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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하연 Oct 09. 2020

선물구독

할머니와 전화 통화를 하고 끊었다. 아이가 물었다.     


“왜 어른들만 칠순잔치 해? 나도 열 살 잔치, 스무 살 잔치해줘”     


올해 열 살이 된 아닌 자기도 잔치를 해달라고 했다. 해마다 찾아오는 아이의 생일에 어떤 선물을 해줄까 고민한다. 특별한 것이 반복되어 일상이 되어버리면 더 이상 특별해지지 않는다. 한 번, 두 번의 생일이 나이만큼 반복되다 보니 특별함을 잃어갔다. 매 해 새로움을 갱신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친구와 아이들의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하다가 자기 형부는 딸 생일에 매 해 같은 형식의 선물을 준다고 했다. 아이가 6살 때부터 다이소에 가서 아이의 나이만큼의 물건을 고르게 한다고 했다. 6살에는 6개, 7살에는 7개, 지금은 11살이니 올해는 11개의 물건을 고를 수 있다고 했다. 뻔할 수 있는 날이지만 규칙을 더해서 추억을 견고하게 쌓는 방법인 것 같았다.  형부의 연출 속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생일 문화를 만든 것이다. 아이가 크면 외삼촌이 안겨준 선물들을 기억의 방에 오래 간직할 것이다. 그 어떤 생일 선물보다 선명하게 남을 것이다.    

다른 친구도 딸의 생일날 다이소를 이용한다고 했다. 마치 짜기라도 하는 듯 다이소가 등장해서 놀랐다. 평소에는 용돈이 적기에 아이는 소비의 욕구를 조금씩밖에 못 채운다. 하지만 생일이기에 원하는 만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서 기획했다고 했다. 5만 원어치 가지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게 한다고 했다. 계산을 하느라 기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옆에서 아빠가 계산을 해준다고 했다. 아이는 사도, 사도 또 살 수 있는 여유로운 기분만 누리면 된다고 했다. 감정을 선물이었다.     


부드럽고 커다란 스마일 인형 한 개가 오천 원

노트 천 원

보드게임 삼천 원

손수건 이 천 원

컵 삼천 원 등등…….    


한도 없는 카드를 쓰듯 아이의 웃음도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아이는 이것을 살까? 저것을 살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 표정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행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것도 좋은 방법 같았다. 다이소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각기 다른 생일을 보내는 방법을 들었다. 어쩌면 소비란 물건을 구입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분을 사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아이의 생일선물뿐 아니라 친구나 가족의 생일 선물을 챙기는 일도 잦다. 한 달에도 지인들의 생일이 두, 세 번 존재한다. 이왕 선물을 할 거면 상대에 마음에 드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수영장에 들어가듯 상대의 마음속에 들어간 듯 한 선물을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은 출입구가 없으니 딱 맞는 선물을 찾는 일은 어려웠다.      



친구가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는 내게 선물 하나를 건넸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다. 달력이었다. 일본 작가 Naomi Ito의 수채화 그림 12점이 가득한 달력이었다. 평소에 물을 머금고 종이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수채화를 좋아했다. 팔레트 속 물감은 종이 위에서 어디로 번질지, 어디에 머무를지 정하지 많고 물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긴다. 그 움직임이 빚어내는 형상이 빛을 머금은 듯했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투명해졌다. 우연이 만들어낸 그림이 멋스러웠다. 우리의 명절과 절기가 다른 일본 달력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내가 손으로 적으면 되었다.    


아름다운 달력을 선물 받은 후로는 월급날도 아닌데 매 달 1일이 기다려졌다. 한 달이 다 가서 한 장의 작품을 뜯어내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다음 달로 넘어가 새로운 작품을 맞이하는 기쁨이 동시에 다가왔다. 슬픔과 환희가 동시에 존재했다. 평소에 달력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었다. 은행, 보험사, 학원에서 공짜로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물 받은 달력을 벽에 건 후, 일상과 공간이 산뜻해지는 경험을 했다. 일 년이 행복했고 매 달이 유쾌했다. 달력을 보고 있으면 컬러 샤워를 하는 듯했다.    


친구는 달력을 건네고 선물한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 나는 1년 365일 내내 그녀를 떠올렸다. 날마다 생일선물을 받았다. 달력이 삶에 이렇게 깊이 여운을 남길지 몰랐다. 그 후 일 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달력을 구입하는 일은 설레는 일이 되었다. 집을 고르고 차를 사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공을 들였다.

Naomi Ito의 달력은 일본에서 매해 나와서 구입하고 싶었지만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달력들을 찾는데 관심을 기울였다. 달력을 고르는 일은 1년 치의 행복을 고르고 일이 되었다.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을 선물 받은 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물을 주고 싶어 졌다. 한 순간 반짝하고 기억에 남는 것 말고 상대의 일상에 오래 머무르며 나를 떠올리게 하고 싶었다. 소중한 친구의 생일날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히치하이커> 1년 정기구독권을 떠올랐다. 내가 평소에 즐겨 보던 잡지였다.    

 

<히치하이커>란 텐바이텐에서 격월에 한 번 나오는 감성 잡지이다. 드라마, 취미, 엄마, 징크스 등등의 주제로 독자의 사진과 글을 받아서 만든 매거진이다. 글은 바삭바삭하고 그림은 촉촉하다. 1년 구독권을 구입하면 격월로 6권의 잡지가 배송된다. 그러니까 생일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다음 생일까지 1년 동안 축하를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소중한 언니에게 히치하이커를 선물했다. 그녀는 배송받을 때마다 내게 고맙다는 글을 남겼다. 보통 처음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끝인데 그녀는 받을 때마다 처음인 것처럼 좋아했다. 그 마음을 빠뜨리지 않고 내게 전했다. 언니의 글을 받을 때면 선물을 한 내가 오히려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선물을 정기구독했더니
                        고마움을 정기구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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