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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님 Jun 29. 2018

당신의 자리

나의 두 사람



열셋의 겨울. 2월에 있을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편했다. 졸업식은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자장면을 먹는 날이라던데, 내 졸업식엔 와 줄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할아버지는 타 지역으로 일을 하러 떠났고 집엔 외출이 쉽지 않은 할머니뿐이었다. 물론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라도 졸업식에 와 줄 테지만 혹여나 친구들의 가족 풍경과 나만 다를까 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할머니가 정말 오지 않을까 봐 초조했다. 무엇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돼서 할머니에게 미안했다.  

   

우리가 살던 집은 산속에 콕 박혀 있었기 때문에 우유 하나를 사더라도 차로 10분 이상 걸리는 면 소재지로 나가야 했다. 그곳에 내가 다니던 학교도, 마트도, 보건소도, 은행도 있었다. 택시도 거의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하루 세 번 마을에 정차하는 버스를 타야만 했다. 할머니와 나는 가끔 그 버스를 타고 함께 외출을 했다. 정류장 팻말도 없는 마을 입구에 서 있으면 깊은 산속을 돌아 나오는 버스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할머니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 많은 어려움을 감수해야 했다. 누군가는 성큼성큼 오르는 버스 계단도 목발을 짚는 할머니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 올라야 했다. 버스 안엔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은근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 내는 이들도 있었다. 길어야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결국 미안한 얼굴을 해야 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겐 많은 것을 무릅쓴 용기임을 때때로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했다. 그런 날엔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 또한 열이 오른 얼굴로 내내 덜컹거렸다. 물론 할머니의 마음은 나보다 더 큰 진폭으로 덜컹거렸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버스를 타고 졸업식에 왔다. 둘이 아닌 혼자서 타는 버스였으니 어쩌면 평소보다 더 많은 용기를 내서 버스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을 오래 잊고 살다 오랜만에 펼쳐 본 앨범 속에서 우리 둘의 사진을 발견했다.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는 내 곁에 자신이 가진 옷 중 가장 비싼 외투를 입고 온 할머니가 웃으며 서 있었다.     


그날 졸업식 풍경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의 나는 할머니를 보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친구들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보고 부러워했을지도, 나와 비슷한 가족 풍경을 보고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열세 살의 초조한 나에게 너그러운 얼굴로 이야기해 주고 싶다. 네가 더 자라면 알게 되겠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른 가족의 풍경을 가지고 산다고. 너 역시 조금 다를 뿐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것을 무릅쓰고 온 한 사람이

항상 네 옆에 있었다는 걸 잊지 말라고.

그러니 졸업식이 끝나면

둘이서 자장면을 맛있게 먹으면 된다고.



초등학교 졸업식 (2001년) / 초등학교 운동회 (1999년)








/ 책 <나의 두 사람>에 수록된 글 '당신의 자리'입니다. 이번 화의 커버 이미지로 사용된 운동회 사진은 <나의 두 사람> 표지 사진을 선택할 당시 최종 후보 중 하나였답니다. :)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https://brunch.co.kr/@20150127/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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