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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 Jun 22. 2018

나의 방들

나의 두 사람



스물셋.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자취의 삶이 시작됐다. 4년간 생활했던 학교 기숙사와 달리 자취방은 보증금이 필요했고, 함께 살기로 한 친구와 어찌어찌 200만 원을 모았다. 그 친구와 내 형편을 고려해 낼 수 있는 월세는 20만 원대. 복층에 살고 싶다, 창이 넓었으면 좋겠다, 세탁기가 드럼세탁기였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바람은 500만 원이 넘는 보증금과 비싼 월세 앞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발품을 팔아 이곳저곳 보러 다녔지만 우리 형편엔 학교 앞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학교 근처의 방은 대부분 다세대주택에 월세방을 놓는 원룸 형태였다. 가장 환경이 좋은 1층 안채는 주인이 살고 있거나 전세방으로 쓰이고 있어서 우리는 주택의 측면이나 뒷면에 위치한 방들 중 최선을 선택해야 했다. 결국 우리가 결정한 방은 건물 뒤편으로 연결되는 긴 통로를 걸어가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다시 건물을 반 바퀴 돌아 가장 안쪽에 있는 201호였다. 그때의 우리는 주거환경이 삶에 미치는 영향 같은 건 고려해 볼 틈이 없었다. 처음 자취방을 고르는 경험 부족 탓도 있었고, 보증금과 월세 금액에 따라 우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아주 좁은 범위 안에서 정해져 있기도 했다.     


결정을 몰아붙이는 주인과 얼떨결에 계약을 하고 며칠 뒤 우리는 그 방에 짐을 풀었다. 이부자리를 깔고 썰렁한 벽에 함께 찍은 사진 몇 장을 테이프로 붙이면서, 여기가 우리 방이구나 생각했다.     


가스레인지와 이부자리와 욕실이 세 걸음 안에 다 들어오던 방. 친구와 둘이 누우면 옆집 남자의 네이트온 접속 소리가 또로롱 들리던 방. 앞집 생활이 훤히 보여 창문을 활짝 열어 두지 못하던 방. 2층 세입자들이 함께 쓰던 세탁기를 열면 옆집 남자의 옷가지가 잔뜩 엉켜 들어 있던 방.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름은 모르면서 서로의 생활은 충분히 들키며 살았던 방.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그 방으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찾아왔다. 고향집에서 두 시간 넘는 거리지만 두 사람은 내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양손에 김치와 쌀이 담긴 보따리를 들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할아버지, 계단 올라서 우회전이요. 아니 그 방 말고 더 들어가서 가장 안쪽 방이요.”     


204호, 203호……. 비슷한 방을 지나칠 때마다 할아버지의 주춤하는 뒷모습이 보였다. 돌고 돌아 방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가장 먼저 수도를 틀어 보고 보일러를 확인하고 현관문에 걸쇠를 달았다.     


할머니는 목발을 짚은 채로 가파른 계단을 겨우 올라왔다. 좁은 통로를 지나 어렵게 도착한 방을 할머니는 말없이 눈으로만 빙 둘러보았다. 할머니는 그 방에 오래 머물지 않고 할아버지를 따라 곧장 발길을 돌렸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목발을 짚기 어려워서 계단에 앉은 자세로 한 칸 한 칸 내려갔다. 할머니의 바지가 금세 더러워졌다. 할머니의 목발을 품에 안고 뒤따라 내려가면서 나는 무엇인지 잘못된 것만 같아 마음이 가라앉았다. 할머니의 작은 등에 대고 조만간 더 좋아질 거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들었다. 다음엔 계단이 없는 집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번의 이사를 더해 정착한 지금의 방 역시 계단을 올라 빙 둘러 가야 하는 2층 방이다. 이 방으로 이사 왔을 때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사는 방을 확인하기 위해 두 시간을 달려왔다. 이전보다 방음이 잘되고 볕도 잘 드는 방이었지만 할머니는 이전보다 좁고 가팔라진 계단을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할아버지 혼자 집 안을 둘러보는 동안 할머니는 차 안에 남아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들이 돌아간 밤. 단칸방에 누워 언젠가 나도 방이 아닌 괜찮은 집에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조만간 더 좋아질 거라고 내가 나를 안심시킨 뒤에야 겨우 마음이 편해졌다.      


불을 켜지 않아도 낮에는 충분히 환한 집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을 들일 수 있는 집

최소한 부엌과 방이 분리된 집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미로 같지 않은 집

적어도 할머니가 쉽게 다녀갈 수 있는 집     

언젠가 나도 그런 집에 살 수 있겠지

더 늦기 전에언젠가는.







/ 책<나의 두사람> 에 수록된 글 '나의 방들'입니다. 벌써 일곱 번째 글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https://brunch.co.kr/@2015012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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