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세탁기 멍을 좋아해.”
“비멍은 들어봤는데, 세탁기 멍이 뭐야?”
“세탁기 돌아가는 거 보는 건데, 그거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대.”
“그걸 보는 사람도 있구나. 동생, 살림 잘해?”
“응. 정리는 잘해. 근데 요리는 잘 못 해.”
우리는 보통 살림 잘한다고 하면 집안일 모두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림에도 분야가 있고, 그중 한 부분만 잘할 수도 있다. 디자인과 안에도 시각디자인, 공업디자인, 도자공예, 장신구과가 있듯 살림에도 전공 분야가 따로 있는 법이다. 친구들 집에 가 보면 각자 잘하는 것들이 있었다.
A는 요리를 잘해서 그 집에 가면 ‘세비체, 문어 요리’ 등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플레이팅도 얼마나 예쁜지, 그릇들을 360도 돌려가며 어느 브랜드 것인지, 어디서 산 것인지 출처를 물어보기 바쁘다. 한 끼 식사가 아닌, 줄줄이 나오는 요리들에 입은 늘 축제다.
B는 불시에 옷장을 열어도 옷걸이에 옷이 일정한 간격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주방 서랍을 열어도 포크, 나이프가 열 맞추어 있다. 아이의 자동차 장난감도 서랍장 위에 주차가 잘 되어 있다. 그 공간에 있으면 잡동사니가 더 이상 잡동사니가 아닌 소품이 되었다.
C는 허광한의 팬이다. 거실의 진열장 가득 허광한의 포스터, 화보가 담긴 잡지, 직접 만든 열쇠고리, 부채 등을 모아 놓아 박물관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집은 살림만 하는 공간이라는 틀을 깨 주었다. 사는 공간을 너머 취향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 집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나는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 집에는 거울과 쓰레기통이 방마다 놓여 있다. 심지어 세 개의 책상마다 미니 쓰레기통이 있다. 분리수거 통도 베란다에 놓지만, 주방에 수납장으로 가벽을 만들어서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가리되, 가족 누구라도 쉽게 쓰레기를 분류해서 버릴 수 있게 배치했다. 식탁의 벽에는 분식집에서나 쓰는 업소용 휴지를 매달아 놓았다. 티슈는 입술을 닦기에 크고, 작은 티슈는 가벼워서 휴지를 뽑을 때마다 종이 각이 들리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중에 휴지를 매달아 놓았다. (대구의 시장에 가서 아이디어를 얻음) 주방에서도 요리를 하다가 나오는 쓰레기들을 바로 버리기 위해 싱크대 문에 휴지통(다이소 구입)을 걸어 놓았다.
야채를 다듬거나, 물기가 있는 쓰레기를 버릴 때 먼 곳의 쓰레기통을 두면 물이 툭툭 흐르는 것이 싫어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다. 인덕션 벽면에는 전에 쓰던 달력의 예쁜 그림을 붙여 두었다. 기름 있는 요리들을 할 경우 기름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다.
집은 그 사람이 입는 옷과 같다. 공간 안에는 집 구성원의 생각과 가치관이 묻어 있다. 효율을 중시해서 물건들이 손에 잡기 편하게 놓는 것(책상 위에 필요한 물건이 다 올라와 있음)이 나의 특징이라면 아이의 방은 책상 위에 물건이 아무것도 나와 있지 않아 마치 비즈니스호텔 같다. 침구도 각 맞춰 정리하고, 이불은 주름 없이 팽팽하다. 서랍장과 창문 틈에 빨래통을 쏙 끼워 넣어 깔끔함을 더했다. 아이의 방을 보고 있으면 단정해서 저절로 명상이 된다. 나는 주방과 거실에서 청소, 설거지하다가 지치면 아이 방으로 체크인하고 휴식을 취한다. 가족이 사는 202호라는 한 공간 안에서도 이렇게 사람에 따라 방마다 콘셉트가 다르다.
누구나 잘하는 것이 있다. 일에서의 재능뿐 아니라, 살림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리는 잘하는데, 요리는 못해.”라는 말보다는 “나는 정리는 전문가야.”라는 말을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살림 속 한 분야의 전문가다.