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님 Jul 13. 2018

이해하는 연습

나의 두 사람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딪치는 걸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사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맞는 구석이 별로 없다. 10원 하나도 아껴 쓰는 할머니와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할부로 척척 사는 할아버지. 혼자 집에 있는 걸 무서워하는 할머니와 혼자 바깥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할아버지. 고기도 해물도 잘 안 먹는 할머니와 무엇이든 잘 먹는 할아버지. 술이라면 질색하는 할머니와 누구보다 술을 좋아하던 할아버지.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지금보다 젊었을 땐 당장 갈라서기라도 할 듯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날들도 더러 있었다. 지금에 와선 싸움의 빈도와 세기도 약해졌고, 부딪치는 양상 또한 조금 달라졌다.    

 

앉아서 생활하는 할머니 대신 대부분의 집안일을 맡아서 하는 할아버지는 일을 할 때 자신이 정해 놓은 룰과 차례가 머릿속에 있다. 워낙 깔끔해서 설거지 하나도 좀처럼 다른 가족에게 맡기지 않는다. 반면 할머니는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무엇이든 도와주고 참견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둘 사이엔 암묵적으로 정해진 분업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평소 식사 준비를 할 때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드는 일은 할아버지 몫이다. 할머니는 상을 닦고, 냉장고에서 꺼낸 반찬 뚜껑을 열고, 컵에 물을 따라놓는 역할을 맡는다. 밥을 먹고 난 뒤에 할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면 할머니는 반찬통을 냉장고에 잘 넣을 수 있도록 식탁 한쪽으로 모아 두고, 할아버지의 약을 종류별로 챙긴다.  

   

평소엔 나름 호흡이 잘 맞지만 가끔씩 사소한 일로 삐걱대는 때가 있다. 지난 명절 연휴에 저녁 식사를 끝내고 할아버지는 각각 다른 통에 담긴 나물을 큰 반찬통에 모아 담고 싶어 했다. 할아버지는 싱크대 위아래 수납장을 열어 마땅한 통이 있는지 찾았고, 할머니는 평소처럼 반찬통 뚜껑을 하나하나 닫고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반찬통 뚜껑을 찾는다고 생각해 “여보, 뚜껑 다 닫았는데 뭘 찾아요?” 물었고, 할아버지는 통을 찾는 데 집중하느라 대답 없이 다른 수납장을 열어 찾고 있었다. “여보, 뚜껑 다 닫았어요. 냉장고에 넣을까요?” 할머니는 두어 번 더 할아버지에게 물었고 할아버지는 결국 홱 짜증을 내고 말았다. “좀 가만있어 봐!” 할아버지의 큰 소리에 “어휴. 왜 짜증을 내?” 할머니는 눈을 흘기며 “성질 머리 하고는!” 소리쳤다.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부엌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연휴 첫날에 차례 음식 준비할 때도 둘은 비슷한 이유로 부딪쳤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도와 전을 부치려 했다. 할머니가 전을 부치기 위해선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할머니의 손이 닿는 가까운 자리에 재료와 도구를 가져다주고 필요할 땐 물을 떠다 주거나 그 밖에 잔심부름을 더 해야 한다. 할머니는 빠르게 전을 부치기 위해 다른 음식을 준비하는 할아버지를 채근했고, 할아버지는 “내가 할 테니 방에 들어가 쉬고 있어!” 하고 할머니에게 무안을 줬다. 처음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좀 놔뒀으면 싶었고, 다음엔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좀 더 이해해 줬으면 싶었다. 그게 해결책이 아님을 알면서도 어느 쪽이든 한쪽이 좀 참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가 버리면 이 집엔 또 두 사람만 남을 텐데 서로 언성을 높일 둘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웠다. 내 마음 편하고 싶어 두 사람이 부딪치지 않길 바랐다.     


