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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 May 18. 2018

할머니의 바퀴

나의 두 사람 



몇 년 전부터 할머니는 이동의자에 앉아 조금씩 움직인다. 허리에 힘을 주고 바닥을 밀면 의자에 달린 작은 바퀴가 구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할머니의 앉은키는 딱 내 허리 밑까지 온다. 할머니의 생활은 남들보다 반쯤 낮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할머니는 언제나 다른 무언가의 도움을 받아 움직였다. 가끔은 휠체어 바퀴를 굴렸고, 대개는 목발에 의지했다. 그래서 함께 살 땐 탁, 탁 하는 목발 소리로 할머니의 기척을 알아챘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할머니는 자신의 몸집만 한 사륜 오토바이를 운전했다. 커다란 타이어 바퀴는 그동안 할머니가 의지한 것 중 가장 튼튼했고, 할머니의 활동 반경을 자유롭게 넓혀 주었다. 할머니는 그 오토바이를 타고 오일장에 나가 찬거리를 사 왔고 가끔 내가 막차를 놓치면 면 중심지에 있는 학교로 나를 데리러 왔다.     


늦은 저녁 오토바이 뒤에 올라타 집으로 가는 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이 산과 논밭뿐이어서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만 어둠 속에서 빛났다. 산동네는 너무 깜깜해서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있으니까 덜 무서웠다. 지금 할머니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잠깐 꾼 꿈이었나 싶은 옛이야기.     


이제 목발로도 걷기 힘들어진 할머니는 의자의 바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 그때 그 오토바이보다 훨씬 작은 바퀴가 달린 낮고 낡은 의자로는 아무리 멀리 나아간다 해도 거실의 끝이다.      


창으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 

할머니가 보는 세상의 전부가 되어 간다.

자꾸만 좁아지는 삶의 넓이.     


그 안에서 바닥을 쓸고 할아버지 약을 챙기고 상차림을 거들고 자식들에게 전화를 거는 당신의 뒷모습을 본다.

부지런히 바퀴가 구른다.





오랫동안 할머니가 써 온 이동의자
최근 할아버지가 새로 만든 이동의자.아래 손잡이는 문턱을 넘을 때 의자를 들었다 놓을 수 있도록 잡는 용도이다.할아버지는 목발도 할머니의 몸에 맞게 직접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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