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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Apr 08. 2020

잠 못 드는 밤, 비도 안 오고

지금은 새벽시간, 원래 늦은 밤까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이 안식이고 휴식이다.

오전 내 늦게까지 자는 것이 어떨 때는 후회스럽다가도 집중해서 책 읽는 시간이 근원적인 쉼임을 아는 나로서는 이 생활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잠이 안 온다.'는 것에 대해 느끼면서 살고 있지는 않다. 어떤 날은 정말 잠이 안 오기도 한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 한다든가, 그 일찍에서 벗어나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든가, 진실로 마음에 걱정 근심이 있다든가 하는 날은 나도 예외 없이 ' 잠이 안 와.'가 생기지만 어지간한 날은 누우면 바로 잠이 드는 타입이다.

어떤 날은 남편이 '정말 누운 지 1분 만에 잠들었다.' 고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가끔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는 날엔 '엄마, 벌써 잠든 거야?'를 몇 번씩 듣는다. 30초 정도 내가 별 말이 없으면 바로 잠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잘 자는 편이다.


오늘은 서평 쓸 게 많았다. 책 리뷰는 주로 개인 블로그에 독서카페에 쓰거나 인스타그램을 활용 한다. 오늘은 [징비록]을 다 읽어서 서애 대감의 비통함을 서평에 가득 담아 인터넷 카페에 남기려고 접속했다.

시간은 오전 2시 30분.


사진은 내 휴대폰 속 카페 어플 메인사진이다. 맨 위에 있는 카페는 독서카페이고, 두 번째 세 번째 카페는 모두 맘 카페이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두 도시의 카페에 모두 가입돼 있는 것인데 정말 누가 시킨 것처럼 잠이 안 온다는 게시글이 두 카페 모두 공통으로 존재했다.

그것도 1, 2분 전에 말이다.

신기해서 캡처했다. 생각해보니 신기할 것도 없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불면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밤은 길고 모두의 공간은 저마다 다르게 흘러가는 법이다.



이 문자는 어제 아침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문자다. 밤새 한시간밖에 자지 못했다는 걱정스러운 말이 담겨있었다. 아침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데 밤새 한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니 그런 곤욕이 어디 있을까.


수면제가 있어야 잠들 수 있다니 너무 복잡한 밤이 아닐 수 없다. 이런저런 생각이 뒤엉키거나 때론 정신적 피폐함에 뒤척이다가 지새고 마는 긴긴 밤이라니. 설핏 든 잠은 기상과 동시에 엄청나게 밀려드는 두통을 낳고 눈도 잘 못 뜨고 더듬더듬 두통약을 찾아야만 한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은 잠은 오히려 피로를 가져오지만 적당한 수면은 질 좋은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좋아서 잠을 늦게 자는 데도 아침에 일어나려면 피로함에 눈이 뻑뻑하고 오후쯤이면 두통이 밀려올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닌데 자고 싶어도 못 자는 그 심정은 어떨까.


" 그래, 다시 밤이었다. 그렇다면 잠을 자야만 할 텐데, 무조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며칠 밤 동안 잠을 잘 수 있다면, 어쩌면 여섯 시간 내지 여덟 시간 동안만 제대로 잔다면 원기를 회복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화끈거리는 눈도 진정되고, 인내심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고, 가슴도 더 편해지고, 관자놀이의 통증도 누그러들 텐데. "

                                                                      헤르만 헤세 ,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중에서


이 구절을 오전 메신저의 주인에게 보내주었다. "어? 이거 나네."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웃어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수면제는 누구나 알다시피 처방전이 없이는 살 수 없다. 과다 복용하면 죽음에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많이 먹지 않더라도 장기간 복용하면 당연히 부작용을 일으킨다. 지나친 의존은 없이는 아예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내가 최초에 가진 나의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일인지 아는 나로서는 지인에게 절대로 수면제를 추천할 수가 없다. 본인도 아마 알 것이다.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사람이 잠을 잔다는 것은 굉장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충전시킨 만큼의 에너지가 떨어지면 꺼져버리는 휴대용 기기처럼 인간도 꺼져버릴 수 있기 때문에 잠으로 충전해야 한다. 그런데 내 지인은 오늘도, 그리고 맘 카페는 오늘도 잠을 선물 받지 못해 고통 중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충전단자가 자꾸만 깜박인다. 잘 안 꽂혔다고 경고하고 있다. 내일 쓸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얼마 안 가 바닥나겠다고 말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더 늦었다. 사실 나도 자야 하는데 화면을 보는 순간 글을 쓰고 싶어져서 잠을 미루고 있다. 솔직히 지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나도 잠을 자지 못한다. 어느 날인가부터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깝다. 그 시간에 한 글자라도 더 읽고 싶고, 한 글자라도 더 쓰고 싶다. 아이들은 나를 책 중독이라고 부른다.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이렇게 읽는 것이 과연 생산적인 걸까 자문하기도 한다. 아무튼 자는 시간이 아까워 정신없이 읽는다. 입안에 가시가 돋치긴 한다. 잠을 못 자니 입병은 한 달에 20일을 달고 산다. 못 말리는 책 사랑이다.

어쩌면 내가 머리만 닿으면 잠드는 이유는 졸릴 때까지 책을 읽기 때문이다. '아, 더 읽고 싶은데, 아, 여기까진 읽고 자고 싶은데.' 싶어서 몇 번씩 졸려 떨어지는 고개를 세우고 머리를 흔들고 다시 글에 집중한 적도 여러 날이다. 내 몸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너 나 좀 자라. 너도 좀 자라. 나 좀 재워다오.'


자러 가야겠다. 그리고 고마워해야겠다. 수면제 생각을 안 해도 되는 이 밤에 대하여. 내 몸에 대한 죄책감은 있지만 그나마 늦게까지 자도 되는 아침에 대하여. 아이들의 개학이 무기한 미뤄지면서 이렇게 늦은 밤이 내게 허락돼 있지만 그렇게 염원하던 개학이 당도했을 때 일찍 일어나야 되는 것에 불평하지 않도록, 일찍 일어나야 하는 강박에 차라리 나도 수면제를 먹어볼까 생각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습관을 들여야겠다.

맘 카페에 내가 ' 잠이 안 와요, 어떻게 하죠?'를 쓰지 않도록.


오늘 밤 기도제목은 잠 못 드는 모든 엄마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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