대 그렇게 되지도 않겠지만, 적어도 인간이 하는 모든 것이 동물들을 덜 다치게 하고 덜 상처받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들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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