명절 연휴 동안 두 사람은 왜 그럴까 지켜보면서, 그들의 충돌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할아버지는 혼자 집안일을 하는 데 지쳐 있다. 세 끼 차리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동안 대부분 서서 일하다 보니 고관절 수술한 데가 빨리 낫질 않는다. 아프니 더 예민해진다. 자신의 몸도 성치 않은데 할머니를 보살펴야 하는 부담도 할아버지 몫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정해 놓은 순서와 방법으로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마음 편히 쉬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할머니의 도움이 가끔은 성가시게 느껴지는 듯했다. 반면에 할머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 자신 대신 모든 일을 맡아하는 할아버지의 짐을 덜어 주고 싶고, 집안에서 작은 몫이라도 스스로 해내고 싶어 한다. 할머니 입장에선 간섭이 아니라 책임이고 지원이다.     


하루는 둘을 회유하기 위해 한 사람씩 따로 찾아갔다. 부엌에서 국을 끓이는 할아버지 곁으로 가 “할머니에게도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할아버지가 조금 더 이해해 주세요” 말하고 안방에 있는 할머니를 찾아가 “때로 할아버지를 그냥 두는 게 할아버지를 도와주는 거 같아요”라며 눈치를 살폈다. 나름의 중재를 해 봤지만 둘은 ‘네가 뭘 알겠니’란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을 뿐이었다.     


비슷한 상황을 몇 번 더 겪고 나서는 내게도 노하우가 생겼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채근할 것 같으면 내가 나서서 할아버지 상황을 할머니에게 설명하고, 반대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답답하게 생각할 때도 중간에서 할아버지 이해를 돕는다. 내가 집에 있는 동안 잠깐이나마 할아버지가 혼자 외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드리고 할머니와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명쾌한 해결방안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역할이란 생각을 한다.     


사실 두 사람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금방 목소리를 높여 날카롭게 맞서다가도 할아버지는 매일 밤 할머니에게 누가바 아이스크림을 잊지 않고 가져다주고, 할머니는 잊지 않고 할아버지의 약을 챙긴다.     

지난 주말 저녁, 혼자 거실에 앉아 있는데 안방 문 너머로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다 들리는 줄도 모르고 내 걱정을 이야기하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강식품을 보며 수다를 떨었다.      


조만간 또 둘은 다투겠지만

다음 날, 그다음 날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의 삶을 잊지 않고 돌볼 것이다.      


다음 날 집을 떠나며 생각했다.

두 사람이라 다행이라고. 두 사람이라 안심하고 하루를 또 살아간다.




올 해 봄, 집 앞 목련나무 아래 두 사람.







*  책 <나의 두 사람>에 수록된 글 '이해하는 연습'입니다. 이 원고는 지난 4월 책 출간을 준비할 때 마지막으로 쓴 원고이기도 합니다. 다른 원고보다 쉽게 쓸 줄 알았는데 2주 넘게 끙끙 대다 겨우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쓰는 동안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원고이기도 하고요. 출판사로 마지막 원고를 보내면서 이젠 정말 끝이다, 후련하다가도 이젠 정말 끝인가 싶어 마음이 가라앉던 기억이 납니다. 끝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매거진의 마지막 발행을 앞둔 지금 마음도 그때와 비슷합니다.


겨울 내내 쓰던 이야기가 한 여름이 되어 끝을 맺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책 <나의 두 사람>의 페이지를 통해 읽어주세요. 늦지 않게 새로운 이야기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매거진 나의 두 사람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제주 이듬해 봄 x <나의 두 사람> 북콘서트 안내 

지난 화에 공지해드렸죠. 8월 3일 금요일, 제주 이듬해 봄에서 열리는 <나의 두 사람> 북콘서트의 포스터입니다. 이듬해 봄 공간의 특성 상 최대 20명까지 참석 가능합니다.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들은 2046kino@naver.com을 통해 꼭 참여 신청을 부탁드립니다. 


만약 이 글을 보고 콘서트에 오시게 된다면 그 날 꼭 이야기해주세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